In Praise Of Dreams – Jan Garbarek (ECM 2004)

jg  이 글을 쓰고 있는 11월 중순, 필자는 도쿄와 파리, 뮌헨을 거치는 재즈 취재 여행을 마치고 바로 귀국했다. 세 도시를 돌며 여러 음반 제작자들과 연주자들을 만나 깊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는데 그 중 ECM 레이블에서 맨프레드 아이허와 함께 제작을 담당하고 있는 스티브 레이크를 만나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와의 이야기 도중 서로 공감했던 부분이 있다면 재즈는 어쩌면 이제 거의 끝 지점에 다가오지 않았느냐는 것이었다. 사실 맨프레드 아이허도 클래식 중심의 새로운 시리즈를 시작했던 것도 재즈에서 더 이상 새로운 것을 기대하기 어려울 것 같다는 모종의 불안감 때문이었다고 한 인터뷰를 통해 밝혔던 바가 있다. 하지만 재즈가 거의 그 끝에 다가왔다는 것은 결코 비관적, 부정적인 의미만을 띄지 않는다. 그것은 창조적으로 재즈가 이제 어느 하나로 범주화 하기 어려울 정도로 멀리 나아갔음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재즈라는 의미 자체는 이미 무화 되었다고 해도 틀린 은 아니리라. 그래서 최근 상당 수의 재즈 연주자들-특히 유럽-은 재즈 내에서의 스타일 뿐만 아니라 재즈 자체를 특별히 의식하지 않고 오로지 자신만의 소리를 발현하기 위해 큰 노력을 한다. 이것은 얀 가바렉과의 인터뷰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이었다. 새로운 앨범에 대한 질문에 그는 앨범 하나를 녹음했으며 다른 사람들은 재즈라 생각하지만 가바렉 본인은 그렇게 생각되지 않는다고 밝혔었다. 사실 이 발언으로 인해 그의 새 앨범에 대한 궁금증을 가졌던 독자분들이 많으리라 생각한다. 바로 그 문제의 앨범이 <In Praise Of Dreams>라는 타이틀로 우리 앞에 나타났다.

얀 가바렉은 당시 이 앨범을 소개하면서 여러 연주자들을 초빙했고 프로그래밍을 사용하는 등 다양한 실험을 했다고 언급했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그의 설명은 절반이 진실이고 나머지 절반은 좀 모호한 것이 되어버렸다. 진실은 실제 프로그래밍이 매우 적극적으로 사용되었다는 점이고 모호한 점은 정작 앨범에 참여한 연주자는 가바렉 본인을 포함하여 비올라의 킴 카쉬카시안, 드럼의 마누 카체 이렇게 3명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디서 이해가 잘 못된 것일까?

하지만 이러한 의혹은 앨범을 듣게 되면 그다지 중요한 것이 되지 않는다. 단 3명의 연주자가 만들어 내는 그 사운드는 여러 명이 만들어 내는 사운드 이상의 압도적 매력을 지니고 있으니 말이다. 얀 가바렉이 이 앨범을 (단순히) 재즈라 생각하지 않는다 이야기 했다면 그것은 무엇보다 클래식 비올라 연주자 킴 카쉬카시안의 참여 때문이 아닐까 생각된다. 이것은 가바렉이 힐리아드 앙상블의 성스러운 합창의 여백 사이를 안개처럼 유영했던 <Officium>(ECM 1994)과 이번 앨범을 동일 선상에서 보고 있거나 아니면 최근 클래식 연주 쪽에 관심을 두며 카쉬카시안과 협연을 종종 벌였던 것의 연장으로 생각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사실 최근 얀 가바렉은 <Rites>(ECM 1999)앨범 이후 많은 공연 활동을 했지만 여러 클래식 앨범들에 초빙되어 녹음을 하며 그의 새로운 존재를 알려왔다. 가장 가까운 예로 올 6월에 발매되었던 티그란 만수리안의 <Monodia> 앨범을 살펴보면 가바렉과 카쉬카시안의 협주를 만날 수 있다. 바로 이 한 곡의 녹음에서 가바렉은 카쉬카시안의 매력에 빠졌던 듯하다. 그래서인지 이 앨범의 매력은 단순히 얀 가바렉의 색소폰에 한정되지 않는다. 앨범에서 카쉬카시안의 존재감은 비올라라는 악기를 넘어 직접적으로 다가오는데 그녀가 가바렉과 만들어 내는 호흡과 이를 통해 발생되는 정서적 감동은 매우 크다. 특히 매끄럽지만 도약의 갈증을 머금은 듯한 가바렉의 색소폰과 그 아래에 단단히 위치하여 선율적인 동시에 공간적인 모습을 보이다가 어느새 가바렉의 색소폰이 도달하고픈 이상에 위치한 듯한 초월적인 면을 보이는 카쉬카시안의 비올라간의 호흡은 하나의 비경(秘境)을 보는 듯한 몽상적 분위기를 제공한다. 분명 이것은 얀 가바렉과 킴 카쉬카시안이 있을 때 완성될 수 있는 것이다.

한편 일렉트로 리듬과 사운드의 측면에서 본다면 완전히 새롭다고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왜냐하면 앨범에 담긴 정도의 일렉트로 사운드는 이미 그의 여러 그룹 앨범에서 맛볼 수 있었던 것이 아닌가? 하지만 최근의 보다 더 편집증적인 일렉트로 매니아들이 만들어 낸 인위적 팽만감으로 가득 찬 사운드에 아랑곳 하지 않고 보다 공간적 여유를 획득한 그래서 어쿠스틱적인 여유가 느껴지는 일렉트로 사운드의 운용은 결코 가바렉이 사운드의 새로운 질감 자체에 함몰되어 큰 부분을 버리는 실수를 하지 않았음을 입증한다. 그리고 마누 카체의 드럼은 앨범에서 존재감이 그다지 드러나지 않을 수 있지만 샘플링 된 일렉트로 리듬 사운드에 다채로운 강약을 부여하는 주체로 앨범 전체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결과적으로 가바렉이 말했던 재즈가 아닌 사운드, 일렉트로 리듬이 적극적으로 도입된 사운드는 카쉬카시안과 마누 카체의 참여를 통해 현실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번 앨범은 세 연주자가 결합된 확고한 통일체로서의 이미지를 생산해 낸다. 실제 앨범 전체를 거시적으로 감상해 보면 각 곡들이 하나의 지점을 바라보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그 지점은 이미 우리가 얀 가바렉의 색소폰 연주를 통해서 잘 느끼고 있었던 상승의 희구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그렇기에 이 앨범은 새로우면서도 익숙하다.

오랜만에 발매된 앨범이기에, 연주자가 다름아닌 얀 가바렉이기에 앨범이 좋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사실 필자는 공연을 통해서는 무척 큰 감동을 받았지만 <Rites>앨범을 비롯한 그의 최근작들에 대해 그다지 큰 애착을 보이지 않았었다. 왜냐하면 명상적 이미지의 강조로 얀 가바렉만의 명징함이 다소 사라진 듯한 느낌을 받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앨범은 새로운 경계를 설정하고 그 경계를 넘는 창조적 정신으로 가득한 신선한 가바렉의 모습을 들려주고 있어 올 해의 여러 앨범들 가운데 인상적인 앨범의 하나로 남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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