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는 엔리코 라바와의 활동으로 잘 알려지기는 했지만 아직까지 이 이태리의 피아노 연주자는 우리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낮설다. 그럼에도 갈수록 그의 녹음들이 이태리를 벗어나고 있다는 것은 단순하게 그가 연주를 잘한다는 차원 때문만은 아니다. 필자는 그동안 그 이유에 대해서 생각을 해왔었는데 이번 앨범을 통해 그 이유를 확실히 실감할 수 있었다. 그것은 피아노로 만들어내는 그만의 이야기를 할 줄 아는 능력때문이었다. 이 앨범에서도 그는 짧은 곡에서도 명확히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
이 앨범이 화두는 보사노바 음악의 대명사 안토니오 카를로스 조빔이다. 그러나 뜻밖에도 볼라니는 보사노바라는 리듬에 그다지 큰 비중을 두지 않는다. 이 앨범에서 보사노바는 한두 곡에서 잠간식 드러날 뿐이다. 그렇다고 볼라니가 이 음악들을 다른 라틴풍의 리듬으로 연주하는 것도 아니다. 이 앨범에서 단지 조빔은 작곡가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볼라니는 자신의 다른 두 동료와 함께 조빔의 음악을 하나씩 자신만의 이야기로 만들어간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그러한 개인화의 과정에서 의외로 조빔의 이미지가 드러난다는 것이다. 이 앨범의 모든 곡들은 지극히 멜로디적이면서 동시에 리듬적이다. 그리고 이 두 구분되는 요인들은 함께 진행된다. 리듬이 강조되는 듯하다가 멜로디적이고 또 멜로디적인 듯하다가 리듬이 강조되는 그런 음악이 보사노바가 아니었던가? 볼라니는 바로 이 부분을 보사노바 없이 아주 깔끔하게 재현해 내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연주를 연주에 머무르지 않고 개인적인 표현수단으로 사용할 수 있는 연주자들에게만 가능한 일이다. 한편 이러한 개인적인 방식으로 풀어나가는 조빔의 음악이면서도 우리가 조빔의 음악에서 느꼈던 편안함은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는 것도 주목할 만한 일이다. 단지 조빔이 사람을 느슨하게하는 맛이 있었다면 볼라니의 경우는 그만의 수다스러운 피아노로 정신을 보다 더 명징하게 만든다는 것이 다를 뿐이다. 좋은 여름용 앨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