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국을 떠나 미국에서 공부를 하고 돌아온 새로운 연주자들이 속속들이 앨범을 발표하고 있어 반갑다. 게다가 각기 명확한 자기만의 개성을 표출하고 있기에 그 반가움은 더하다. 피아노 연주자 권석영도 미국에서 공부를 하고 돌아왔다. 원래 한국에서는 경영학을 전공했는데 음악을 하고자 1996년 버클리로 떠났다고 한다. 그리고 졸업 후 보스톤과 뉴욕을 중심으로 약 3년간 활동을 하고 한국으로 돌아와 첫 앨범을 녹음하게 되었는데 기존 음반사의 후원 없이 혼자만의 노력으로 만든 앨범인 듯하다. 그런데 홍보 자료를 보니 재즈가 아닌 뉴 에이지 앨범이라고 소개되어 있다.
하지만 실제 앨범을 들어보면 뉴 에이지냐 재즈냐는 식의 논쟁은 그다지 필요 없을 것으로 보인다. 글쎄. 뉴 에이지로 소개한다면 상업적으로 보다 이익을 볼 수 있을까? 재즈와 뉴 에이지가 어느 선에서 만나고 있고 또 재즈가 하나의 고정된 한계를 지니지 않고 있음을 생각한다면 이 앨범에 담긴 음악은 재즈 일 수도 뉴 에이지일 수도 있다. 이런 모호함은 사실 이번 앨범이 피아노 솔로 앨범이고 또 수록곡들이 표제 음악으로 하나의 구체적인 이미지나 심상을 표현하기를 지향한다는 사실에서는 뉴 에이지로 이해될 수 있다. 그러나 정작 그 표현으로서의 연주가 일반적인 멜로디 라인 중심이 아니라 하나의 이미지를 형성하는 과정에 초점을 맞추기라도 한 듯 코드 진행이 만들어 내는 분위기의 흐름, 변화가 주가 되고 있다는 사실에서는 재즈로 이해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굳이 필자에게 선택을 하라면 재즈라 하고 싶다. 그것은 강박적으로 왼손 코드 연주자 반복되며 하나의 분위기를 서서히 구축해 나가는 연주 방식은 감성 중심의 뉴 에이지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어떤 장르건 그것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재즈 앨범이 되었건 뉴 에이지 앨범이 되었건 지금까지 한국 연주자들이 발표했던 피아노 솔로 앨범들과는 다른 음악적 관점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할 뿐이다. 사실 지금까지 많은 우리 연주자들은 멜로디에 대한 강한 애착을 보였다. 하지만 이 앨범은 그와 달리 멜로디를 코드로 풀어나간다. 즉, 오른 손이 연주하는 멜로디가 명쾌하게 도드라지기 보다는 점진적으로 변화하는 왼손 연주에 묻혀 하나의 흐름으로 제시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앨범에 담긴 이미지는 그저 달착지근한 멜로디로 자극하는 것이 아니라 사운드 흐름의 변화로서 분위기를 느끼게 하는 것을 통해 감상자에게 다가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