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 쿤 하면 대부분의 감상자들은 빌 에반스의 피아니즘을 이어받은 내면적이고 시적인 분위기의 연주를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1990년대 중반부터 인연을 맺어온 비너스 레이블에서의 활동은 다소 다르다. 현대적 시정 어린 연주보다는 전통적 비밥 양식에 충실한 연주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비너스 레이블의 제작자 테츠오 하라가 1950년대의 스티브 쿤을 더 좋아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스티브 쿤 본인도 비밥 스타일로 연주하면서 젊은 날의 열정을 상기하는데 나름 만족을 했던 모양이다. 아무튼 비너스 레이블을 통해 여러 장의 앨범을 발매했음에도 아직도 비밥 지향적인 스티브 쿤의 연주는 여전히 생경한 느낌이 많다. 특히 이번 앨범처럼 클래식을 재즈로 연주한 경우에는 그 낯섦의 정도가 더하다.
이번 앨범은 지난 2006년도 앨범 <Pavanne For A Dead Princess>에 이어 두 번째로 유명 클래식 곡들을 재즈로 연주한 앨범이다. 사실 요즈음 이러한 시도는 더 이상 새로운 것이 되지 못한다. 그러므로 스티브 쿤도 이러한 앨범을 녹음할 수 있다. 그러나 현재 비너스 레이블에서의 스티브 쿤의 음악과 다른 기타 레이블에서의 스티브 쿤의 음악이 다소 다르다는 사실이 이 앨범에 관심을 갖게 만든다. 만약 스티브 쿤이 ECM 레이블에서 같은 주제로 앨범을 녹음했다면 2004년도 앨범 <Promises Kept>처럼 스트링 오케스트라와 함께 한 우아한 분위기의 앨범이 되었을 확률이 크다. 하지만 비너스 레이블에서의 연주는 예의 전통적인 비밥 양식에 충실한 모습을 보인다. 나는 이것이 오히려 스티브 쿤의 클래식을 재즈로 연주하는 작업의 개성을 이룬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우리가 접했던 클래식을 재즈로 연주한 앨범들 대부분은 클래식의 우아함을 힘겹게 유지하려 한다거나 아니면 멜로디 부분만을 강조하는 식의 연주를 펼치곤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스티브 쿤의 연주는 이 두 가지 방식과 다소 차이가 있다. 아르투르 루빈스타인의 로망스를 연주한 ‘If You Are But A Dream’같이 우아한 연주가 있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그는 클래식의 유명 멜로디를 순수하게 재즈적 입장에서 바라본다. 그래서 테마를 제시한 이후 곧바로 자유로운 즉흥 연주에 들어간다. 즉, 스탠더드 곡을 대하듯이 클래식의 유명 멜로디를 대한다는 것이다. 알렉산드르 보로딘의 곡이라는 사실을 알기도 전에 스탠더드 곡으로 자리잡은 ‘Baubles Bangles And Beads’가 앨범 타이틀이 된 것도 역시 클래식의 유명 선율을 생각하되 재즈의 전통에서 벗어나지 말자는 스티브 쿤의 기본 자세를 반영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