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나에게 Jack McDuff는 잊혀진 존재였다. 이상하게도 밥시대의 연주자들은 아직까지 후대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또 감상의 대상으로 인구에 회자되고 있지만 소울 시대를 풍미했던 연주자들은 자신들의 시대를 뛰어넘지 못하고 그냥 사라지고 있다. 단지 국내 재즈 애호가들의 성향에 지나지 않는 것일까? 아무튼 이러한 분위기에 편승해 필자도 아주 오랫동안 맥더프를 잊고 살았었다. 솔직히 그가 이 앨범을 끝으로 세상을 떠났다는 것도 모르고 있었다. 분명 들었으나 그냥 흘려 보냈으리라 생각된다.
이런 무관심의 이유는 개인적 취향의 변화는 물론 소울 재즈가 변하는 시대의 흐름과 호흡을 함께 하지 못했다는 것과 또 그 반대로 너무나 자신을 무시하고 받아들인 나머지 재즈를 벗어난 대중음악으로 진로가 바뀌었다는 것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번 앨범은 소울재즈도 이 시대 안에서 새로운 지위를 획득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가능하게 한다. 그렇다고 애시드 재즈의 등 장 이후 지속되고 있는 60, 70년대 사라진 음악에 대한 복권의 움직임과 연관시키려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갈수록 담론화되고 복잡해지고 있는 포스트 밥의 흐름과 반대로 갈수록 가벼워져 이내 상업적 속셈밖에 남지 않는 스무스 재즈와의 관계 속에서 소울 재즈가 새로운 생명력을 얻고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이 앨범에 담겨 있는 음악은 최근의 포스트 밥과 비교한다면 보다 더 육감적이고 경쾌한 반면 스무스 재즈보다는 교조주의적인 태도를 취하지 않으면서도 진지하다. 이런 성격은 소울 재즈가 인기를 얻었을 당시에도 프리나 아방가르드 재즈와의 긴장관계를 통해 드러났던 것이기도 하다.
이 앨범에 담긴 연주는 오르간 자체가 소울 시대를 대변했던 만큼 지극히 전형적인 60년대 소울 스타일을 그대로 고수하고 있다. 아니 오히려 보다 더 강조하려 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대부분의 곡들이 소울이나 불루스 스타일에 의해 작곡되었고 또 곡을 풀어 나가는 방식에서도 굳이 자신들을 쇄신하려 한다기 보다는 익숙함을 통한 자유로움을 표현하려 하고 있다. 그런 자유로움 때문일까? 각 곡들이 단순하지만 매우 확고한 구조를 지니고 있음에도 절로 고개를 끄덕이며 넘실대는 맥더프의 오르간에 자신을 맡기게 된다. 특히나 참여한 Pat Martino의 기타는 맥더프의 오르간과 함께 과거 필리 소울의 향수를 그대로 전달한다. 한편 후반부에 수록된 라이브 녹음에서는 흥겨움을 지나 열광의 상태로 감상자를 이끄는 힘이 있는데 여기에는 맥더프와 함께 하는 젊은 오르간 연주자 Joey DeFrancesco의 참여가 한몫한다. 각자 한 채널씩 차지하고 주고받는 대화는 들려주기 위한 연주가 아니라 스스로 즐기기 위한 연주가 아니었으면 만들어 내기 어려운 것이다. 누가 이 연주를 70세가 넘은 할아버지의 연주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의문할 정도로 연주의 측면에서 본다면 앨범의 백미라 말하고 싶다.
앨범이 60년대 스타일을 고수한다고 해서 어떤 진부함을 생각해서는 안된다. 깔끔한 녹음 때문인지 낡았다는 느낌은 전혀 들지 않고 매우 신선하다는 느낌이 우선한다. 그래서 보통 상당수의 오래된 연주자들이 과거 자신들의 명성으로 먹고 사는 것에 만족하면서 이제는 노인이 된 자기 시대의 애호가들 이상의 감상자 층을 확보하지 못하는 한계를 보이고 있는데 이 앨범은 대부분의 애호가들에게 감상의 용이함을 떠나 여러 가지 관점에서 쉽게 다가갈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한바탕 생각없이 즐기고 싶다면 이번 앨범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