쳇 베이커는 웨스트 코스트 재즈 혹은 쿨 재즈를 대표했던 트럼펫 연주자이자 보컬이다. 또한 그는 재즈계의 제임스 딘이라 불릴 정도로 수려한 외모와 모성애를 자극하는 듯한 노래와 연주로 큰 인기를 얻었다. 하지만 평생 마약에 빠져 자기 파괴의 길을 걷다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한 호텔에서 원인 불명의 추락으로 세상을 떠난 비운의 인물이기도 하다.
그는 트럼펫 연주에 있어서도 자기만의 개성을 지녔지만 보컬이 더 많은 주목을 받았다. 특히 그 스스로 기획했던 1956년도 앨범 <Chet Baker Sings>는 프랑크 시나트라로 대표되는 중저음의 크루너 보컬과는 다른, 그 누구의 영향도 받지 않은 쳇 베이커만의 담백하고 감성적인 보컬을 담고 있어 큰 인기를 얻었다. 그럼에도 그는 보컬 이전에 트럼펫 연주자로 자신을 자리 매김하고 싶어했다. 노래는 보조적인 것이었다. 따라서 1965년 그가 재즈 보컬의 3대 디바 중 하나였던 빌리 할리데이를 추모하는 앨범을 녹음한 것은 의외였다.
이 앨범은 빌리 할리데이를 주제로 한 만큼 평소 그녀가 즐겨 노래했던 곡들로 이루어졌다. ‘Travellin’ Light’을 시작으로 ‘You’re My Thrill’, ‘Don’t Explain’ 등의 곡들이 쳇 베이커에 의해 새로이 노래되거나 연주되었다. 그런데 빌리 할리데이를 생각했다고 하지만 그 분위기는 그렇게 디바의 슬픈 삶이 묻어나지 않는다. 지미 먼디의 편곡에 기초한 그만의 나른한 보컬과 이 시기에 그가 주로 연주했던 부드러운 플뤼겔혼이 전체를 지배한다. 따라서 빌리 할리데이의 고난했던 삶에 대한 또 다른 어려운 삶을 앞두고 있었던 젊은 연주자의 위로로 이해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