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정색 수트를 말쑥하게 차려 입은 신사가 뇌쇄적이면서도 표정이 큰 변화가 없는, 그래서 무엇인가 깊은 이야기를 감추고 있을 법한 여인의 한쪽 손과 허리를 잡는다. 그리고 두 사람은 발 뒤꿈치를 들고 부드럽고 우아하게 S자 턴을 하며 마치 사랑을 나누는 듯한 격정적인 움직임을 이어간다. 그들의 배경으로 반도네온과 스트링 앙상블로 이루어진 밴드가 연주하는 열정과 회한이 어우러진 음악이 흐른다.
아마도 탕고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위와 같은 장면을 연상하지 않을까 싶다. 탕고는 특정한 동작의 춤을 의미하는 동시에 음악을 의미한다. 그리고 춤이 되었건 음악이 되었건 탕고는 슬픔과 기쁨의 정서를 동시에 담고 있다.
탕고는 아르헨티나의 고유한 음악으로 인정 받고 있지만 그 기원은 자못 국제적이다. 탕고의 기원에 관해서는 여러 설이 있지만 19세기 유럽의 댄스와 아프리카에서 쿠바로 건너 온 노예들의 음악이 결합된 4분의 2박자의 하바네라(Habanera) 춤곡이 다시 아르헨티나로 건너가 민속 음악 가우초(Gaucho)와 결합해 밀롱가(Milonga)로 발전하게 되고 이것이 유럽의 폴카, 남미의 살사나 볼레로 등의 리듬과 그 음악을 흡수하며 진화해 탕고가 되었다는 것이 현재 가장 큰 힘을 얻고 있다. 실제 탕고는 1880년대 아르헨티나의 수도인 부에노스 아이레스 중 보카 지역에서 태동했는데 당시 이 보카에는 유럽에서 건너온 가난한 이주민들이 밀집되어 있었다고 한다. 바로 여기에서 이들 하층민들이 느낀 삶의 애환을 반영한 우수 어린 멜로디와 리듬을 지닌 탕고가 만들어진 것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탕고는 초기에는 이탈리아 이주자들이 가져온 나폴리 음악의 영향으로 바이올린을 중심으로 연주가 이루어졌으나 1910년경에 유럽으로부터 유입된 반도네온이 매력적인 음색과 강력한 표현력으로 탕고를 대표하는 악기로 자리잡았다. 특히 반도네온 연주자 후안 마글리오(Juan Maglio)는 최초로 탕고 음악을 녹음하여 인기를 얻으면서 반도네온을 탕고를 대표하는 악기로 만들었다.
현재 최초의 탕고 곡으로 인정 받고 있는 곡은 1905년경 앙헬 비요르도(Angel Villoldo)가 작곡한 “El Choclo”이라는 곡이다. 이후에도 많은 탕고 음악을 작곡한 앙헬 비요르도는 이 곡을 희극을 위해 작곡했는데 그래서 처음에는 그 가사가 다소 해학적이었다. 그러다가 1940년대 서정적인 내용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이처럼 초기 탕고의 가사들은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하층민들의 거리 풍경을 반영하여 해학적인 내용이 주를 이루었다. 이런 탕고의 분위기는 1915년 파스쿠알 콘투르시(Pascual Cuntursi)가 기존 곡에 가사를 쓰고 카를로스 그라델(Carlos Gradel)이 노래한 “Mi Noche Triste”가 큰 인기를 얻으면서 확 바뀌게 되었다. 카를로스 그라델을 최초의 탕고 스타로 만들어 준 이 곡은 사랑에 실패한 연인의 비통함을 그리고 있는데 이 곡이 커다란 성공을 거두면서 이후의 탕고 곡들이 비극적 사랑 이야기를 주로 다루게 된 것이다.
카를로스 그라델의 성공 이후 우루과이의 행진 곡을 탕고로 편곡한 “La Cumparsita”로 세계적인 인기를 얻게 되는 피아노 연주자 로베르토 피르포(Roberto Firpo), 클래식적인 기반을 둔 바이올린 연주자 훌리오 드 카로(Julio De Caro), 탕고에 우아함을 부여한 반도네온 연주자 페드로 로렌즈(Pedro Laurenz), 보다 빠른 리듬으로 탕고 무용수들에게 큰 환영을 받았던 후안 다리엔조(Juan D’Arienzo)와 피아노 연주자 로돌포 비아지(Rodolfp Biagi) 등이 인기를 얻는 스타로 부상하여 이후 1930년대까지의 탕고 음악을 이끌었다.
한편 1910년대에 하나의 확고한 음악 스타일로 자리잡은 탕고는 유럽과 미국의 부유한 상류층으로부터 새로운 관심을 받았다. 그 결과 하층민 이주자들의 삶을 표현한 아르헨티나의 탕고와는 달리 아코데온이 중심이 되어 상류사회의 무도회에 어울리는 우아한 분위기의 콘티넨탈 탕고 음악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1930년대 중반에 접어들면서 탕고는 황금기를 맞이했다. 수 많은 히트 곡들이 양산되었으며, 알프레도 앙헬리스(Alfredo De Angelis), 오스발도 푸글리에세(Osvaldo Pugliese) 등이 이끄는 오케스트라가 인기를 얻었고 아울러 춤으로서의 탕고 또한 보다 관능적인 면을 띄게 되었다. 이와 함께 탕고는 하층민 이주자를 위한 음악에서 부유한 상류층도 즐기는 보다 보편적인 음악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초기에 탕고의 발전을 독려했던 페론 정권이 1950년대에 접어들어 외국 문화의 수용을 독려하고 삼인 이상의 모임을 금지하면서 춤으로서의 탕고는 암흑기를 맞이하게 되었으며 탕고 음악 역시 위상이 축소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한편으로 이것은 감상 중심의 새로운 탕고 음악이 탄생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것이 바로 1950년대에 반도네온 연주자로 활동하고 있었던 아스토르 피아졸라(Astor Piazzolla)에 의해 만들어진 신 탕고, 누에보 탕고였다.
아스토르 피아졸라는 시대에 맞는 새로운 탕고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며 기존 탕고에 파리에서 나디아 불랑제에게서 사사한 클래식의 우아함과 어린 시절 미국에 살면서 접했던 재즈의 자유로움을 가미한 새로운 탕고를 제시했다. “Oblivion”, “Libertango”등으로 대표되는 그의 탕고 음악은 재즈 특유의 복잡 미묘한 리듬 변화를 반영하여 과거 “La Cumparsita”, “El Choclo”로 대표되는 전통적인 탕고와 확연한 차이를 보였다. 그 결과 그의 새로운 탕고는 그 안에 담긴 클래식이나 재즈적인 요소로 인해 아르헨티나를 넘어 세계적인 호응을 얻었다. 이것은 한국에서도 마찬가지인데 실제 우리가 사랑하는 탕고 음악은 주로 아스토르 피아졸라의 탕고가 주를 이룬다.
그렇다고 아스토르 피아졸라 이전의 전통적인 탕고의 명맥이 끊어진 것은 아니다. 특히 1987년 전통적인 탕고 음악이 중심이 된 탕고 쇼 “탕고 아르헨티노”가 세계적인 성공을 거두면서 전통적인 탕고에 대한 새로운 관심이 일어났다. 그리고 이와 함께 30여 년간 어둠 속에 있었던 춤으로서의 탕고에 대한 관심도 새롭게 일어났다.
이제 탕고는 아르헨티나의 전통 음악이지만 세계인들이 즐기는 음악이 되었다. 또한 현재의 음악으로써 지속적인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특히 최근의 탕고는 가난한 자와 부유한 자의 계급을 넘어 전 세대를 아우르는 음악으로 나아가고 있다. 클래식과 재즈의 영역에 머무르면서 탕고의 전통을 유지하는 디노 살루지의 반도네온 음악, 일렉트로니카 계열의 전자적인 사운드를 가미한 도시적 분위기의 일렉트로 탕고를 만들어 낸 고탕 프로젝트의 음악이 탕고 안에서 공존하고 있다는 것이 좋은 예라 하겠다.
비가 와서 그런지 탱고 음악이 막 당기네요.^^
그런데, 혹시 디노 살루지 음반 하나 추천해주실 수 있나요?
개인적으로는 Responsorium이나 Ojos Negros같은 앨범을 좋아합니다. 탕고의 열정보다는 어떤 우수어린 서늘함 그런 것을 느낄 수 있죠. 탕고의 열정은 리차드 갈리아노가 더 확실할 듯 싶네요. 그리고 디노 살루지 앨범은 아니고 토마추 스탄코의 앨범 From the Green Hill이나 미리엄 알터의 앨범 If에서의 연주도 아주 좋습니다.ㅎ
어머나… if 앨범 연주가 이분이셨군요..
한동안 이 앨범 계속 리플해서 듣고 다녔건만..ㅜ
추천해주신 것 중 몇 곡을 감상해보니, 특히 Ojos Negros…정말! 좋습니다.
추천 감사합니다.^^
예. 반도네온 연주가 인상적인 앨범이었죠. Ojos Negros는 클래식의 느낌도 나고…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