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재즈 연주자 층이 얇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뛰어난 연주자가 부족하다고 나는 생각하지 않는다. 게다가 몇 해 해부터 꾸준히 해외로 재즈 공부를 떠났던 젊은 연주자들이 한국 재즈의 내일을 꿈꾸게 하는 음악과 함께 돌아오고 있어 우수한 실력을 지닌 연주자들을 만나기란 이제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라 말하고 싶다. 그럼에도 우리는 우수한 한국 연주자들의 음악을 듣는데 큰 어려움을 느낀다. 그것은 많은 연주자들이 정작 자신의 음악을 담아 낸 앨범을 지니고 있지 않다는데 있다. 이것은 시장 상황에 따른 결과라 할 수 있겠지만 가뜩이나 어려운 한국 재즈의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는데 일조하고 있음을 부인할 수는 없을 듯하다.
베이스 연주자 서영도도 그러하다. 아마 조금이나마 한국 재즈에 관심을 가진 감상자라면 그의 연주는 들어보지 못했어도 이름은 여기저기서 들어보았으리라 생각된다. 그는 순수 국내파 연주자로 현장에서 재즈를 익히며 성장한 인물이다. 그리고 그 와중에 수많은 유명 대중 가수들의 앨범 및, 뮤지컬, 영화 음악의 세션 연주자로 활동을 했다. 그래서 그만큼 그의 존재를 아는 사람은 많다. 그러나 10년 이상 전문 재즈 연주자로 활동한 그의 리더 앨범은 전무하다. 이번에 선보인 <Circle>이 그 첫 앨범이다.
서영도 트리오의 구성은 그의 베이스와 정수욱의 기타, 그리고 이덕산의 드럼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런 종류의 편성을 보면 대부분의 감상자들은 화려한 솔로가 돋보이는 재즈롹, 롹재즈 밴드의 음악을 상상하게 될 것이다. 시종일관 질주본능을 자극하는 현란한 기교로 감상자의 숨을 콱 막히게 하는 그런 음악 말이다. 그러나 서영도 트리오의 음악은 이런 일반적인 예상에서 살짝 궤를 달리한 음악을 들려준다. 분명 롹성향이 느껴지는 연주지만 일체의 여백을 허용하지 않으려는 듯 사운드 공간을 채우려는 강박적 연주를 펼치는 전형적인 전자 기타 트리오와 다른 지점을 향하는 음악을 들려준다. 실제 몇 곡에서 기교 넘치는 연주가 돋보이지만 그 사운드는 그다지 공격적이지 않다. 베이스, 기타, 드럼 할 것 없이 모두 동그랗고 부드러운 질감이 거친 사운드를 우선한다.
이러한 부드러운 질감은 연주자들의 조화를 향한 노력을 통해서 만들어진 것이라 할 수 있다. 즉, 트리오의 연주는 여백까지 느끼게 해줄 정도로 여유로운 모습을 보여주는데 이것은 세 연주자가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기 보다는 하나의 완성된 사운드를 만드는데 더 주력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타는 자신이 드러날 수 있는 순간에 다양한 이펙터로 사운드 친화적인 질감을 연출해 내고 베이스 또한 강력한 탄성이 느껴지는 톤보다는 둥그렇고 묵직한 톤을 더 많이 선호한다. 결국 앨범 타이틀 “Circle”은 서로가 서로를 존중하고 따르는 하나된 연주를 의미하는 것일 수도 있다. 게다가 앨범 수록 곡들의 진행이 혼돈 속에서 질서를 만들어 가는 식으로 흐르고 있는 것도 하나된 조화를 표현하고자 하는 서영도 트리오의 의지가 반영된 것이다.
보통 퓨전 재즈라 하면 많은 사람들은 긴장이 풀어진 적당한 분위기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사운드를 연상한다. 그러나 이 앨범의 사운드는 그렇지 않다. 포스트 밥의 현대성과 여러 대가들이 종종 표현하곤 하는 명상적 여백이 가미된 보다 진일보한 퓨전 재즈 사운드다. 물론 이런 종류의 사운드가 완전히 감상자들에게 낯선 것은 아니다. 그러나 한국 재즈만을 놓고 본다면 이런 사운드는 분명 새로운 시도로 다가온다. 나아가 시도를 넘어 하나의 완성된 개성으로 다가온다. 첫 앨범임에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