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출신의 색소폰 연주자 짐 톰린슨은 한국의 재즈 애호가들에게는 매우 생소한 이름일 수 있다. 그러나 반대로 그의 색소폰 연주는 매우 친숙할 수도 있겠다. 그도 그럴 것이 현 여성 재즈 보컬을 이끌고 있는 인물 가운데 한 사람인 스테이시 켄트의 남편으로 그녀의 앨범에서 색소폰을 연주해 왔기 때문이다. 사실 이렇게 짐 톰린슨의 2001년도 앨범이 뒤늦게 라이선스 앨범으로 소개되는 것도 스테이시 켄트의 힘이 크다. 이번 9월 제 4회 자라섬 재즈 페스티벌에 스테이시 켄트의 무대가 예정되어 있고 그 무대에 짐 톰린슨 또한 함께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스테이시 켄트가 아닌 짐 톰린슨의 앨범이 소개되는 것은 이미 스테이시 켄트의 앨범 대부분이 국내에 소개되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실제 두 사람이 삶뿐만 아니라 음악적 동반자로 매우 뛰어난 결과물들을 생산해 왔고 또 그래서 이번 무대에서도 짐 톰린슨의 매력을 드러내는 시간 또한 마련할 것이기 때문이다.아무튼 뒤늦게 소개되는 짐 톰린슨의 이 앨범은 보사노바를 주제로 한 앨범, 특히 스탄 겟츠와 질베르토 부부가 함께 했던 명작 <Getz/Gilberto>(Verve 1962)에서 받은 영감으로 이루어진 앨범이다. 사실 스탄 겟츠의 이 1962년 앨범을 전형으로 한 보사노바 앨범은 참 많다. 그러나 대부분 시도에 그친 아쉬운 사운드로 그다지 큰 호응을 받지 못하고 사라지곤 했다. 이것은 대부분의 보컬들과 연주자들이 보사노바를 리듬으로만 이해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물론 안토니오 카를로스 조빔, 호앙 질베르토, 빈시우스 드 모라에스가 만들어 낸 보사노바는 다양한 브라질의 리듬 가운데 하나임에 분명하다. 하지만 스탄 겟츠와 질베르토 부부의 앨범에는 리듬의 차원을 넘어선 신비로운 정서가 내재되어 있었다. 바로 이 신비로운 정서를 살릴 수 있을 때 <Getz/Gilberto>앨범에 필적할만한 사운드가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신비로운 정서는 무엇일까? 그것은 싱그러움과 아늑함, 따스함과 시원함 같은 상이한 정서가 공존하며 만들어낸 정서라 하겠다. 그렇기에 긴 생명력으로 지금까지 애청되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런데 짐 톰린슨은 바로 그러한 신비로운 정서를 이해했던 듯싶다. 색소폰, 기타, 피아노, 베이스, 드럼에 스테이시 켄트의 보컬로 이루어진 편성이나 스탄 겟츠를 연상시키는 건조하고 풍성한 비브라토 주법을 넘어 뭐라고 한마디로 형언하기 어려운 복합적인 정서를 각 곡들에 부여하고 있으니 말이다. 실제 앨범 수록 곡들은 오후의 나른함과 오전의 싱그러움, 파도가 있는 바다의 시원함과 연인들의 사랑스러운 대화가 있는 실내의 분위기 등 상이한 기분 좋은 정서들을 반영하고 있다.
한편 짐 톰린슨은 명작의 재현에서 나아가 자신만의 정서 하나를 더 넣었다. “Portrait In Black & White”나 “The Gentle Rain”등의 곡에서 확인할 수 있는 이 정서는 역시 복합 적인 것으로 달콤한 우울이라 할 수 있는 정서다. 특히 스테이시 켄트의 달콤촉촉한 보컬이 등장하는 “The Gentle Rain”은 앨범의 백미라 할 정도로 비관을 긍정으로 바꾸는 마력을 발산한다.
이렇게 <Getz/Gilberto>앨범의 신비를 새로이 재현하며 나아가 자신만의 분위기를 담아 내었다는 사실에서 나는 이 앨범을 보사노바 재즈의 새로운 명작 가운데 하나로 꼽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