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 연주자 잭 리는 분명 한국인이다. 하지만 그는 한국 재즈의 지형도에서 다소 독특한 위치를 차지한다. 많은 한국 재즈 연주자들이 미국에서 공부하고 돌아와 한국을 주 무대로 활동을 하는 것과 달리 그는 밤 제임스, 하비 메이슨 등 미국의 유명 퓨전, 스무드 재즈 계열의 연주자 들과 함께 앨범을 녹음하고 마치 해외 연주자의 내한 공연처럼 공연을 한다. 이것은 그가 분명 한국인이긴 하지만 그의 음악이 수입의 형태로 국내에 소개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미국에서 유명 연주자들과 활동하는 한국인 기타 연주자”가 그를 알리는 대표적인 홍보 문구가 아니었던가? 그래서 신비감 마저 느껴지는 인물이기도 하다. 그래서일까? 그의 음악은 대부분 한국적인 흔적을 발견하기 어렵다. 가요를 편곡하여 연주하기도 했지만 그것은 예외의 경우였을 뿐이다. 그에겐 오로지 세계적인 감각이 있을 뿐이다. 그렇기에 세계적으로 통하는 연주자라는 평가를 받는 것이겠지만 아무튼 그의 음악은 한국이 아닌 다른 공간에 존재한다. 그렇다고 꼭 내가 노골적으로 한국적인 무엇을 기대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한국인이 연주한 티가 나지 않음을 말하고자 할 뿐이다.
이번 5년만에 발표한다는 신보 <Asian*ergy>도 마찬가지다. 분명 앨범 타이틀로 아시아를 주제로 삼고 있고 수록곡 가운데 “제주도”가 포함되어 있지만 그의 음악은 철저히 미국적이다. 만약 동양적인 정서를 찾는다면 “Exotica”정도가 될 수 있는데 결국 동양적인 것은 잭리의 음악에서는 하나의 이국적인 것을 의미함을 생각하게 한다. 이것은 어쩌면 세계와 대등하게 호흡하는 본토적인 사운드를 원하는 우리 감상자들에게는 완벽한 이상으로 보일 것이다. 실제 앨범은 잭 리 외에는 모든 연주자들이 외국인들이다. 데이브 그루신, 하비 메이슨, 토니뇨 호르타 등 현존하는 최고의 퓨전 스무드 재즈 연주자들이 그와 함께 하고 있다. 세계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는 현대적 감각의 사운드란 바로 이런 것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니던가? 하지만 한국적인 색채가 없다고 해서 괜히 부정적인 시선을 보이지 말자. 잭리의 음악은 원래 공간적 한정에서 벗어난 음악이니 말이다.
정말 앨범을 들어보면 잭리의 음악은 어느 한곳에 고정된 느낌을 주기보다 이동의 성격이 더 강하게 드러남을 느끼게 될 것이다. 어느 부분에서는 팻 메스니의 여정(旅程形)형 음악을 연상시키기도 하는 그의 음악은 한국과 미국 사이에 놓인 태평양 어느 한 가운데 있는 것만 같다. 모든 것이 상상에 의해 자유로운 하나의 지대를 지향하듯이 그의 기타 연주는 다른 연주자들의 조력에 힘입어 이 공간에서 저 공간으로 이동한다. 실제 앨범 수록곡들을 보면 정경, 이국, 여행, 그리고 낯선 지명을 제목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잭리 본인이 이런 면을 의도했다고 생각된다. 그래서일까? 이 앨범을 듣는 내내 나는 다양한 교통 수단을 이용한 여행의 과정을 생각했다. 한국의 제주도, 일본의 카미야마, 인도의 봄베이를 거치는 낯선 여행의 경로를 앨범은 제시한다.
꽤 오래전 언젠가^^ 라디오에서 잭 리의 아리랑 연주를 듣고, 감동 받아서 앨범 구입한 적이 있었습니다.
오랜만에 이렇게 보니 엄청 반갑네요!
예. 실력에 비해 국내에서는 그만큼의 대접을 받지 못한 느낌이 있죠. 팻 메시니와의 유사한 부분이 약간 있는 것이 어쩌면 걸림돌이었을 지도 모르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