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베이스 연주자 아릴드 안데르센은 전체적으로 북유럽의 시적인 서정이 때로는 클래시컬하게 때로는 월드 뮤직적인 색채로 표현된 음악을 선보여 왔다. 실제 그의 음반 목록을 살펴보면 상당히 회화적이고 차분한 느낌의 정갈한 음악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몇몇 앨범믈은 다소 특이한 음악을 담고 있는데 가장 최근의 앨범 가운데서 꼽는다면 지난 2000년에 발표했던 <Karta>앨범이 좋은 예라 하겠다. 상당히 실험적이고 질감 중심의 음악을 담고 있었던 이 앨범은 아릴드 안데르센의 특별한 앨범 정도로 치부되었었다. 그러나 올 해 발매된 <Electra>에서 이 특별함은 부인할 수 없는 매력으로 새롭게 반복되고 있다.
이번 앨범은 야니스 마르가리티스라는 감독이 이끄는 아테네 스프링 극단이 소포클레스의 비극 엘렉트라를 주제로 펼치는 퍼포먼스를 위한 음악으로 작곡된 곡들을 담고 있다. 그러나 굳이 퍼포먼스와 연관을 맺지 않더라도 앨범 자체로 하나의 완벽한 서사구조를 이루고 있다. 아무튼 이번 앨범의 음악들은 지금까지 아릴드 안데르센이 보여주었던 어쿠스틱 질감의 서정성과는 거리가 먼 파격으로 가득하다. 그것은 어둡고 침침한 공간적 느낌을 만들어 내는 일렉트로닉스의 사용 때문이다. 게다가 그 무거운 공간은 단순히 북유럽식의 차가움에만 의존하지 않는다. 두 명의 타악기 연주자 파올로 비나치아와 파트리스 헤랄이 만들어 내는 아랍적인 분위기, 그리고 그리스의 여가수 사비나 야나투가 만들어 내는 그리스적인 슬픔, 그리고 아르베 헨릭센이 건조하디 건조한 트럼펫 사운드로 만들어 내는 불모의 정서가 어우러지면서 전체 사운드는 지도상에 존재하지 않는 신화적인 공간을 향한다. 특히 그 몽환적이고 신비한 비의적(秘儀인 동시에 悲意이기도 한) 정서가 트럼펫이 아닌 드럼 프로그래밍으로 참여한 닐스 페터 몰베의 공간적 특성에 빚을 지고 있다는 점은 앨범의 특이한 점으로 다가온다.
지금까지 아릴드 안데르센은 ECM 레이블의 간판 연주자로 많은 명작들을 발표해 왔다. 그 가운데서 이 앨범은 적어도 최근 20년 안에 발표된 그의 모든 앨범 가운데서 가장 독특하고 가장 미학적이며 가장 감동적인 음악을 담고 있다. ECM 사운드를 좋아하는 감상자에겐 필청 앨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