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매일 세상은 변한다. 특히 최근에는 어제 구입한 물건이 마치 1년 전에 구입한 구닥다리 물건처럼 취급 받는 경우가 많다. 물질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가치관, 취향 또한 커다란 바람에 따라 물결이 좌우로 방향을 바꾸듯 수시로 변화한다. 그래서 갈수록 사람들은 과거에 강한 애착을 갖는다. 그것은 과거만이 불변의 진실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복고, 레트로(Retro)는 이제 현대 사회를 정의하는데 꼭 들어가야 할 필수 요소가 되어 버렸다. 이 과거의 것들은 질릴 정도로 익숙하지만 그만큼 사람들에게 안정을 준다. 결국 시대가 바쁘게 변화할수록 사람들은 변하지 않는 것을 찾게 된다.
다소 긴 가외 이야기로 시작하였는데 그 이유는 알 그린의 이번 새 앨범 <Everything’s OK>를 들으며 불변하는 것의 안락함을 새삼 느꼈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알 그린의 기본이 이번 앨범에도 그대로 배어 있음을 확인하면서 늘 새롭게 변해야 만족을 주는 인물-특히 재즈 연주자들만큼 새로움에 대한 강박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없을 것이다-들이 있다면 알 그린은 변하지 않기에 만족을 주는 인물이 아닐까 생각했다.
알 그린은 70년대를 풍미한 슈퍼 스타였다. 70년대 정서의 상당 부분은 알 그린의 음악에 빛을 지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그의 R&B 소울 음악은 70년대를 상징하는 아이콘이다. 그래서 그의 활동은 반대로 80년대에 접어들면서 자연스럽게 힘을 잃었다. 70년대를 벗어난 음악은 알 그린의 음악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나 2000년대에 다시 그의 음악은 존재 이유를 찾았다. 오랜 공백을 깨고 지난 2003년에 선보였던 <I Can’t Stop>에 많은 감상자들은 환희의 반응을 보였다. 나 역시 왜 소울 가수가 블루 노트에서 앨범을 발매하는가? 왜 다른 재즈 연주자의 기회를 그가 빼앗았는가? 불평했지만 절대 “멈출 수 없다”는 그의 선언을 듣고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오랜 공백에도 불구하고 그는 언제 시간이 흘렀냐는 듯, 그 사이 음악에 무슨 변화가 있었냐는 듯 거침없이 자신의 변하지 않은 소울 음악을 들려주었다.
이번 앨범 역시 알 그린은 전혀 새로운 음악을 들려주지 않는다. 현대적으로 이전의 음악을 변용하겠다는 식의 새로움에 대한 욕구를 그는 지니고 있는 것 같지 않다. 여전히 70년대에 들려주었던 “바로 그” 음악, 부스스한 곱슬 머리에 통 넓은 바지를 입고 커다란 폰티악 자동차를 몰고 도시를 유유자적 배회하는 70년대의 젊음의 배경이 되었던 그 음악을 들려주는데 충실할 뿐이다. 그래서 분명 새로운 앨범임에도 새로움 이전에 익숙함을 먼저 느끼게 해준다. 작렬하는 브라스 섹션, 손을 높이 쳐들고 엉덩이를 살랑살랑 흔들며 노래하는 여인네들의 모습을 떠올리게 만드는 코러스, 그리고 가성과 진성을 오가며 변하지 않는 소울을 들려주는 알 그린의 보컬은 70년대의 소울 그 자체이다. 사운드는 어떤가? 사운드의 질감과 해상도를 향상하기 위한 다양한 기술이 현재 개발되었지만 알 그린의 사운드는 일부러 사운드를 살짝 포화시켜 복고적 향취가 묻어나게 했다. (지난 달 “낯선 청춘 일본을 가다”에서 소개했던 일본 비너스 레이블의 사운드 정책을 생각하면 이해가 쉬우리라 생각된다.) 게다가 작곡도 70년대의 조제법으로 만들어졌다. 내가 이 앨범이 익숙하게 느껴진다고 밝혔던 큰 이유 중 하나가 아마도 수록곡들의 코드 진행 때문이었는데 실제 앨범을 들어보면 아주 쉽게 곡의 다음을 예측하게 된다. 그럼에도 진부하다 질린다는 생각을 하지 않게 되는 것은 그 익숙함이 의외로 편안함과 안락함의 정서를 이끌어 내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앨범의 타이틀 곡이자 첫 곡인 “Everything’s OK”를 들어보자. 아마 이 곡의 인트로 첫 소절의 코드 진행을 들으면 당신은 이미 이 곡의 전체를 예측하게 될 것이다. 그럼에도 끝까지 곡을 듣게 되는 것은 예상이 그대로 맞아 떨어지는 것이 즐겁기 때문이다. 그래서 알 그린의 음악이 2000년대에 다시 유효하게 된 것은 현재 대중 음악의 흐름이 흑인 음악을 중심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알 그린의 음악에 담긴 예측 가능성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알 그린은 음악을 통해 이렇게 말한다. 그 자체로 아름다운 것은 변하지 않아도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