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케치 레이블에 이어 미니엄 레이블을 이끌고 있는 제작자 필립 기엘메티는 피아노 앨범을 제작하는데 탁월한 감각이 있다. 실제 스케치와 미니엄에 이르는 동안 그가 제작한 앨범들은 피아노 앨범들이 주를 이룬다. 그 와중에 미니엄 레이블을 시작하면서 그는 피아노 연주를 중심으로 한 시리즈 앨범 제작을 기획했다. Standard Visit라 명명된 이 프로젝트는 널리 알려진 스탠더드 곡들을 연주자의 개성 어린 시선으로 서로 연주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고 있는데 사실 그 주제, 내용 자체는 그리 색다른 것은 아니다. 그러나 발표된 앨범들을 보면 생각보다 개성이 강한 음악을 들려주고 있음 느끼게 된다. 실제 6장의 앨범이 기획되어 지금까지 빌 캐로더스와 마크 코플랜드 듀오, 그리고 르네 우르트레제, 브뤼노 안젤리니의 앨범이 발매되었는데 이들 앨범들은 모두 과거와 현재 미래 모두를 담아낸 색다른 스탠더드 연주를 담고 있다.
한편 죠바니 미라바시의 <Cantopiano>는 바로 이 Standard Visit의 네 번째 앨범이 된다. 이 앨범은 다른 악기의 도움 없이 오직 피아노 솔로로 녹음되었다는 사실에서 미라바시의 지난 앨범 <Avanti!>(Sketch 2001)와 비교하게 만든다. 그리고 실제 앨범을 들어보면 제작 방식, 연주 방식에서 여러모로 <Avanti!>를 닮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먼저 이 앨범은 프랑스의 유명 샹송들을 새로이 연주하는 것을 주제로 삼았다. 그래서 조르쥬 브라상스, 세르쥬 갱스부르, 바바라, 클로드 누가로, 세르쥬 라마 등의 노래들이 연주되었다. 그리고 이 곡들을 연주함에 있어 미라바시는 즉흥 연주를 억제하고 원곡의 멜로디를 환상적으로 꾸며나가는데 중점을 둔 연주를 펼친다. 앨범 <Avanti!>를 녹음할 때 이미 사용했던 방식이다. 왼손보다 오른손의 움직임이 더 많이 드러남은 물론이다. 그래서 각 곡들의 연주시간이 다소 짧은데 그럼에도 그 짧은 시간 속에 미라바시는 규모 이상의 큰 드라마를 넣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그 드라마는 대부분 어둡고 비장한 정서가 주조를 이루는데 그래서 듣는 내내 슬픈 영화 한편을 보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된다.
그런데 왜 미라바시는 샹송을 연주하기로 마음먹었을까? 그것은 아마 그가 재즈 연주자로 활동하기 전에 유명 샹송 가수들의 피아노 연주자로 활동했던 경력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그동안 가사와, 가수의 목소리로 인해 가리워졌던 멜로디 자체의 순수함을 제대로 표현하고픈 욕구를 느끼지 않았나 생각된다. “노래하는 피아노”라고 앨범 타이틀을 정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이런 연주 방향 역시 음악에 내재되었던 정치성, 혁명성을 정화시키고 멜로디 자체의 음악적 아름다움을 표현하고자 했던 <Avanti!>의 정신과 상통하는 것이다. 이런 점에 비추어 어떤 감상자들은 이 앨범을 단순히 <Avanti!>앨범의 또 다른 반복으로 생각할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렇게 본다고 해도 이 앨범이 지닌 아름다움, 감상의 즐거움은 변하지 않는다. 미라바시가 펼치는 환상적 피아니즘만으로도 이 앨범은 아주 만족스럽다. 그리고 사실 지금까지 미라바시가 다양한 편성의 연주를 들려주었지만 그래도 많은 사람들은 오로지 <Avanti!>의 감동을 다시 경험하고 싶어하지 않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