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elocity”는 사전적으로 속도를 의미한다. 그리고 미디 음악쪽에서는 건반을 누르는 힘의 세기를 몇 단계로 계량화할 때 이 단어를 사용한다. 그렇다면 노르웨이의 피아노 연주자 욘 발케에게 있어 Velocity”는 어떤 의미를 가질까? 달리는 차에서 찍은 풍경을 담아낸 앨범 표지를 두고 보면 속도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겠지만 적어도 앨범에 담긴 음악만으로 본다면 그에게 Velocity는 피아노가 지닌 다양한 표현 가능성의 값을 의미한다. 실제 앨범에서 그는 피아노의 현을 직접 손으로 건드리는 등의 새로운 주법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일반적인 피아노 소리를 넘어 보다 다양한 소리를 들려준다. 그래서 이것이 과연 피아노 한 대로 연주한 것이 맞나 하는 의구심을 갖게 만든다. 하지만 실제 이 모든 소리는 일체의 오버더빙 없이 피아노 한대로 연주한 것. 한편 피아노의 새로운 표현 가능성을 탐구한다고 피아노의 몸체를 두드리며 타악기 소리를 내는 등의 아예 피아노를 벗어나려는 연주를 상상하지 말자. 욘 발케가 들려주는 모든 새로운 피아노 소리는 새로운 발상, 새로운 주법, 새로운 음색을 기반으로 하고 있지만 어디까지나 말 그대로 피아노의 영역 안에 머무르는 것이다.
한편 욘 발케는 새로운 표현 가능성의 탐구 자체에만 머무르려고 하지 않았다. 이 새로운 느낌의 피아노 소리로 그만의 음악을 표현하려 했다. 그것도 순간적 감흥에 따라서 말이다. 그렇게 순간적 감흥에 의해 연주된 19곡은 적절히 나뉘어 총 다섯 개의 장을 이루고 있다. 하지만 즉흥적이라는 것과 그동안 ECM레이블을 통해 욘 발케가 선보였던 난해한 음악과 연관시켜 아주 어려운 음악일 것이라 겁먹을 필요는 없다. 현대 음악적 분위기를 띄기도 하지만 그래도 예상과 달리 긴장된 회색조의 분위기 속에 멜로디를 적절히 안배하고 있으니 말이다. 실제 지금까지 욘 발케가 선보인 여러 리더 앨범들 가운데 가장 접근이 쉽다. 따라서 이 앨범의 매력은 새로운 질감의 소리를 실험하는 욘 발케의 아이디어가 아니라 이 실험의 와중에서도 자신의 내적 정서, 심상을 효과적으로 표현하는 것에 있다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