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즈는 연주자들의 개성이 강하게 드러나는 음악이다. 하지만 이런 개성의 음악을 연주하는 재즈 연주자들도 스타일의 영향을 받는다. 어쩌면 이것은 연주자와 감상자간의 소통과정에 생기는 협의가 아닐까 생각된다. 즉, 자신의 개성을 효과적으로 드러내기 위해 기존 스타일을 적절히 따르면서 그 안에서 새로운 변용을 해 나간다는 것이다.
재즈를 클래식으로 연주하는 것도 이제는 하나의 시도가 아니라 하나의 스타일이 되어버렸다 해도 괜찮을 정도로 일반적인 현상이 되었다. 지금까지 자끄 루시에를 시작으로 유러피안 재즈 트리오, 유진 시세로 트리오 등 얼마나 많은 재즈 연주자들이 클래식의 선율을 재즈적 토대 위에서 새로이 연주해 왔는가? 그리고 그 연주의 방식은 거대한 틀에서는 상당히 유사한 면을 띄고 있었다. 이번에 소개되는 이탈리아의 피아노 트리오 마시모 파라오 트리오의 음악도 하나의 스타일로 자리 잡힌 클래식의 재즈 연주 틀을 그대로 따른다. 이것은 연주자들의 창의성 부족이 아니라 클래식의 재즈 연주가 기본적으로 감상자에게 부담 없이 다가가려는 의도 속에서 시작된 스타일이기 때문이다. 물론 간간히 난해한 접근도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아무튼 마시모 파라오 트리오가 들려주는 클래식의 재즈 연주는 낯선 연주자를 인식하기 전에 익숙한 멜로디들이 익숙한 리듬 위를 편하고 부드럽게 흐르는 익숙함으로 먼저 다가온다. 베토벤의 합창 교향곡의 유명한 테마를 시작으로 크라이슬러의 “사랑의 기쁨”을 비롯한 쇼팽, 드보르작, 바하, 라벨 등의 유명 클래식 곡들이 이어지는데 모두 멜로디의 차원에서 원곡을 바라보고 이를 다시 재즈 피아노 트리오의 관점에서 새로이 연주하는 형식을 따르고 있다. 그러므로 어쩌면 연주자의 개성을 인식하기란 그다지 쉽지 않을 지도 모른다. 굳이 개성을 발견한다면 원곡의 멜로디에서 새로이 하나의 노래를 만들어 나가는 마시모 파라오 개인의 멜로디적 감각 정도가 될 것이다. 하지만 이 역시 전체 음악의 부드러운 진행 안에서 이루어져 있기에 그다지 강조되어 있지는 않다. 하지만 이 앨범을 그저 심심하게 바라볼 필요는 없다. 사실 연주자는 사라지고 음악만이 남아 귀가에 맴도는 것이야 말로 이런 종류의 음악에서 요구되는 것이 아닐까? 이런 연주, 이런 음악은 바로 생활의 배경이라는 용도에 맞추어져 만들어진 음악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