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모시앙의 드럼은 리듬의 한계를 넘어 심벌들의 미묘한 울림으로 다양한 색감, 선율적인 흐름을 만들어 내는 것으로 정평이 나있다. 따라서 그는 많은 연주자들로부터 함께 연주하고픈 인물로 인기를 얻고 있다. 영국 출신의 색소폰 연주자 마틴 스피크도 마찬가지였던 모양이다. 그래서 키스 자렛을 좋아해 “Keith Jarrett”이라는 곡을 만들기도 했던 이 색소폰 연주자는 폴 모시앙을 좋아한 나머지 1993년 폴 모시앙에게 자신의 곡을 보내며 함께 연주하고 싶다는 의사를 표했다. 그리고 언제나 개방적인 성향으로 새로운 도전을 시도하던 폴 모시앙은 이를 흔쾌히 수락했다. 그러나 이들의 활동은 성공적인 공연에 국한되었을 뿐 앨범 녹음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그러다가 2000년 한 재즈 페스티벌에서 피아노 연주자 보보 스텐손을 만나면서 마틴 스피크의 오랜 파트너인 베이스 연주자 믹 허튼까지 포함해 퀄텟을 만들어 녹음하게 되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앨범은 마틴 스피크의 리더앨범이기는 하지만 그가 경외하는 폴 모시앙이나 보보 스텐손의 존재감도 상당 부분 드러나는 공동 앨범의 성격을 띤다. 실제 앨범은 비브라토가 제어된 부드럽고 온화한 스피크의 색소폰만큼이나 잘게 부스러지듯 섬세한 음의 색채감을 만들어 내는 폴 모시앙의 심벌과 시정어린 멜로디를 만들어 내는 보보 스텐손의 피아노가 귀에 들어온다. 그리고 이렇게 만들어진 사운드는 기존 ECM의 정적인 침묵의 공간 안에 머무는 것이지만 내적인 움직임 또한 은근히 드러난다. 그리고 이런 움직임은 서정적이고 회화적인 면이 드러나는 소위 ECM적인 사운드와 인터플레이와 솔로 연주 중심의 여타 포스트 밥 사운드를 오가는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앨범은 ECM 특유의 감상자를 상상의 세계로 이끄는 동시에 연주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게 해준다. 그래서 확연히 드러나지 않으면서도 새로운 ECM의 퀄텟 음악을 제시한 앨범이라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