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 연주자 빌 캐로더스의 이번 앨범은 1차 세계 대전이라는 역사적 사건과 그와 관련된 음악을 다루고 있다는 데서 세계 각국의 혁명, 투쟁가를 독자적으로 아름답게 해석하여 국내에서 많은 인기를 얻었던 지오바니 미라바시의 <Avanti!>앨범을 연상시킨다. 하지만 외관상 비슷한 두 앨범은 그 방식과 결과에 있어서는 상반된 모습을 하고 있다. 즉, 미라바시의 <Avanti!>앨범이 역사를 제거하고 음악적 순수함을 복권시키려는 의도를 담고 있었다면 캐로더스의 시도는 오히려 음악과 역사를 이상적으로 결합시키려는데 중점을 두고 있다는 것이다. 자신의 할아버지가 1차 대전 참전용사였다는 개인적 경험에서 출발하고 있는 이 앨범의 음악들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뉘어 전쟁 발발 전, 전쟁 발발로 인한 연인의 이별, 그리고 전쟁의 다양한 참상을 묘사하는 것으로 진행되고 있다. 이렇게 내적인 서사를 지니고 있는 만큼 캐로더스는 1차 대전 전후의 음악들이 재료로 사용하면서 결코 있는 그대로 곡을 사용하지 않는다. 바로 이 부분이 캐로더스가 역사와 음악을 새롭게 결합하는 방식이라 하겠는데 이 역사적 자료를 그는 전통과 현재, 유럽적인 맛과 미국적인 맛이 교차하는 다양한 스타일로 과감하게 편곡하고 또 곡들간의 유기적 관계를 설정하여 새로운 층위에서 의미를 발산하게 만들었다. 그 결과 역사적 사실에 음악이 강하게 밀착되면서도 독자적인 음악성을 새롭게 획득하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빌 캐로더스의 이 방식이 성공적이라 생각하며 또한 가장 재즈적이라 생각한다.
Armistice 1918 – Bill Carrothers (Sketch 2004)
3.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