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래드 멜다우 이후 많은 연주자들이 영국의 롹 그룹 라디오헤드의 곡을 연주하고 있다. 재즈가 여타 다른 장르의 대중 음악에서 차용한 곡들을 꾸준히 연주하며 스탠더드 레파토리를 확립했기에 이런 현상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다. 그러나 어째서 라디오헤드인가? 분명 인기가 있는 그룹이고 대중적으로 알려진 곡들을 많이 발표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보편성을 획득하지는 못하지 않았던가? 그런 그룹의 음악이 스탠더드 레퍼토리로 들어오고 있다는 사실이 필자는 놀랍다. 그런데 크리스토퍼 오 릴리라는 클래식 성향의 피아노 연주자가 혼자 라디오헤드의 음악에 접근하는 것을 들어보면 왜 라디오헤드의 음악이 이 시대의 많은 연주자들에게 매력으로 다가가는지 이해하게 된다. 브래드 멜다우의 경우에서 느꼈던 것처럼 이 피아노 연주자도 라디오헤드의 곡에 담긴 풍부한 화성적 울림을 최대한 끄집어 내며 회색톤의 우울한 상상력을 어쿠스틱 사운드 속에 새로이 펼쳐 보인다. 특히 이번이 라디오헤드 연주곡집으로서는 두 번째가 되는 만큼 이 연주자는 보다 개인적인 해석을 자유로이 펼쳐나가고 있는데 앨범의 후반부로 갈수록 왼손의 풍성한 울림과 에너지 표현에 집중하며 라디오헤드의 음악이 지닌 극적인 부분, 록 사운드의 웅장함을 하나의 즉흥 환상곡처럼 새로이 표현해 나간다. 피아노 한 대로 말이다. 이런 면은 분명 전통과 상관없이 재즈를 듣고 있는 우리 감상자들에게 호감을 사리라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