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눗 배르네스라는 기타 연주자는 유러피안 재즈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나로서도 무척이나 생소한 연주자이다. 그도 그럴 것이 사실 유러피안이라는 하나의 테두리로 묶기는 하지만 몇몇 연주자들을 제외하고는 자국의 테두리를 벗어나는 명성을 얻기란 아주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특히나 음악 비즈니스의 틀안에서 변신을 거듭하는 것이 아니라 묵묵히 자기의 색깔을 고집해 나가는 연주자의 경우 국제적 명성은 실력에 상관없이 미미할 수밖에 없다. 아무튼 크눗 베르네스는 그의 지명도에 상관없이 무척이나 관심있게 들어볼 만한 연주자이다. 그리고 스스로 성장한 연주자라고도 할 수 있겠는데 왜냐하면 Curling Legs라는 레이블을 만들어 자신의 음반을 발매해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아가 노르웨이의 숨겨진 연주자들의 앨범을 용기있게 발매해 왔다. 이번 앨범은 그의 레이블의 첫 앨범에 해당한다.
베이스 연주자 테르예 게벨트와 함께 듀오로 연주하는 이번 앨범을 보고 많은 감상자들은 역시 같은 편성의 찰리 헤이든과 팻 메시니의 듀오 앨범을 떠올릴 수 있겠다. 그러나 찰리 헤이든과 팻 메시니가 기타 연주자와 베이스 연주자간의 상호 대화에 중점을 두는 면이 강했다면 베르네스와 게벨트의 듀오는 연주자로서의 자신의 모습 이전에 곡 자체에 몰입하는 면이 강하다. 따라서 설정한 곡의 이미지를 위해 듀오라는 편성의 전형성을 의식하지 않음은 물론 연주의 역학 관계의 불균형을 기꺼이 받아들인다.
그래서 몇몇 곡을 제외하고는 어쿠스틱과 일렉트릭 기타를 모두 사용하는 베르네스의 아우라가 더 많이 드러난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게벨트를 일종의 파트너 정도로 축소하기는 어렵다. 그리고 위에서 언급했듯이 단순한 비중의 문제로 이 듀오 앨범을 바라보지 말자. 베르네스가 더빙등을 통해 다양한 기타를 동시에 선보이고 있는 것은 자신을 전면에 드러내기 위함이 아니다. 게벨트의 베이스가 전면에 나서지 않는 것도 그가 듀오로서 자신의 역할을 포기한 것도 아니다. 단순한 연주의 비중보다는 베이스라는 악기와 기타라는 악기의 음색의 명백한 대비를 통해 오히려 더 자연스럽게 두 연주자의 모습이 드러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자. 기타가 공간이 되면 베이스가 선이 되고 베이스가 공간이 되면 기타가 선이되는 식으로 말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러한 힘의 지형학이 형성된 이유는 단지 그들의 작곡과 편곡이 그러함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은 음반 속지에 적힌 해설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는데 악상, 작곡동기등을 간략히 서술해 놓은 곡설명은 이들이 음악적인 탐구의지 보다는 자신들의 감성적 정황에서 작곡의 단초를 구했음을 알 수 있게한다. 그래서 실제 이들의 곡들이 주는 느낌은 무척이나 자연스럽고 편안하다. 있어야할 곳에 기타가 있고 들려야할 소리가 들린다. 이러한 자연스러움은 앨범의 균질성을 해치지 않으면서 각 곡들이 다양하다는 인상을 줄 수 있게 하는 요인이기도 하다.
각 곡들의 전반적 주조는 나른함 몽환적인 이미지가 지배한다 할 수 있는데 이는 베르네스의 다양한 기타 톤의 울림에 따라 변하는 것이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두 연주자가 연주에 있어 과도한 음폭의 이동보다는 음장감을 적극적으로 살리는 선적인 면을 강조한 연주를 펼치는 동시에 그 톤의 처리가 간결하다는 것에서 기인한다 할 수 있다.
이 앨범이 주는 매력은 곡의 이미지에 맞게 두 연주자가 탄력적으로 이미지의 재현에 충실하게 반응한다는 것인데 그 이전에 각 곡 자체가 단순하면서도 감상자의 기억에 오래 남을 만한 선율들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무시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