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틀 레인은 드럼을 연주하는 서덕원을 중심으로 뭉친 피아노-베이스-드럼 트리오다. 이 트리오는 지난 2005년 첫 앨범 <Into The Gentle Rain>으로 서정적 멜로디가 중심이 된 차분하고 편안한 사운드를 들려주는 트리오라는 이미지를 얻으며 많은 대중적 사랑을 받았다. 즉, 많은 연주자들이 자신의 존재감을 독특하게 표현하려고 하는 것과 달리 이 트리오는 반대로 대중 친화적인 성격의 연주로 자신을 드러냈던 것이다. 사실 나는 이런 종류의 재즈가 대중적 기반이 약한 한국에서 무엇보다 필요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단지 잘 알려진 스탠더드 곡을 전통적으로 연주하는 것, 혹은 전자적 색채가 강한 퓨전/스무드 재즈를 연주하는 것과는 다른 것이다. 스타일이 아닌 정서의 문제인 것이다.
베이스 연주자를 이원술로 교체한 뒤 이번에 새로 선보이는 젠틀 레인의 두 번째 앨범 <Second Rain> 또한 첫 앨범만큼이나 폭넓은 감상자들이 사랑할 수 있는 사운드를 담고 있다. 게다가 음악적으로 한층 진일보한 면을 보여준다는 데서 높이 평가할만하다. 그 발전이란 무엇보다 작곡의 세련미를 꼽을 수 있겠다. 사실 지난 앨범에서도 트리오의 멜로디적 감각은 상당했다. 그러나 (그것이 한국적인 정서였는지는 몰라도) 다소 신파적인 부분이 있었다. 하지만 이번 앨범에 담긴 트리오의 멜로디는 훨씬 더 신선하다. 그리고 가사와 그 가사로 노래하는 한 목소리를 상상하게 만든다. 그래서 단 한 곡에 참여한 보컬 문혜원이 빌리 조엘의 곡이 아닌 “Best Wishes”나 “Beauty Sleep”같은 트리오의 자작곡을 노래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된다.
이 트리오가 멜로디를 얼마나 편하고 소중하게 다루는 지는 이 들이 연주한 기존 곡을 보면 잘알 수 있다. 앨범에서 트리오는 빌리 조엘의 “Just Way You Are”를 비롯하여 동요 “귀여운 꼬마”, 존 덴버의 “Sunshine On My Shoulder”, 척 맨지오니의 “Consuelo’s Love Theme”, 영화 <디어 헌터>의 주제곡인 ‘Cavatina’등을 연주했다. 선곡 자체부터 신선하고 친근하게 다가오는데 이들 곡을 트리오는 멜로디 자체를 그렇게 크게 손보지 않고 원 곡의 결을 살리며 연주한다. 물론 그 안에 차분하게 트리오만의 서정을 불어 넣었음은 물론이다. 특히 ‘Consuelo’s Love Theme’의 경우 테마 이후 이어지는 송지훈의 피아노 솔로는 아예 테마를 확장시킨 변주에 가까울 정도로 테마와 완전히 일치된 면을 보인다.
한편 보통 멜로디를 중심으로 연주를 하게 되면 전반적으로 사운드의 두께가 얇아지는 경향이 있다. 특히 멜로디를 연주하는 피아노 외에 베이스와 드럼의 존재감이 확연하게 반주 정도의 차원으로 축소되는 경향이 강하다. 젠틀 레인의 연주 방식도 피아노가 중심이기는 하다. 그러나 드럼 연주자가 리더이기 때문일까? 피아노가 만드는 여백 사이사이를 메우는 베이스와 드럼의 존재감 또한 상당하다. 분명 피아노의 멜로디 중심으로만 연주가 흘렀다면 개별 곡들은 몰라도 앨범 전체가 다소 지루했을 것이다.
대중 진화적인 연주가 꼭 연주자의 개성을 드러내지 못하는, 음악적으로 그다지 훌륭하지 못한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물론 많은 연주자들이 이런 위험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하기는 했다. 그러나 젠틀 레인은 대중 친화적인 동시에 멤버와 그 트리오의 매력을 잘 살린 연주를 들려준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할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