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주자들이 의기투합하여 연주를 하고 그것을 녹음하면 한 장의 앨범이 되던 시절이 있었다. 이런 녹음들은 스튜디오에서 녹음되었다고 하더라고 공연 이상의 현장감을 드러내곤 한다. 그러나 요즈음은 한 장의 앨범을 녹음하기 위해서 연주자들, 혹은 보컬들은 만반의 준비를 한다. 그 준비가 완료되었을 때 앨범을 녹음하고 이것을 발표한다. 그래서 과거의 재즈 앨범들이 연주자가 어느 한 순간 느꼈던 연주의 즐거움을 담고 있다면 요즈음의 재즈 앨범들은 더 나아가 한 시기의 모습을 기록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이전 앨범과 유사한 스타일의 앨범이라도 그 안에는 무엇인가 다른 연주자 본인만의 차이가 분명 존재한다.
다이애나 크롤의 이번 앨범 <From This Moment On>도 엔터테이너적인 측면과 음악적 깊이 모두를 드러냈던 지난 앨범 <The Girl In The Other Room>(Verve 2004)이후의 그녀의 삶을 드러내고 있다. 그리고 앨범에 담긴 그녀의 삶은 “행복”이라는 말로 귀결되는 것이다. 실제 그녀는 이번 앨범이 그녀 자신의 “삶에 있어 가장 행복한 시기와 일치하며 이것은 음악에 명백히 드러난다. 정말 결혼과 가정에 대해 내가 지금 느끼고 미래에도 계속되기를 바라는 기쁨을 반영한다”고 말했다. 특히 그녀는 출산의 기쁨을 앞두고 있다고 하니 그녀가 말하는 행복이란 평범한 우리네들처럼 가정을 꾸리고 그 가정이 별 탈없이 유지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그래서일까? 앨범에 담긴 11곡의 노래들은 모두 흥겨움, 낭만, 편안함, 따스함의 정서를 담고 있다. 그리고 이것은 클레이튼 해밀튼 오케스트라의 풍성한 빅 밴드 사운드를 통해 보다 더 강조되고 있다. 다이애나 크롤이 지난 겨울 크리스마스 앨범에서 함께 녹음했던 이 오케스트라를 다시 기용한 이유는 아마도 재즈가 가장 행복했던 시간이 빅 밴드 시대였다고 생각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된다. 아무튼 이런 요인들로 인해 앨범은 감상하는 내내 기분을 편안하게 해준다. 심지어 느리고 슬픈 노래들도 긍정적인 정서로 노래되었다.
한편 이전 앨범 <The Girls In The Other Room>이 자작곡 중심으로 기존과는 다른 다이애나 크롤의 모습을 담아낸 독특한 앨범이었음을 생각하면 다시 두터운 스탠더드 곡 집을 열고 그 안에서 11곡을 선택해 노래한 이 앨범은 정서상 다시 과거로 돌아가는 것이 아닐까 생각될 수 있겠다. 사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그녀의 음악적 본령은 사실 다양한 재즈의 영역 가운데 대중적인 측면을 성실하고 모범적으로 유지시키는 데 있지 않던가? 그리고 이러한 익숙함, 편안함이야말로 그다지 큰 고통 없이 삶이 편안하게 흘러가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