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지막이 어쿠스틱 기타의 담담한 울림이 있은 뒤 삶의 기쁨과 애환이 담긴 여인네의 목소리가 어두운 심연 저편에서부터 솟아오른다. 이 여인네의 노래에 감상자는 지난 삶, 사랑을 생각하며 감상에 젖는다. 그렇게 메르세데스 소사의 음악은 하나의 기억으로 지속된다.
분명 메르세데스 소사는 남미를 대표할만한 여성 보컬이다. 그것은 단순히 그녀의 오랜 활동 때문이 아니다. 그녀의 음악이 지닌 정서적 파급력 때문이다. 게다가 그녀의 음악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화려한 리듬을 기반으로 한 축제적 성격의 라틴 음악과는 거리가 있는, 오히려 포크적 성격을 지닌 것이다. 그녀의 음악은 누에보 칸시오네라고 정리되곤 하는데 절제된 어쿠스틱 기타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그녀의 노래에는 비탄과 슬픔, 약간의 기쁨이 다양한 조합으로 드러나곤 한다. 그래서 우리는 그녀의 음악을 듣게 되면 한 사람의 인생 드라마를 보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 된다.
그런데 메르세데스 소사의 음악은 개인적인 정서를 건드리기 이전에 정치적이었고 사회참여적이었다. 그녀의 노래는 언제나 인권, 자유 민주주의에 대한 희망을 담고 있었다. 그 결과 아르헨티나의 열악한 정치적 상황에 휩쓸려 1975년 공연도중 체포되기도 했으며 나아가 1979년부터3년간 해외 도피 생활을 하기도 했다. 말하자면 아르헨티나 저항 음악의 기수였다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하지만 만약 그녀가 불의에 항거하는 투사로서의 이미지에 만족했다면 지금처럼 그녀의 명성과 음악이 지속되었으리라 생각되지 않는다. 이것은 이번에 발매된 새로운 앨범을 통해서 확인된다. 이제 70대에 접어 들은 그녀가 6년 만에 스튜디오에서 녹음했다는 이번 앨범에도 여전히 자유와 남아메리카의 정치적 부조리가 그 음악적 주제로 등장한다. 게다가 앨범 표지도 미국 포크 음악의 대명사 가운데 하나인 존 바에즈가 그린 것이라니 그 참여적 의미는 강화된다. 그러나 이번 앨범은 굳이 가사의 의미에 신경 쓰지 않고 순수한 음악적 차원에서 감상을 하더라도 큰 만족으로 다가온다. 루이스 살리나스, 호르헤 줄리아노 같은 기타 연주자들을 불러 그들의 서정적인 기타를 반주로 슬픔과 깨달음이 교차하는 목소리로 노래하고 있는데 그 자체만으로 가사와 상관없는 감동을 선사한다. 분명 우리 한국의 감상자들처럼 언어적 한계가 있는 감상자들에게도 만족을 줄만한 것이다. 결국 정치적인 성향에도 불구하고 음악이 이에 종속되지 않고 순수하게 자기자리를 지키고 있다는 점이 메르세데스 소사의 음악이 지닌 힘인 것이다. 그리고 이런 이유로 아르헨티나를 벗어난 세계 각지의 감상자들이 그녀의 음악을 사랑하는 것인 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