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해 11월 13일 롤랜드 한나 경이 세상을 떠났다. 필자는 사실 그가 세상을 떴다는 사실을 이번에 알았다. 아니 조금만 신경써서 생각하면 세상을 떴다는 사실을 접했으나 곧바로 무관심에 의해 잊어 버렸다고 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그것은 필자가 워낙에 연주자 개인의 대소사에 큰 관심이 없다는 것이 이유라면 이유라 할 수 있다. 사실 연주자의 개인적 상황이 음악에 들어갔다고 믿으며 그것만 파악하려는 것-분명 재즈사 연구에는 의미가 있는 일이지만-은 개인의 감상과는 조금은 동떨어진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무튼 그런 차에 이번 앨범을 듣게 되었는데 역시나 연주자 개인의 문제는 음악과 꼭 궤를 같이하지 않음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든다. 왜냐하면 롤랜드 한나의 최후 유작 앨범임에도 병마의 흔적은 어디에서고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사실 대부분의 유작 앨범들이 죽음의 흔적을 드러내지 않는데 이는 내일 일을 모르는 인간의 슬픈 운명, 아니면 설령 알더라도 혼신의 정열로 죽음을 극복하려는 연주자의 강한 의지 때문이다.) 게다가 표지에 등장하는 육감, 뇌쇄적이다 못해 도발, 퇴폐적이기까지한 여인의 자세를 보면 과연 이 앨범이 유작 앨범인가하는 의아함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오히려 이번 앨범 Aprés Un Rêve에는 오늘을 어제처럼 큰 변화나 어려움없이 살다가 갑자기 세상을 뜨는 것이 행복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할 정도의 아주 밝고 긍정적인 연주들이 담겨 있다.
이번 앨범의 화두는 앨범 타이틀에서 느낄 수 있듯이 클래식 곡을 재즈로 연주하는 것이다. 앨범 타이틀 곡인 가브리엘 포레의 곡부터, 슈베르트, 모차르트, 쇼팽 등의 친숙한 클래식 작곡가부터 보로딘, 말러등의 작곡가의 곡까지 다양한 곡들이 선곡되어 재즈로 탈바꿈되어 있다. 사실 이제 클래식을 재즈로 연주한다는 사실 그 자체는 아무런 새로움을 주지 못한다. 지난 해만 하더라도 이미 유러피안 재즈 트리오가 그러한 시도를 했었고 그 외에 많은 연주자들이 클래식을 재즈로 연주해오고 있지 않은가? 게다가 롤랜드 한나 경의 경우 이미 베이스 연주자 조지 므라즈와 함께 듀오로 클래식 곡을 재즈로 연주한 앨범 Romannesque(1982)를 녹음했었다. 그런데 이 앨범의 경우 클래식이라는 텍스트가 주는 중압감을 이기지 못하고 너무나 테마부분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여서 그다지 잘 만들었다는 느낌을 주지못했다. 그래서 이번 유작 앨범을 손에 넣었을 때 역시 그런 스타일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미리 했었으나 실제 음악은 전혀다른 생동감으로 충만되었기에 놀랬다.
무엇보다 이번 앨범은 클래식앞에서 자유로운 롤랜드 한나를 만나게 된다. 이 자유는 단순하게 클래식적 위엄에 대한 거부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보다는 클래식적인 분위기를 수용하더라도 수용주체로서의 롤랜드 한나 경의 정체성을 잃지 않는 보다 넓은 의미의 자유를 의미한다. 먼저 앨범의 유일한 자작곡인 Like Crains Of Sand를 들어보자. 수록곡의 9곡중 한가운데 위치하고 있는 이 곡은 앨범의 전체 기조를 대변한다. 즉, 이 곡을 중심으로 각각의 클래식 곡들이 재즈적 자리 매김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클래식 곡의 기본 형식은 큰 의미가 없다. 이 부분이 이전의 Romanesque와 다른 점이다. 그래서 각 곡들은 물론 기존의 클래식적 분위기를 그대로 따르는 경우도 있지만-이는 롤랜드 한나 경의 능동적 선택이었다고 보여진다-전반적으로 원곡과는 다른 모습을 띈다. 이를 위해서는 드보르작의 신세계 교향곡의 유명한 Going Home을 언급하고 싶다. 일반적으로 이 곡은 제목이 암시하듯이 편안하고 목가적인 분위기로 연주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이 앨범에서는 다소 파격적인 인트로와 적당한 싱코페이션을 가미해 유럽적 중후함을 지닌 멜로디를 미국의 가스펠적인 느낌을 주는 소박한 분위기로 바꾸어 놓았다. 한편 이렇게 곡들의 분위기가 기존의 전형적인 차분한 분위기와는 다소 상반된 재즈적 “흔들림”으로 바뀌었으면서도 그 기저에 흐르는 정서적인 부분은 그대로 유지되고 있음은 흥미로운 일이다. 그래서 가벼운 스윙감 속에서도 여전히 가브리엘 포레의 ‘꿈을 따라서’는 그 몽환적인 부분을 유지하고 있으며 론 카터의 베이스가 돋보이는 쇼팽의 ‘서곡’도 비장미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아무리 필자가 앨범표지와 음악적 분위기가 마지막 앨범임을 모르게 한다고 했더라도 유작 앨범은 유작 앨범이다. 음악적과는 관계없는 생각일지 모르나 내용과 상관없이 가까운 미래의 운명을 모른채 음악의 영속성만을 생각하고 순진하게 연주하는 한 인간의 모습을 떠올리게 되니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