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이 브래드 멜다우를 좋아한다. 분명 그는 빌 에반스, 키스 자렛 등으로 이어진 정서적인 측면에서 대중적인 사랑을 받고 있는 피아노 연주자다. 특히 그의 피아노 연주에 담겨 있는 우울한 서정은 다른 연주자들이 쉽게 따라 하기 힘든 그만의 서명으로 자리잡고 있으며 또 이런 이유로 동시대 많은 연주자들이 그와 유사한 정서의 표현에 큰 관심을 두고 있는 중이다. 한편 이러한 우울한 서정성 외에도 그는 결코 전통적인 트리오 양식을 벗어나지 않음으로써 새롭지만 안정적인 감상을 감상자들에게 제공한다. 이런 점들이 그를 새로운 인기 피아노 연주자로 자리잡게 했다는 생각이다.
하지만 모든 것은 반복되면 낡게 된다. 지금까지 그는 Art Of The Trio 시리즈를 비롯한 여러 트리오 앨범을 발표했다. 그리고 그 앨범들은 모두 대중적으로 소기의 성공을 거두었다. 하지만 그의 앨범들은 갈수록 새로운 감수성의 발견보다는 예견할 수 있었던 서정의 확인의 측면으로 감상되기 시작했다. 그렇게 브래드 멜다우의 피아니즘이 익숙해져 평범해질 무렵 그 역시 변화의 필요성을 느꼈었는지 <Largo>(Warner 2002)같은 비 트리오 앨범을 발매하기도 했다. 하지만 트리오 앨범의 불만을 다른 시도로 풀어나가는 것은 한계를 지닌다. <Largo>앨범은 분명 브래드 멜다우가 지닌 신선한 상상력을 재확인할 수 있었지만 그의 트리오 자체를 새로이 느끼게 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필자는 거듭되는 그의 트리오 앨범을 들을 수록 불안을 느꼈다. 그것은 그만의 특성이라 할 수 잇는 어둡고 우울한 측면 때문이 아니라 갈수록 이 젊은 피아노 연주자의 재능이 소진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 불안의 정점이 바로 지난 해 발매되었던 앨범 <Anything Goes>(Warner 2004)였다. 겉으로 본다면 그다지 흠잡을 곳이 없는 브래드 멜다우 트리오의 바로 그 연주를 담고 있었을 지 모르나 어느 패턴화 되어버린 제작방식이 드디어 이 트리오가 한계에 이르렀다는 생각을 갖게 했다.
그러나 이번 앨범은 다시 생기를 되찾은 브래드 멜다우 트리오의 모습을 담고 있어 반갑다. 트리오의 호흡부터 브래드 멜다우의 피아니즘까지 모든 것이 예의 매력적인 브래드 멜다우 트리오의 모습으로 돌아왔다는 생각이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겠지만 무엇보다 멤버의 변화가 가장 크게 작용하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브래드 멜다우의 오랜 파트너였던 호르헤 로시가 나가고 제프 발라드가 드럼을 연주하고 있는데 이 변화가 사운드에 가져다 준 변화는 상당하다. 사실 올 해 내한 공연 때 호르헤 로시가 아니라 제프 발라드가 함께 왔을 때 많은 관객들은 아쉬워했고 필자 역시 그 사운드에 그다지 긍정적인 느낌을 받지 않았었다. 그러나 그 사이 많은 것이 변했다. 제프 발라드는 옄쾌, 명료한 질감으로 마치 이펙터가 걸린 드럼 세트를 연주하듯 명확하게 리듬을 연주한다. 과연 드럼 연주자의 변화가 지난 서울 공연처럼 일시적인 것인지는 모르지만 최소한 이번 앨범에 상당히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음은 분명하다.
이렇게 물고기가 수면 위로 튀어 오르는 듯한 신선한 드럼 연주는 브래드 멜다우의 피아노 연주에도 상당한 변화를 주었다. 그의 피아노는 극적이고 어두운 우울은 그대로 잠재되어 있지만 그 정서는 비관보다는 낙관에 가깝다. 실제 피아노 톤은 상당히 맑고 가벼워져 있으며 곡에 따라서 상기된 에너지마저 느껴진다. 이를 위해 앨범의 유일한 피아노 솔로 연주 곡인 Martha My Dear를 들어보기 바란다. 비틀즈의 원곡이 우울함과는 거리가 있는 곡이긴 하지만 브래드 멜다우의 피아노는 유난히 밝은 곳을 지행하고 있다. 이 외에 다른 곡들에서도 그의 생기 있는 피아노는 큰 매력을 발상하는데 이 피아노가 래리 그르나디에, 제프 발라드와 호흡할 때 필자는 새삼 이 트리오가 키스 자렛 트리오의 호흡에 필적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한편 이런 변화로 인해 몇몇 감상자들은 혹시 브래드 멜다우의 매력이 상실되지는 않았나 생각할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렇지는 않다. 밝은 곳을 지향하고 있지만 개인적 이야기를 꾸며나가는 그의 피아노가 주는 매력은 전혀 상쇄되지 않았다. 게다가 이러한 변화 외에 기존 제작 방식의 상당 부분은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자. 단지 이 방식들이 매너리즘의 한계를 극복하고 다시 개성의 영역으로 넘어왔을 뿐이다. 아무튼 그래서 이번 앨범에서도 브래드 멜다우가 정서적으로 공감하고 있다고 여겨지는 록 그룹 라디오헤드의 곡 Knives Out! 이 연주되고 있고 그 밖에 비틀즈, 폴 사이먼, 닉 드레이크 등의 타 장르의 곡이 브래드 멜다우의 감성 영역에 포착되어 있다. 이들 곡들을 새로이 연주하면서 브래드 멜다우는 이야기 꾼으로서의 재능을 다시 한번 과시한다.
이번 브래드 멜다우 트리오의 음악은 다시 한번 그의 트리오에 대한 감상자들의 애정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부디 이런 식으로 그의 트리오 음악이 지속되기를 바랄 정도로 이번 그의 음악이 주는 완성도는 매우 크다는 평가를 내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