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 찰랩은 현재 젊은 피아노 연주자들-올 해로 이제 40이 되었으니 그도 어느새 중년이지만- 가운데 가장 전통에 충실한 연주를 펼치는 인물이다. 그런데 보통 전통적인 연주를 펼치는 인물, 흔히 메인스트림이라 칭하는 스타일의 연주를 들려주는 인물은 연주의 안정성만큼 그다지 큰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그는 확연하게 드러나는 연주를 하지 않으면서도 현재 주목 받는 피아노 연주자 가운데 하나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아마도 이런 데에는 그가 그저 오래된 스탠더드를 편하게 연주하는데 그치지 않고 자신만의 시각으로 차근차근 재즈의 세계를 정리하려는 의도를 보였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된다. 이것은 2000년대에 들어 가시적으로 드러났다고 할 수 있는데 실제 그의 음반 이력을 보면 호기 카마이클을 시작으로 레너드 번스타인, 조지 거쉬인 등 한 작곡가에 초점을 맞춘 앨범들이 최근에 집중되어 있음을 알게 된다.
한편 그는 미국과 일본에서 앨범 활동을 병행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자신의 이름으로 블루노트 레이블을 통해 앨범을 발매하고 있고 일본에서는 비너스 레이블을 통해 뉴욕 트리오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에서 뉴욕 트리오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것은 아마도 블루 노트와의 계약 관계를 피하기 위한 방편이라 생각되는데 그래서 실제 음악에서는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뉴욕 트리오라는 이름으로 그는 현재까지 비너스 레이블을 통해 4장의 앨범을 발표했다. 그리고 이제 다섯 번째 앨범이 선을 보이는데 이번 앨범은 유명 스탠더드 작곡가 가운데 한 사람인 콜 포터를 화두로 앨범을 녹음했다는 사실이 먼저 귀에 들어온다. 콜 포터는 알려졌다시피 그 자신의 삶이 영화화될 정도로 극적인 삶을 살았던 작곡가였다. 그리고 그의 음악들 대부분은 재즈의 주요 뼈대를 이루는 스탠더드로 자리잡고 있는데 이로 인해 많은 연주자들이 그의 음악을 주제로 앨범을 녹음했다.
빌 찰랩은 콜 포터의 여러 대표곡 가운데 9곡을 골랐다. 이를 제이 레온하트(베이스), 빌 스튜어트(드럼)와 함께 연주해 나가는데 새로운 편곡이나 과감한 아웃과 인의 교차에 신경을 쓰기보다는 테마의 멜로디가 주는 아름다움을 지속시키는데 주력하는 연주를 펼친다. 실제 빌 찰랩의 피아노는 오른손의 멜로디 표현이 극대화되는 양상을 보인다. 왼손은 이를 감싸는 데만 주력할 뿐 사운드를 지배하려 들지 않는다. 다른 두 리듬 연주자들도 마찬가지다. 보일 듯 말 듯 은근히 사운드의 저변을 맴돌 뿐이다. 그런데 이것은 사실 지금까지 빌 찰랩이 개인적으로 표출해 온 피아니즘의 일부이기도 하다. 즉, 그가 콜 포터를 연주함은 어떤 커다란 대의가 있어서라기 보다 자신의 감성과 맞는 부분이 있었기에 선택했다는 뜻이 된다. 그래서 앨범은 특별히 새롭다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 어느 때보다 부드럽고 낭만적인 분위기로 가득하다. 이것이 바로 빌 찰랩 나아가 메인스트림 재즈의 매력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