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 디 메올라가 새로운 앨범을 발매했다. 그의 앨범 활동은 활발하지는 않지만 꾸준한 편인데 실제 대중의 관심에서는 변방으로 밀려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렇다고 그의 음악이 퇴색되었다거나 태작이 많았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화려한 기타 연주자로서의 모습을 안으로 내면화시키면서 보다 더 개인적인 면을 보이는 그의 음악 세계 때문이 아닐까 생각된다. 실제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그는 아르헨티나의 탱고 쪽에 많은 관심을 보였는데 이는 그의 음악이 새로운 방향으로 나갈 것을 암시하는 것이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그의 음악의 대상 층을 바꾸는 모험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번 텔 락 레이블에서의 3번째 앨범은 지속적으로 자신의 음악 영역을 확장하려는 알 디 메올라와 과거를 부정하지 않는 알 디 메올라가 적절하게 공존하고 있다.
다른 그의 앨범들과 마찬가지로 이번 앨범에서도 라틴적인 성향이 앨범 전체에 편재한다. 그러면서도 그의 음악은 단순히 라틴 재즈라는 에티켓을 붙이기에는 어색한 면이 있다. 왜냐하면 라틴 재즈를 넘어 알 디 메올라만의 색채가 단순한 라틴 재즈라는 표현으로는 무시된다는 듯한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그의 음악은 라틴의 어느 한 경향만을 반영하지 않고 브라질, 아르헨티나, 쿠바, 그리고 스페인 음악을 제대로 혼합해 만들어 진것이다. 이것은 알 디 메올라가 의도적인 결합을 시도했다기 보다는 자신의 느낌에 충실한 음악을 시도한 결과라 생각된다.
그래서 앨범에 자신의 곡 외에 수록한 아스트로 피아졸라, 에그베르토 기스몬티, 칙 코리아의 곡들이 각기 한 라틴 성향을 대표할 수 있음에도 알 디 메올라는 이에 집착하지 않는 모습을 보인다. 그가 생각하는 분위기 호흡이 스타일에 우선하는 연주를 펼친다. 예로 이 앨범에서 듣게되는 피아졸라의 Fugata가 지닌 정서적 기조는 우리의 예상을 빗 나간다. 바로 여기에서 초기 알 디 메올라의 음악적 요소가 다시 90년대 이후 형성된 음악적 요소와 만나는 지점이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알려진 우수와 슬픔의 피아졸라식 분 위기는 열정과 뜨거움의 70년대식 분위기로 대체되어 있다.
전체적으로 알 디 메올라의 다양한 기타가 곡들을 이끄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자
신이 무조건적인 중심에 위치하고 다른 연주자들이 단순 사이드 맨으로 머무르게 하지 않는다. 분명 여전히 변하지 않은 그의 출중한 기타 연주를 들을 수 있지만 결코 자신을
지나치게 드러내는 법이 없다. 단순히 라틴 리듬 위에 즉흥 연주를 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필요에 따라서는 드럼과 퍼쿠션을 스스로 연주하는 등 리듬자체에 많은 관심을 보인다. 결국 그의 주된 생각은 기타의 표현력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작곡과 편곡에 있고 그것이 어떻게 현실화되는가에 있다고 볼 수 있다.
한편 참여한 많은 연주자들 중에 펜더 로즈를 주로 연주하는 곤잘로 루발카바와 플루트를 연주하는 알레얀드로 산토스의 존재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이들은 알 디 메올라 와 동반과 경쟁 관계를 오가며 탄탄하면서도 치밀한 사운드를 만드는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다양한 템포 속에서도 악기간의 설정된 거리가 그대로 유지된다는 점은 아마 이번 앨범의 연주측면에서의 가장 큰 매력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래서 이번 앨범은 평정을 잃지 않는 2002년식 알 디 메올라의 여유를 드러내면서도 과거 리턴 투 포에버에서 느낄 수 있었던 긴밀함과 화려함을 떠올리게 한다.
퓨전 재즈가 등장한 지도 30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 사이 즉흥성이라는 기존재즈의 이디엄에 롹적인 강렬한 사운드가 결합(Fusion)을 의미했던 이 스타일은 이제는 일종의 분 위기를 지칭하는 것으로 의미가 변했다. 나아가 스무스 재즈라는 이름으로 개명하면서 퓨전 재즈라는 용어는 현재 진행형의 성격을 잃고 지나간 사조의 하나로 역사 속으로 사라지려는 듯하다. 그럼에도 퓨전이라는 말이 지닌 발전적이고 개방적인 의미의 가능성 자체는 아직도 유효하다고 보여지는데-이미 재즈의 탄생 자체가 퓨전이 아니었던가?- 재즈와 롹, 그리고 다양한 라틴의 향기가 섬세히 혼합된 알 디 메올라의 이번 앨범이 이를 입증하지 않나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