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기에 출신의 키보드 연주자 마크 물랭의 이번 앨범에 담긴 음악은 지난 세기 말에 시작해 유럽에서는 하나의 흐름으로 자리잡은 일렉트로 재즈로 정의할 수 있다. 그런데 일렉트로 재즈라 하면 최근 많은 사람들은 일렉트로니카 DJ들이 재즈의 고전들을 재료로 새롭게 리믹스한 음악을 먼저 떠올리는 경향이 있다. 이것은 음반사들의 일렉트로 재즈에 대한 잘못된 이해와 그에 따른 그릇된 정책에 기인된 것인데 사실 일렉트로 재즈는 단순히 복사와 붙이기의 음악이 아니다. 이 시대의 새로운 리듬과 사운드의 질감을 재즈에 적용하여 보다 현대적인 사운드를 만들려는 음악이다. 그래서 이 일렉트로 재즈에도 확실한 멜로디와 솔로가 존재한다. 그것은 보통 재즈 연주자들이 제작한 일렉트로 재즈에서 보다 쉽게 발견되는데 이 마크 물랭의 음악도 예외는 아니다.
사실 마크 물랭은 단순히 일렉트로 재즈를 지향하는 인물로 이해하기에는 곤란한 인물이다. 그는 1970년대부터 활동 해온 재즈 피아노 연주자로 미국의 재즈 연주자들이 공연할 때 세션 연주를 하기도 하고 또 아방가르드 재즈 그룹을 결성하기도 했다. 이처럼 재즈에 대한 깊은 이해를 지녔기에 그의 일렉트로 재즈는 기존의 리믹스 앨범들과 차별성을 보인다. 그것은 무엇보다 연주자의 솔로가 보장되고 있다는 것이다. 앨범에서 그는 트럼펫 연주자 베르트 요리스를 정규 멤버로 배치하고 이 외에 기타 연주자 필립 카트린, 색소폰 연주자 파브리스 알만, 요한 반덴드리슈 등을 게스트로 초빙하고 있는데 이들의 역할은 모두 재즈적인 솔로를 펼치는데 있다. 특히 베르트 요리스의 트럼펫은 마일스 데이비스에 대한 강한 추억을 떠올리게 한다. 이런 솔로에 마크 물랭은 부드러운 배경을 제공할 뿐이다.
한편 기존의 일렉트로 재즈 사운드가 너무나도 공간적 여백을 두지 않는 꽉 찬 사운드로 일관되어 오랜 감상에 부담을 주었던 것과 달리 마크 물랭이 만들어 내는 사운드에는 부드러움만큼의 여백이 느껴진다는 것도 차이로 부각된다. 즉, 사운드는 일렉트로지만 그 질감은 어쿠스틱에서 출발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반대로 이 앨범의 한계로도 작용한다. 그러니까 전문 일렉트로니카 DJ들의 작업에 비해 정교한 맛이 다소 부족하다는 것이다. 이것은 재즈 연주자와 일렉트로니카 DJ가 공동 작업을 하지 않는 이상 언제나 선택의 문제로 남게 되는 것이기에 어쩔 수 없는 것일 지도 모른다. 그러나 조금만 더 그만의 재치를 사운드에 더했다면 정말 이상적인 일렉트로 재즈 앨범이 만들어졌을 것이다.
이런 아쉬움에도 이 앨범이 인상적인 일렉트로 재즈 앨범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특히 국내에서 생 제르맹 이후 일렉트로 재즈에 대한 관심이 다소 줄어든 편인데 이 앨범이 새로이 일렉트로 재즈에 대한 관심을 불러 일으키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