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재즈 보컬을 이야기하면 우리는 흑인 여성을 떠 오르게 된다. 대부분의 연주자들이 남자들이 독식하고 있었다면 보컬만큼은 여성들의 무대였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흑인 여성들이 재즈 보컬에서 차지하고 있는 위치는 가히 독보적이다. 그러나 이 와중에서도 백인 보컬 역시 꾸준한 계보를 이어오고 있고 나아가 최근의 경향을 살펴보면 백인들이 오히려 더 많이 득세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은 걸쭉하고 깊은 맛이 나오는 흑인 보컬이 주는 부담보다는 부드러움과 편안함이 더 많이 드러나는 백인 보컬을 대중이 선호하고 있다는 것일게다. 그렇다고 과거 팝적인 요소가 가미된 음악에 외모를 강조하는 성향이 강했던 소위 블론디 보컬이 다시 득세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것은 카린 앨리손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90년대 초반부터 Concords사를 통해 앨범을 녹음하기 시작한 그녀는 Helen Merril을 연상하게 하는 지적이면서도 부드러운 분위기로 노래를 불러오고 있다. 그러면서도 백인 특유의 가볍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데 그것은 백인 보컬만의 전통적인 달콤함에 과거 흑인 보컬이 들려준 무게와 농밀함을 적절하게 조합한 목소리를 들려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노래를 위해 노래를 한다는 것보다는 자신의 목소리를 제대로 파악하고 그 목소리를 적절히 활용할 줄 안다는 것이 앨리손을 단순한 백인 보컬의 하나로 치부하지 않고 주목을 하게 되는 이유다. 예로 1999년에 녹음한 From Paris To Rio의 경우 프랑스 샹송과 브라질 음악을 노래하고 있는데 원곡을 최대한 존중했기에 잘못하면 재즈의 영역 밖으로 나갈 위험이 있었는데 다른 요소도 아닌 단지 그녀만의 부드러움으로 자연스럽게 재즈의 영역으로 곡들을 인도하고 있었다. 앨리손만의 모험이었고 또 적절한 해결이었다고 할까?
이번 앨범 Ballads에서도 그녀는 단순히 노래하는 것을 기록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새로운 모험을 시도한다. 그 모험의 중심에는 바로 John Coltrane, 특히 그의 유명한 ballads(1962 Impulse)앨범이다! 흔히 사용하는 표현으로 이제는 전설이 되어 버린 앨범을 화두로 했다는 것 자체가 앨범 감상 이전에 상당한 관심을 유발한다. 실제 이 앨범은 콜트레인이 연주했던 8곡이 동일한 배열 순서로 수록되어 있다. 콜트레인의 Ballads앨범은 수록된 곡들이 콜트레인 본인의 곡이 아니라 스탠다드 곡이었음에도 앨범 전체를 지배하는 편안함과 서정적인 분위기가 콜트레인 특유의 색소폰 소리와 섞여 앨범만의 확실한 정체성을 지니고 있다. 이런 고정된 이미지를 지니고 있는 앨범을 텍스트로 삼게 되면 상당한 위험이 따른다. 일단 모방이라는 의혹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다른 해석은 필요한 것이며-그게 재즈이지 않은가?-또 그런 새로움이 단지 새롭다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이해가능한 이유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이번 앨범의 감상 포인트는 저절로 이러한 부분에 고정된다. 그런데 카린 앨리손이 이러한 문제를 풀어나가는 방식은 의외로 간단하며 상당한 설득력을 지닌다.
그녀가 존 콜트레인의 발라드 앨범에 도전을 하는 이유는 단지 그 앨범이 주는 감흥이 좋았기 때문이었던 것만은 아닌듯 싶다. 자신의 목소리로 표현 가능한 공통점을 감지했기에 시도했다고 보여지는데 이 경우 필자의 생각으로는 콜트레인의 색소폰에서 그러한 도전의 여지를 발견했다고 본다. 사실 존 콜트레인의 색소폰 연주는 상당히 보컬적인 부분을 지니고 있었다. 그것은 그의 연주가 수명적인 흐름을 기조로 진행되는 스타일 상에서도 이해할 수 있고 나아가 콜트레인이 단 한번밖에 보컬과 녹음을 하지 않았다는 것에서도 유추가 가능하다. 아무튼 앨리손의 보컬은 가사가 있어서 분절을 피할 수 없으면서도 콜트레인의 색소폰이 주는 느낌과 매우 유사하게 다가온다. 그래서 모방이전에 새롭다는 생각을 먼저 갖게 한다. 이로 인해 Bob Berg, James Carter,Steve Wison등의 쟁쟁한 연주자들의 색소폰은 한발짝 뒤로 물러서고 있다. 따라서 당신이 이 앨범을 감상하기 전에 이들 연주자들로부터 콜트레인의 향기를 느낄 수 있지 않을까 기대를 했다면 색소폰 보다는 앨리슨의 보컬에 더 많은 관심을 갖기를 바란다. 한편 앨리손이 Ballads앨범을 자신의 노래로 재현하려는 것에만 관심이 있었다고 볼 수 없는 또 다른 부분이 있는데 그것은 추가로 앨범에 수록한 3곡을 통해서 드러난다. Naima를 비롯 콜트레인이 자주 연주했던 곡들인데 콜트레인적인 분위기의 재현을 비롯 그 접근이 상당히 진지하다. 그러면서도 결코 자신의 영역을 무리하게 넘어서려 하지 않는다.
콜트레인의 Ballads앨범에 매력을 느낀 애호가들이라면 이 앨범을 통해서도 비교에 따른 실망보다는 흐뭇함을 느끼리라 생각되는 앨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