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 히긴스가 한국의 재즈 애호가들의 관심을 끌 게 된 것은 아마 극히 최근이 아닌가싶다. 여기에는 재즈 전체를 아우르지 못하는 국내의 음반 수급의 한계 때문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그가 소위 말하는 메이저급 연주자가 아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사실을 제대로 말한다면 필자도 그의 연주를 제대로 들어보았던 적이 별로 없다. 그의 아내인 메레디스 암브로시오-이 사실도 역시 최근에서야 알 게 되었다!-의 앨범을 통해서 들었던 것이 거의 전부였다. 그리고 그 연주도 메레디스 암브로시오의 조금은 심심한 스타일에 가려져서 그런지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도 못하고 그냥 필자의 기억 가장자리로 이내 밀려난 상태였다. 그래서 최근 그의 최근 리더작들을 접하게 되었을 때 필자는 그가 뒤늦게 자신의 재능에 눈을 뜬 40대 정도의 신선한 피아노 연주자로 생각을 했다. 그러나 그는 70세가 넘은 할아버지였다! 이것은 도저히 그의 음악을 들으며 상상할 수 없었던 부분이었다. 왜냐하면 그의 연주에는 안정감이 돋보이기는 하지만 무엇보다도 싱싱한 활력이 장점으로 강하게 부각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최근 녹음은 모두 일본 음반사 Venus를 통해서 이루어지고 있다. 비너스에서 녹음을 하면서 몰랐던 그의 연주가 지닌 미덕들이 거리낌없이 드러나고 있다는 것인데 그것이 제작사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드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래도 연주자에게 맞는 음반사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생각을 절로 하게 만든다. 그래서 유달리 한국에서 인기가 많은 듀크 조던이나 케니 드류, 그리고 유러피안 재즈 트리오의 경우처럼 에디 히긴스도 국지적이지만 최소한 일본에 이어 한국에서는 많은 사랑을 받게되는 연주자가 되지 않을까 생각된다.
이번 앨범은 판매가 아닌 제작에서 일본에서 얼마나 그가 인기를 얻고 있는가를 반영한다. 왜냐하면 이 앨범의 수록곡들이 모두 일본 스윙저널의 독자들이 선정한 애청 스탠다드 곡 25곡에서 추려진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냥 스탠다드가 아닌 에디 히긴스가 연주하면 어울릴 듯한 스탠다드 곡에 대한 독자들의 선곡이었다고 하니 그가 일본에서 어느정도 인기를 누리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분명 스탠다드 곡집임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기본적으로 스탠다드라 하면 떠올릴 수 있는 상당수의 곡들이 이 앨범에 등장하지 않는다. 몇몇은 상대적으로 덜 연주되는 곡들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이다. 필자의 경우 오히려 익숙함을 바탕으로 선곡의 상투성을 벗어난 점이 마음에 든다.
위에서도 비슷한 언급을 했지만 이 앨범에 담긴 히긴스의 피아노는 밝고 경쾌하다. 그가 테마에서 확장시켜나가는 즉흥 연주는 연주 이전에 보컬리스트의 노래같다. 밥을 근간으로 하면서 절대로 자신의 감정을 오버한다거나 파격적 새로움을 향해 치닫지 않는 안정성을 보인다. 이를 토대로 그의 연주는 테마를 장식음으로 치장하는 것부터 시작해 한올 한올 아름다운 멜로디를 만들어나간다. 이러한 과정이 어찌보면 가장 일반적인 것이고 또 이러한 상투성의 함정에 빠져서 진정성을 지키지 못한 경우도 실제 많았지만 이번 히긴스의 연주는 그러한 위험을 살짝 비켜나가고 있다. 이것은 단지 히긴스 혼자만의 힘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를 뒤따르는 베이스와 드럼이 철저하게 스윙감을 유지하면서 조력자로서의 위치를 견지하기에 가능한 것이다.
한편 익숙한 소재를 가지고 다른 파격없이 이렇게 신선하게 만들어내는 것은 어쩌면 감상자에게 각각의 곡이 독자성을 가지고 다가갈 수 있는 개인적인 면을 보편적인 것으로 치환했기에 가능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왜냐하면 이 앨범에 담겨 있는 각 곡들이 주는 분위기는 부드럽고 편안한 낭만, 보통 고급스럽다고들 말하는 그런 낭만으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분위기를 전제로 각 곡들이 정렬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데 사실 재즈에서 테마는 원래 연주자의 편곡이나 해석에 따라 다양하게 변할 수 있다지만 이처럼 하나의 분위기로 다양한 성격의 곡들이 수렴되는 경우는 대부분이 그렇게 긍정적인 결과를 얻지 못했다. 이런 이유로 위에서 잠깐 언급했듯이 히긴스의 분위기가 그가 아닌 음반사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을 갖게 하지만 어쨌건 소년같은 이 할아버지가 만들어내는 보편적인 분위기가 필자는 싫지가 않다. 오히려 기분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