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에서 불기 시작한 일렉트로 재즈의 열풍을 미국의 재즈 연주자들은 직접적인 수용이 아닌 70년대 미국의 소울, 펑크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새로운 개념의 그루브 사운드를 만드는 독자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는데 이 앨범 역시 그러한 선상에 놓인다. 특히 어쩌면 현재의 시점에서 재즈보다 더 흑인의 정서를 반영한다고 볼 수 있는 힙합의 차용으로 음악을 차별화 시키려 하고 있는데 이것이 이 앨범의 장점이로 작용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사실 유럽의 일렉트로 재즈는 백인 중심의 유럽의 정서를 반영하는 것이었다. 아무튼 이 앨범에 담긴 음악들은 70년대의 소울, 펑크와 현재의 힙합이 절묘하게 맞물리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며 연주의 측면에 있어서는 개인이 아닌 각 구성원이 공동으로 리드하는 그룹의 음악으로 생각하게 하는 고밀도의 응집력을 보여준다.
그런데 이러한 이 앨범의 장점은 곧바로 이 앨범에 담긴 훌륭한 연주와는 상관없이 과연 이 앨범에서 로이 하그로브의 역할이 무엇이냐는 의문을 제기한다. 그는 이 앨범내에 어디에 위치하는가? 단순히 RH Factor라는 그룹의 멤버에 지나지 않는가, 아니면 전체 사운드를 조율하는 지휘자인가? 일단 필자의 견해는 사운드로 보아 절대 로이 하그로브 개인의 음악으로만 생각할 수 없다는 생각이다. 솔로에 있어서 그의 트럼펫이 등장하는 비중이 제일 많기는 하지만 이 앨범의 각곡들은 중간에 흐르는 트럼펫 솔로보다 하나의 유기적 실체로서의 사운드 그 자체가 더 중요하게 부각되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초빙된 래퍼나 보컬 주자들은 단순히 목소리만 빌려주는 것으로만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참여하는 곡에 그들의 존재감을 부여한다. 그래서 그들의 목소리에 따라서 음악의 방향, 특성이 바뀌곤 한다. 따라서 분명 로이 하그로브의 머리에서 이러한 편성과 음악의 단초가 나왔을 지는 모르지만 결과로서의 음악은 절대로 그만의 음악이라고 볼 수는 없다. Roy Hargrove Presents The RH Factor라는 모호한 연주자에 대한 표현은 어쩌면 이러한 난처함을 반영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 앨범을 RH Factor의 음악으로 볼 경우 이 앨범은 70년대 사운드를 현대의 관점에서 적절히 변용한 흥겨운 앨범이라는 긍정적인 평가로 이어진다. 그러나 현대 재즈내에서 독자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로이 하그로브의 앨범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는 이 앨범에 담긴 음악들이 정서적인 측면, 음악 요소들의 측면에 있어서 기존의 다른 음악들과 그다지 많은 차별화를 보여주지는 않기에 따라서 자신의 변화라는 이름으로 오히려 자신을 억제하며 다른 사람들의 음악을 따라한 것이라는 아쉬운 평가로 이어지게 된다. 바로 여기에 필자의 고민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 어쩌면 감상자의 입장에서는 이러한 고민은 부차적인 것이 될 수도 있겠다. (그리고 필자에게 음반의 복사본 외에 아무런 부가 사항을 주지 않은 음반사나 잡지사 때문일 수도 있다.) 왜냐하면 이 앨범이 주는 듣는 즐거움은 분명 뛰어나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