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젊은 연주자들을 데리고 일렉트릭 비밥 밴드 활동에 주력하고 있지만 90년대 중반까지 폴 모시앙의 가장 중요한 음악적 동반자는 빌 프리셀과 조 로바노였다. 경우에 따라서 듀이 레드맨, 찰리 헤이든, 게리 알렌 등의 연주자가 참여하여 퀄텟, 퀸텟 등을 형성하기도 했지만 어떠한 경우에서건 전체 사운드의 핵심에는 빌 프리셀의 공간적인 기타와 공간을 유영하는 조 로바노의 색소폰이 함께 했었다. 즉, 이 두 연주자는 폴 모시앙의 1980년대와 90년대 중반까지의 음악 인생을 기억하는 증인들이다.
따라서 이 세 사람이 1987년 <One Time Out>(Soul Note)이후 약 18년 만에 함께 모였다는 것은 그동안 폴 모시앙의 음악을 지켜보았던 감상자들에게는 아주 반가운 소식이다. 필자 역시 그동안 솔로 연주자로서, 밴드의 리더로서 각자 바쁘게 살아왔던 세 연주자가 다시 모여 보다 깊어진 자신의 음악을 어떻게 서로 공유하고 새로운 무엇을 만들어 나갈까 무척 기대를 했다. 그 기대에 걸맞게 세 사람의 연주는 커다란 감상의 즐거움을 선사한다. 그런데 빌 프리셀, 조 로바노가 연주에서 보여주는 태도가 무척 겸손하다는 것이 특이하게 다가온다. 그것은 분명 세 연주자가 동등하게 공간을 배분하고 연주하는 트리오 연주이지만 범접하기 어려운 폴 모시앙의 아우라가 앨범에 편재한다는 것에서 느낄 수 있다. 그러니까 이제 어엿한 대가의 풍채를 갖춘 빌 프리셀과 조 로바노이지만 이들에게 폴 모시앙은 여전히 공경하고 싶은 음악적 리더로서 작용했던 것이다.
실제 빌 프리셀과 조 로바노에게 전면을 양보하고 뒤로 물러선 폴 모시앙이지만 앨범을 면밀히 감상하다보면 여전히 트리오 삼각형의 꼭지점은 폴 모시앙이라는 생각을 저절로 하게 된다. 그의 드럼은 리듬 악기가 아닌 것 같다. 분명 리듬을 분할하고 이를 통해 사운드에 긴장을 부여하고 있지만 때로 그의 심벌은 피아노 반주처럼 조 로바노의 색소폰에 대응하기도 하고 공간적으로 퍼져나가는 빌 프리셀의 몽환적 기타에 미묘한 질감의 변화로 대위적 관계를 형성해 주기도 한다. 따라서 앨범에 담긴 연주는 트리오 연주가 아니라 빌 프리셀과 조 로바노가 각기 동시에 폴 모시앙과 듀오 연주를 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 더 정확하리라 생각된다.
한편 이번 앨범의 아름다움은 자유로우면서도 척척 호흡을 맞추는 세 사람의 연주 외에 멜로디와 공간적 뉘앙스를 동시에 배려한 몰 모시앙의 작곡이 상당부분을 차지한다. 어두운 공간을 부유하는 희뿌연 연기처럼 그가 만든 선율들은 신비로운 서정으로 가득하다. 모처럼 작곡가로서의 폴 모시앙에게 감동을 받게 되는 순간이다.
늘 젊은 연주자들과 싱싱한 연주를 하느라 잊고 있었는데 어느새 폴 모시앙도 70대 중반을 넘어버렸다. 아직도 이렇게 창조적인 연주를 할 수 있다는 것에 놀라움을 느끼지만 그만큼 그의 건강이 오래 지속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이 좋은 연주를 들으며 간절히 생겼다.
비온 후 새벽입니다. 아..!연주 정말 좋네요. 추상적 언어들이 가슴으로 와닿는 순간입니다.
빌 프리셀의 몽상적인 기타가 새벽에 특히나 잘 어울리죠. 잠에서 깨어도 다른 꿈을 꾸는 듯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