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nsons – Elie Semoun (BMG 2003)

ES사실 나는 엘리 세문이 노래를 하고 앨범을 녹음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그다지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는 가수 이전에 프랑스의 대표적인 코미디언이기 때문이다. 실제 프랑스 체류시절 나는 거의 매 주말마다 여러 토크쇼 성향의 코미디 프로에서 패널이나 진행자의 모습으로 등장하여 싱거운 농담부터 배꼽을 잡게 만드는 만담을 펼치는 세문의 모습을 보았다. 그래서 나는 이번 그의 앨범을 듣기도 전에 우리네의 경우처럼 그의 희극적인 면을 과장한 기획 음반일 것이라고 부정적으로 단정했다.

그러나 그는 우스운 표정과 언행으로 타인을 웃길 줄 아는 만큼 진지할 줄도 아는 인물이었다. 실제 이 앨범 어느 곳에도 화면에서 시청자를 웃기던 세문의 모습을 발견할 수 없다. 만약 블라인드 테스트를 했더라면 그 누구도 안개처럼 휘감는 사운드와 단순하면서도 깊은 울림을 만들어 내는 멜로디가 돋보이는 이 앨범이 세문의 것이라 상상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만큼 그를 잘 알고 있는 프랑스 인들에게는 이번 앨범이 충격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그러므로 세문의 이번 앨범은 일체의 선입견이 없는 감상을 요구한다. 이런 면에서 본다면 프랑스인들 보다 그를 잘 모르는 우리 한국의 감상자들이 훨씬 더 그의 음악을 그대로 이해할 수 있겠다.

희미한 안개처럼 공간을 감싸는 사운드의 “Mademoiselle A”로 시작하는 앨범에는 감미로움과 부드러움으로 가득 차있다. 그리고 그것은 온화한 보사노바 성향의 리듬에 의해 만들어 지고 있다. 이 리듬을 기반으로 세문은 촉촉함과 부드러운 목소리로 프랑스어 특유의 시적인 맛을 잘 살리며 노래를 하고 있는데 단순히 코미디언이 박자를 놓치지 않고 노래를 한다는 식의 미지근한 평가를 넘어 그가 음악과 그 정서적 느낌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다는 사실에 감탄하게 된다. 제공된 자료에 의하면 엘리 세문은 50,60년대의 재즈를 즐기며 이번 앨범의 경우 최근에 독특한 색채와 일관된 편안한 분위기로 프랑스에서 많은 인기를 얻었던 케렌 안, 앙리 살바도르, 리사 엑달의 음악을 모범으로 삼았다고 한다. 특히 앨범 전체가 보사 노바 계열의 리듬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리사 엑달의 <Sings Salvador Poe>앨범이 큰 영향을 미쳤으리라 생각된다. 실제로 앨범에는 살바도르 포의 몇 곡이 실려 있으며 “Vous”같은 곡은 리사 엑달과의 듀엣으로 새롭게 녹음되어 보너스 트랙으로 삽입되어 있기도 하다. 한편 이 외에 악셀 레드, 로랑 불지 같은 현재 프랑스 대중 음악 바리에테 프랑세즈를 이끌고 있는 인물들이 참여하고 있는데 모두 세문이 코미디언으로서의 자신을 버리고 그 동안 감추고 있었던 가수로서의 자신을 진실되게 드러냈음을 확인하게 해준다.

분명 감정적 과장이 심한 드라마보다는 안락한 부동의 실내적 분위기를 택한 그의 노래들은 기성의 프랑스 가수들도 쉽게 만들 수 없는 부분이다. 코미디언이 전달하는 차분한 우수가 달콤할 줄 그 누가 상상이냐 했으랴! 그래서 나는 세문의 이번 앨범에 대해 성급한 속단을 반성하며 최근에 발매된 여러 프랑스 샹송 앨범 가운데서 가장 낭만적인 분위기를 담고 있는 앨범이라는 평가를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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