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 연주자 로버트 클래스퍼는 미국 휴스턴 출신으로 올 해 26세 밖에 안된 젊은 피아노 연주자다. 젊은 나이에 걸맞게 그는 재즈를 연주하면서도 재즈의 전통적 이디엄이나 트렌드 자체에 얽매이지 않는다. 그가 재즈를 주로 연주하면서도 Q-Tip을 비롯한 여러 힙합 쪽 스타들과 음악적 관계를 맺고 있는 것도 장르적 경계와 상관없이 자신의 취향에만 충실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장르 간의 결합에는 다소 관조적인 태도를 지니고 있는 모양이다. 재즈와 힙합만큼은 나름대로 구분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실제 블루 노트에서의 첫 앨범이자 개인 통상 두 번째 앨범이 되는 <Canvas>를 들어보면 힙합의 느낌은 찾아 보기 힘들다. 심지어 그와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는 힙합 쪽 보컬 비랄이 참여한 두 곡에서조차 힙합의 그림자는 느껴지지 않는다. 전자적인 사운드가 하나의 분위기로 등장하기는 하지만 이 곡에서도 로버트 클래스퍼는 감성적 솔로를 드러낼 뿐이다. 아무튼 그는 다른 장르의 흔적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려 하지는 않는다.
앨범 <Canvas>가 들려주는 음악은 전통적인 포스트 밥 사운드다. 하지만 젊은 나이에 맞게 그 감수성은 곳곳에서 신선함으로 가득하다. 그것은 무엇보다 나이에 맞지 않은 여유다. 두 번째 앨범이었기 때문일까? 26세라는 나이에 걸맞지 않게 앨범에 담긴 그의 연주는 상당한 여유가 느껴진다. 왼손의 정교한 보이싱을 기반으로 오른손이 부단하게 움직이는 순간에도 그는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기를 멈추지 않는다. 그리고 비센테 아쳐의 베이스, 다미언 리드의 드럼과 만들어 낸 밀도 높은 인터플레이의 과정에서도 그는 강약의 조절과 적절한 반전으로 이야기를 이끌어 낸다. 그리고 이 고난도 인터플레이는 로버트 글래스퍼 개인 외에 그의 트리오를 새로이 보게 만들 정도로 앨범 감상의 큰 매력으로 작용한다. 그래서 그의 피아노는 수다스러운 듯 하지만 절제된 안정감이 느껴지고 또 그 속에서 긴 호흡으로 진행되는 극적인 상상력이 발견된다. 아마도 이 점은 앞으로 그가 단순한 피아노 연주자가 아니라 하나의 스타일리스트로서 발전하리라는 예상을 하게 만든다. 아마 이러한 이유로 스페인의 FSNT에서 단 한 장의 앨범을 녹음한 것밖에 없는 일천한 경력의 그를 블루 노트에서 발굴한 것이 아닐까? 실제 이 앨범을 들어보면 로버트 글래스퍼의 현재가 주는 매혹 외에 앞으로 펼쳐질 그의 가능성이 그를 주목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