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고적인 취향으로 현재를 낭만적으로 만드는 캐롤
해마다 겨울이 되면 사람들은 마음의 공허함을 느낀다. 그것은 추워진 날씨 때문일 수도 있지만 아쉽게 흘러가는 시간 때문이기도 하다. 그 흘러가는 시간을 누가 붙잡을 수 있으며 지나간 시간에 대해 그 누가 만족할 수 있을까? 그렇기에 해가 바뀌는 겨울이 되면 사람들은 알 수 없는 조급함 속에서 현재 위치를 자문하곤 한다. 그러면서 시선을 앞이 아닌 뒤로 돌린다. 꼭 형식적으로 한 해를 정리하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어느새 아름다운 것으로 변해버린 지난 추억을 통해 현재의 공허함을 극복하는 것이다. 이러한 과거에 대한 애착은 크리스마스가 되면 더해진다. 이미 존재하지 않음을 알면서도 산타 클로스의 전설을 믿고 이 맘 때 개봉하는 만화 영화나 멜로 영화를 보는 것이 그 좋은 예일 것이다.
음악도 마찬가지다. 크리스마스 하면 캐롤을 자연스레 떠올리게 되는데 여전히 전통적인 분위기의 캐롤 음악들이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익숙함을 넘어 때로는 지겹다 싶을 때도 있지만 크리스마스가 되면 그러한 불평은 사라지고 지난 추억을 들추듯 편안한 캐롤에 귀를 기울이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몇 년 째 같은 캐롤만 들을 수는 없는 법. 아마 당신도 같은 마음에 퍼피니 시스터즈의 이번 크리스마스 앨범을 선택했을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당신의 선택은 합리적이고 최선의 선택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퍼피니 시스터즈는 이탈리아 출신으로 영국에 거주하고 있는 마르첼로 퍼피니와 두 명의 영국인 케이트 멀린과 스테파니 오브라이언이 2004년에 결성한 3인조 여성 보컬 그룹이다. (그러니까 퍼피니라는 성의 친 자매들이 아니다.) 이들이 함께하게 된 것은 리더인 마르첼로 퍼피니가 우연히 프랑스의 실뱅 쇼메 감독의 2003년도 만화영화 <Les Triplettes de Belleville 벨빌의 삼인용 자전거>를 본 것이 계기가 되었다. 그 속에 나오는 1940년대 스타일의 노래를 부르는 여성 그룹에 매료된 것. 그래서 보컬 그룹 공고를 내고 여기에 어릴 적부터 재즈를 좋아했으며 또한 개인적으로 카바레에서 노래하거나 스윙 밴드 등에서 노래한 경험을 지닌 두 사람이 지원하면서 그룹의 역사를 시작할 수 있었다. 시작이 이러했던 만큼 퍼피니 시스터즈의 음악은 처음부터 1940년대를 향했다. 2차대전이라는 세기의 전쟁이 있었지만 그 속에 융성했던 낭만적인 보컬 음악을 새롭게 현재로 불러내는 노래를 했던 것이다. 특히 전쟁의 포화 속에서 사랑을 받았다는 앤드류 시스터즈는 이들의 모범이라 할만하다.
이러한 복고적인 취향은 이번 크리스마스 앨범에서도 그대로 지속되고 있다. 화려한 브라스 섹션과 흥겨운 리듬이 어우러진 점프 블루스 스타일의 첫 곡 ‘Step Into Christmas’부터 퍼피니 자매는 과거에 대한 강한 애착을 드러낸다. 이어‘Let It Snow’에서는 거대하고 화려하지는 않지만 빅밴드의 감칠맛 나는 스윙 사운드가 겨울의 낭만으로 안내한다. ‘Winter Wonderland’는 어떠한가? 크리스마스를 상징하는 겨울 종소리가 행복 넘치는 크리스마스의 하얀 풍경을 상상하게 한다. 마지막 곡 ‘O Holy Night’은 평온하고 경건한 크리스마스의 밤이나 새벽을 떠올리게 하기 충분하다. 한편 올디스 벗 구디스(Oldies But Goodies)라 불리는 50년대 올드 팝의 전형적인 스타일을 재현한 듯한 ‘Santa Baby’나 ‘Mele Kalikimaka’같은 곡들도 청량한 보컬을 통해 지금보다 촌스럽고 부족했지만 그만큼 따스했던 지난 시대를 떠올리게 한다.
이처럼 앨범에 담긴 퍼피니 시스터즈의 캐롤은 사람들이 지금보다는 더 순수했고 겨울의 하얀 색이 더 오래 지속되었던 과거로 우리를 이끈다. 하지만 과거를 향한다고 해서 퍼피니 시스터즈가 현재를 무시 혹은 망각하고 부질 없이 과거로 돌아가려는 퇴행적인 자세를 보인다는 것은 아니다. 만약 그랬다면 예전처럼 크리스마스 캐롤의 스테디 셀러인 빙 크로스비, 팻 분의 앨범을 다시 꺼내 듣는 것이 더 좋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들이 그 누구보다도 현재를 잘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복잡하고 어지러운 현재를 사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지난 과거의 단순 명료함, 순수함이라 생각하기에 이리 복고적인 노래를 부르는 것은 아닐까? 조지 마이클이 있었던 왬(Wham)의 ‘Last Christmas’와 머라이어 캐리의 ‘All I Want For Christmas’가 여러 캐롤의 고전들 가운데 자리잡고 있는 것이 이를 말한다. 원곡도 크리스마스의 분위기에 충실한 것이었지만 이 곡들을 세 자매는 보다 많은 세대가 공감할 수 있는, 세 여성 보컬의 조화로운 어울림을 잘 느낄 수 있는 곡으로 바꾸는데 성공했다. 물론 과거에 대한 강한 애착을 간직하면서 말이다.
이런 면들은 이들의 노래를 친숙하지만 진부하지 않은 것을 받아들이게 한다. 그리고 나아가 캐롤을 들으며 무작정 과거를 그리워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현재를 보다 낭만적으로 바라보게 한다. 나 같은 경우 이번 앨범을 들으면서 크리스마스 무렵이면 개봉하는 낭만적인 멜로 영화 속 공간-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를 무대로 한-을 상상할 수 있었다. 예를 들어 첫 곡 ‘Step Into Christmas’를 들으며 나는 <나 홀로 집에>처럼 왁자지껄한 사건이 일어나는 영화의 눈 내리는 오프닝 장면을 상상했다. 왜 있지 않은가? 크리스마스 선물을 준비하려는 사람들이 분주하게 오가는 거리를 배경으로 흐르는 경쾌한 캐롤 음악 말이다. 이어‘Here Comes Santa Clause’나 ‘Santa Baby’같은 곡을 들을 때는 트랜지스터 라디오를 통해서 캐롤을 듣는 듯한 착각에 빠졌다. 그래서 내가 있는 실내가 더욱 따뜻해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아마도 이번 앨범을 들으면서 당신 또한 나와 비슷한 상상을 하고 그 낭만적 분위기에 빠지지 않을까 생각된다. 나아가 크리스마스를 가족이나 연인과 함께 어떻게 보내야 좋을지 모르는 당신이라면 이 앨범을 통해서 나름의 이상적인 이미지를 얻을 지도 모른다.
퍼피니 시스터즈의 노래는 과거를 향하면서도 잠시나마 피곤한 현재에 여유를 부여하고 크리스마스를 보다 낭만적으로 꾸민다. 과거로 현재를 위로한다고 할까? 즉, 지난 날 많은 힘든 일이 있었지만 어느덧 시간의 흐름 속에서 모든 것이 그립고 아름다운 추억이 되었음을 깨닫게 하고 나아가 현재의 모든 어려움은 시간 속에서 가벼워지리라는 희망을 갖게 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퍼피니 시스터즈의 이번 앨범은 종교와 상관 없이 크리스마스의 미덕을 충실히 반영한 것이 된다. 부디 그녀들의 청량한 캐롤을 들으며 가족과 연인의 사랑을 확인하고 이를 통해 삶의 기쁨, 겨울의 낭만을 맛볼 수 있기 바란다. 아니 퍼피니 시스터즈의 노래 자체가 크리스마스의 기분 좋은 선물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