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자 층, 미디어, 무대 등의 재즈를 위한 제반 환경이 취약한 한국에서 재즈를 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특히나 앨범을 제작한다는 것은 더욱 어렵다. 집안이 유복하건 그렇지 않건 재즈 연주자가 앨범을 제작하기로 마음먹었다면 연주 외에 제작 유통까지 모두 혼자 해결할 각오를 해야 했다. 나름대로 유명하다는 한국 연주자들이 그 명성과 달리 빈약하거나 거의 전무한 디스코그라피를 지니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런데 몇 년 전부터 갑작스레 한국 재즈 연주자들의 앨범이 지속적으로 발매되고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같은 달에 여러 장의 앨범들이 동시에 발매되어 같은 한국 연주자들끼리 감상자들의 관심을 얻기 위한 경쟁을 해야 하는 몇 년 전만해도 상상할 수 없었던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더 놀라운 것은 그런 많은 우리 연주자들의 앨범들이 저마다 각기 다른 개성으로 한국 재즈에 다양성까지 불어넣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우리 연주자를 도와주자는 마음으로 음악의 질과 상관없이 들어주던 감상자들도 이제는 많은 한국 연주자들의 앨범 가운데 취사선택을 해야 하는 때가 도래했다고 즐거움 반, 짜증(?) 반 섞인 농담을 하곤 한다.
하지만 이런 한국 재즈 앨범의 홍수가 진정 한국 재즈의 새 장을 여는 흐름이 될 것인지 그저 예상하지 못했던 한 때의 유행으로 그칠 것인지는 첫 앨범을 녹음한 연주자들이 다시 두 번째 앨범을 녹음할 무렵인 지금부터가 중요하다. 왜냐하면 첫 앨범과 달리 두 번째 앨범은 단지 아이디어와 신선함으로 승부를 낼 수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깊은 연주자의 생각과 지속 가능한 개성이 담겨 있어야 한다.
그런 와중에 지난 해 첫 앨범 <Croissant>으로 많은 한국 재즈 앨범들 가운데 돋보이는 음악을 선사했던 프렐류드의 두 번째 앨범이 발매되었다. 그리고 그 안에 담긴 음악은 최근 젊은 연주자들이 구축해 놓은 한국 재즈의 다양한 지형도가 나름대로 독자적 생명력을 지니며 오래 지속될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갖게 한다. 사실 프렐류드의 지난 첫 앨범은 너무나 신선했다. 그리고 동시에 대중적 친화도 또한 높았다. 그렇기에 이 버클리 음대 출신의 여섯 연주자들은 다른 어느 경우보다 그 두 번째 행보에 부담을 느꼈을 것이다. 신선도를 유지하면서 보다 더 발전적인 방향으로 한 걸음 나아가야 한다는 고민이 있었을 것이다. 여기에 프렐류드가 아닌 취약한 한국 재즈 환경이 주는 부담도 떠안았어야 했을 것이다. 실제 리더인 고희안은 어려운 환경 속에서 두 번째 앨범을 제작하면서 일종의 사명감을 느꼈다고 한다. 그래서“이렇게 무너지면 안 되겠다는. 어려움이 있더라도 한국에서도 재즈 밴드가 장수할 수 있다는 선례를 만들고 싶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재즈를 알리기 전까지 우리 스스로 해체하는 일은 없어야겠다”는 다짐이 필요했다고 밝힌다.
아무튼 새로운 도전정신으로 녹음한 이번 두 번째 앨범은 지난 첫 앨범의 장점을 유지하며 보다 더 강화된 집중력으로 프렐류드의 개성을 정제한 음악을 들려준다. 실제 앨범을 들어보면 미국 재즈의 전통에 머무르지 않으며 그렇다고 일부러 한국적인 무엇을 고집하지도 않은, 경우에 따라서는 유럽을 연상시키기도 하는 무국적이고 가상적인 공간감과 유려한 멜로디가 이끌어낸 매력적인 부드러움, 그리고 그럼에도 결코 분위기에 매몰되지 않은 과감한 연주자적 자세까지 지난 첫 앨범에서 많은 재즈 애호가들을 놀라게 했던 신선한 매력이 그래도 유지되고 있다는 점에 만족하게 된다. 사실 나는 이 정도의 신선도가 이번 두 번째 앨범에서 유지되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프렐류드는 여기서 더 나아가 그들의 음악이 보다 더 탄탄한 구조를 획득했음을 보여준다. 이것은 바로 연주 이전에 작곡과 편곡에 큰 공을 들렸다는 것에서 확인된다. 정말 앨범에 담긴 모든 곡들은 충분한 솔로의 공간을 남겨두면서도 섹스텟이라는 밴드가 주는 조화의 매력을 유감 없이 드러낸다. 특히 앨범 타이틀 곡 “Breezing Up”은 그 중 가장 인상적인데 리차드 로, 찰스 리(이상 테너 색소폰), 최원석(알토 색소폰)이 함께 한 테마의 합주 그리고 전체 흐름의 분위기를 결정하는 피아노의 코드 전개, 그리고 뒤를 잇는 솔로 연주가 이루어낸 전체 사운드는 보기 드문 감상의 즐거움을 선사한다. 같은 곡을 다르게 연주하면 색다른 맛이 있더라도 결국 이번 앨범의 연주를 찾게 되겠다 싶을 정도로 전체 연주자체가 깊은 인상을 남기는 매력적인 버전이다. 그 밖에 다른 수록 곡들도 겉으로는 다양한 모습을 하고 있지만 섬세한 편곡과 그에 따른 절묘한 앙상블이라는 기본 틀을 따르고 있다. 그래서 수록 곡에 따라 하드 밥, 팻 메스니 류의 퓨전 재즈, 우아한 클래식의 맛이 다르게 나타나고 있음에도 사운드의 일관성, 유기적인 측면이 돋보인다.
한편 지난 첫 앨범 이상으로 이번 앨범도 진지한 연주에 대한 자세를 기본으로 감상자를 상상하게 만드는 뛰어난 정서적 호소력을 보인다. 이것은 앨범 수록 곡들 모두가 일상 현실의 경험에 그 동기를 두고 있고 또 그 경험의 표현을 즉흥 솔로 연주에 맞기지 않고 보다 섬세한 편곡을 통해 해결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프렐류드의 음악은 연주의 진지함을 유지하면서도 서사적이거나 시각적인 음악이라는 인상을 준다. 많은 감상자들이 프렐류드의 진지한 음악에서 친근함을 느끼고 편안함을 얻는다면 바로 이런 상상을 자극하는 것 때문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