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소폰이 클래식에서 주목을 받지 못하다가 재즈의 대명사가 된 이후 클라리넷은 재즈에서는 드물게 사용되는 악기가 되었다. 베니 굿맨 등에 의해 스윙 시대까지는 그래도 자주 사용되었지만 밥 시대이후부터는 거의 사용이 드물었다. 그런데 재즈의 유럽화에 힘입어 아코디언등의 악기와 함께 클라리넷이 다시 사용되고 있음을 발견한다. 그것은 클래식의 전통과 재즈가 만났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한편 클라리넷 앙상블이 형성된 데에는 다른 배경도 있다. 이 앨범이 들려주는 음악은 클레즈머 음악이다. 존 존이 이끄는 라벨 Tzadik의 일련의 음반들에 의해 뉴 뮤직의 형태로 새롭게 인식되고 있는 클레즈머 음악은 사실 유대인들의 전통 음악에 기반을 두고 있다. 그런데 역사적으로 오랜 시간동안 유대인들이 세계 각지에 흩어져 있었기에 클레즈머 음악은 단지 이스라엘의 음악이라고만 단정할 수 없다. 실제로 클레즈머 음악은 독일-히틀러에 의해 학살당한 유대인들을 떠올리게 된다.-과 동유럽에서 연주되었고 미국에서도 연주되었다. 그래서 초기 미국의 대중 음악과도 관련을 갖는다. 이 클레즈머 음악의 주요 악기는 바이올린과 클라리넷이었다. 바로 이런 배경하에 둠카 클라리넷 앙상블을 이해하게 된다. 한편 앨범 제목에 화가 이름인 렘브란트가 들어갔다고 해서 북유럽의 음악을 떠 올릴 수도 있겠다. 그러나 카페 렘브란트는 역사적으로 창조적인 음악이 연주되던 비엔나의 한 카페를 지칭한다고 한다.
이 앨범은 그렇다고 전적으로 유대 음악을 그래도 답습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동유럽에서 연주되던 클레즈머의 전통을 이어받고 있음을 발견한다. 이것은 루마니아와 마케도니아의 민속음악을 각 한 곡씩 연주하고 있는데서 근거를 찾을 수 있다. 때로는 아픈 과거의 회한이 가득 드러내기도 하고 깊은 명상으로 이끌기도 하며 때로는 민속적인 축제의 한마당을 연출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문화적인 배경이 아닌 연주적인 측면에서 보더라도 이 앨범은 감상의 재미를 느끼게 한다. 일단 세 클라리넷 연주자를 하나로 하고 유발 미센마허의 각종 타악기를 하나로 해서 두 개의 축이 생기는데 이 둘은 좌우의 균형이 아니라 표면과 속의 깊이의 측면에서 공간을 분할하고 있다. 그리고 클라리넷 사이에서 다시 좌우와 깊이의 분할이 생기고 있다. 이것은 이 앨범이 단순히 스튜디오에서 하나씩 녹음되는 대신 고유의 음향조건을 지닌 수도원에서 라이브의 형태로 녹음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며칠 전 우연히 이 앨범을 녹음한 올리비에 주이씨를 우연히 만나 이 앨범에 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는데 내 추측이 악기의 배치와 일치하고 있었다.
이런 공간 분할은 각 악기들이 교통을 유지하면서 자유로운 연주를 가능하게 한다. 무엇보다 유발 미센마허의 타악기 연주가 만들어내는 다양한 색이 일품이다. 리듬을 연주하면서도 공간의 잔향을 이용해 다양한 음색을 만들고 다시 이를 통해 새로운 공간감을 연출하고 있다. 클라리넷에 비해 뒤로 물러선 배치지만 오히려 전체를 감싸고 분위기를 지배하고 있다. 세 클라리넷-Em, Bm클라리넷과 베이스 클라리넷-간의 조화도 일품이다 단선율 악기의 한계를 세 명이 서로를 보충함으로서 해결해 나가고 있다. 소리는 서로 확연하게 구분되면서도 밀착된 느낌으로 하나의 다성 악기를 듣는 느낌을 만들어내고 있다.
두 곡의 전통곡을 제외하고는 모두 연주자들의 작곡이나 즉흥연주들로 채워져 있는데 어떤 곡들은 서로 연결되기도 하면서 일종의 연극적인 분위기를 연출함을 느낀다. 현대 유럽의 재즈가 테크닉의 화려함보다는 음악을 통해서 무엇인가를 이야기하려는 경향을 반영하는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