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한 연주자가 음악적으로 대중들에게 인정 받는 경우는 크게 두 가지로 상정할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이 처음부터 하고픈 음악을 고집하여 결국엔 인정 받는 것. 이 경우는 평생 인정 받지 못하고 사라질 위험이 많다. 또 다른 방법은 대중들의 기호에 맞는 음악을 하는 것. 이 경우는 상업적이라는 비판을 받을 수 있으며 또 자신의 음악적 정체성을 상실할 위험이 있다. 하지만 정작 뛰어난 연주자는 자신의 음악을 하면서 동시에 대중의 호응을 얻는, 한 마디로 어느 하나 포기함이 없이 두 마리 토끼를 다 잡는다.
다시 새로운 앨범으로 돌아온 피아노 연주자 에디 히긴즈도 두 마리 토기를 잡은 연주자가 아닐까 싶다. 적어도 일본(과 한국)에서는 말이다. 이미 알려졌다시피 그는 1950년대 연주활동을 시작했지만 자신의 자리를 찾고 존재감을 대중들에게 인식시키는데 성공하지 못했다. 그저 평범한 피아노 연주자 정도로 치부되었을 뿐이다. 그러나 90년대 일본의 비너스 레이블을 통해 새롭게 재발견되어 70대 중반인 지금 현재진행형의 연주자로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사실 그의 부드럽고 편안한 연주는 치열함이 요구되었던 50년대의 정서에 어울리지 않는 것이었다. 그리고 에디 히긴즈 본인도 새로운 무엇에 대한 욕심보다는 그저 자기 편한 대로 연주를 하겠다는 마음이 앞섰던 듯싶다. 이런 그가 90년대 들어 새로이 재조명된 것도 그 치열한 50년대가 이제는 하나의 아름다운 추억이 되어버렸을 만큼 감상자들이 치열함보다는 세련미와 안락의 느낌을 재즈에서 찾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현재 에디 히긴즈의 인기는 나이 든 피아노 연주자가 인기에 눈이 멀어 표변한 결과가 아니라 뒤늦게 자신을 인정하는 감상자를 만난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이렇게 뒤늦게 인정을 받은 만큼 에디 히긴즈에게 감상자는 정말 고마운 존재가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지난 2002년 일본의 재즈 잡지 스윙 저널의 독자 투표를 통해 선정된 곡들을 연주한 <Dear Old Stockholm>을 녹음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비너스 레이블에서의 활동 10주년을 기념하는 의미로 사랑을 주제로 스탠더드 곡 50곡을 골라 4일에 걸쳐 한꺼번에 녹음하는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과거 마일스 데이비스의 마라톤 세션에 비견할만한 녹음 방식인데 이렇게 녹음된 50곡은 모두 넉 장의 CD에 담겼고 그 가운데 두 장이 이번에 발매되었다. <A Fine Romance>와 <A Lovely Way To Spend An Evening> 이 그 두 장인데 한국에서는 이 두 장이 합본되어 발매된다.
이제는 에디 히긴즈표라 할 수 있는 부드럽고 산뜻한 정서를 지닌 연주가 이 두 장의 앨범에 담긴 것은 물론이다. 그래서 경우에 따라서는 동일성의 반복으로 생각하고 관심을 두지 않을 감상자들이 있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번 트리오가 연주한 50곡의 스탠더드는 사랑이라는 한정된 주제로 묶임에도 그동안 비너스 레이블에서 한 번도 연주한 적이 없는 스탠더드 곡들이라는 점에서 “다시 한번” 관심을 갖게 한다. 게다가 그 싱그러운 에너지로 충만한 사운드가 전달하는 낭만과 달콤함은 이미 한 번쯤 경험한 것임에도 또 다시 어쩔 수 없이 음악에 빠지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