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티스타 레나가 연주하는 악기는 기타이다. 하! 그런데 이 앨범에서 기타가 차지하는 위치는 극히 미약하다. 베이스처럼 보이지 않는 곳에서 균형을 유지하는 것도 아니고 보통의 기타가 지닌 역할처럼 리듬을 이끌어가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이 앨범은 바티스타 레나의 이름으로 발표되었다. 게다가 반다의 지휘는 파올로 스카테나라는 사람이 맡고 있다. 레나는 이 앨범의 전곡을 만들었을 뿐이다. 작곡자의 이름으로 발표되는 앨범의 경우는 그리 많지 않은데 왜 바티스타 레나의 이름으로 발표되었을까? 그것은 논외의 문제로 하고 따라서 이번에는 연주자, 작곡자 바티스타 레나에 초점을 맟추는 것보다는 반다라는 이 재미있는 음악에 초점을 맟추어 이야기하고자 한다.
반다라는 음악적 형식이 이태리 음악에서 어느 정도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는지 나는 모른다. 이 앨범을 통해서 처음 반다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뿐이다. 이태리어를 공식적으로 배우지 않았지만 반다라는 단어의 의미는 아마도 영어의 Band에 해당하지 않을까 어설픈 유추를 해본다. 그러나 이 반다라는 음악 연주 양식이 짧은 역사를 지니고 있는 것은 아님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이전에 같은 라벨에서 이보다 규모는 훨씬 작지만 엔리코 라바의 트럼펫을 중심으로 이태리 연주자들이 푸치니의 오페라등을 관악기 위주로 편곡해 연주하는 앨범 두 장이 제작되었던 적이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Banda Sonora>의 성공에 힘입어) Enja 라벨에서 한 장은 클래식곡을 편곡하고 한 장은 자신들의 곡을 연주하는 반다의 더블앨범이 있다.
이 앨범을 듣게 되면서 처음 생각하는 것은 음악이 지닌 해학이다. 한동안 한국에서 각종 체전이 있을 때마다 등장했었고 요즈음은 놀이 공원에 가면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 XX여상 고적대-어쩌면 반다의 의미가 고적대가 아닐까?-를 생각하게 하는 이 음악을 듣고 있노라면 쉽사리 축제를 떠올리게 된다. 엄청난 힘으로 밀고 나가는 수십개의 관악기 연주의 웅성거림이 단순히 멜로디, 리듬의 경쾌함을 넘어서 일종의 공간적 환상을 만들어 청자를 다른 곳에 온 듯한 느낌을 갖게 한다. 페데리코 펠리니의 영화를 비롯한 이태리 영화에서 자주 발견되는 시끌벅적함, 장터의 소란스러운 분위기 한가운데에 잇는 듯한 착각을 일으킨다. 실제 반다의 구성은 어마어마하다. 초빙된 솔로 연주자를 제외하고 총 43명의 연주자가 13종류의 관악기를 연주하고 여기에 4명의 타악기 연주자가 가세하고 있으니 그 힘은 미국식 빅밴드를 능가하고 일반 클래식 오케스트라에 맞먹는다고 볼 수 있다.
이 앨범에 담긴 바티스타 레나의 짧은 이야기를 통해서 반다의 음악적 성격을 이해할 수 있을 듯하다.
‘수 개월에 걸친 작업을 마치고 마침내 첫 번째 믹싱을 받게 되었을 때 우리는 그것을 들어보려고 모두 모였다. 첫 번째 곡이 시작되어 약 20초가 흘렀을 무렵 우리 모두는 서로 떠들기 시작했다. 아무도 음악을 듣지 않았다. 그것은 정말 즐거웠다. 이게 내가 반다를 사랑하는 이유다.’
이처럼 반다라는 음악은 어쩌면 과거에는 실용음악이었을 지도 모르는 아주 유쾌한 음악으로 이해된다. 한편 이 앨범에는 이태리의 유명 연주자들이 초빙되어 연주를 들려주고 있다. 엔리코 라바의 트럼펫, 지안니 코시아의 아코데온, 가브리엘 미라바시의 클라리넷이 이 앨범에서 솔로를 들려주고 있다. 그리고 이 연주자들의 솔로를 위한 소곡을 통해서 무조건 웃고 떠드는 분위기를 벗어나 이태리적인 성향의 다른 면-편안함, 여유로움-을 발견할 수도 있다.
이 앨범은 아주 이태리적이며 유럽적이다. 정말로 대서양을 건너온 재즈를 유럽 각국이 자주적으로 수용하여 자신들의 음악적 전통을 섞어 유럽적인 것을 만들어 나가는 것의 모범적 사례로 볼 수 있는 앨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