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한충완이라는 연주자의 이미지는 어떤 것이었을까? 아마도 일렉트릭 키보드 연주자로서의 이미지가 강했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실제 그의 이전 앨범들은 키보드 연주자 한충완의 연주가 주를 이루고 있다. 따라서 그가 어쿠스틱 피아노 앞에 앉았다는 것은 그 질감의 변화만큼이나 새로운 변화에 해당한다. 그러나 이런 새로움에 대해 그는 원래의 색으로 돌아간다(回色)는 표현을 하고 있다. 말하자면 그동안 외연화시키지 못했던 그만의 것을 이번에 드러낸다는 것이리라. 그래서 앨범 전체는 아주 정갈한 자기 표현으로 가득하다. 말 그대로 그림 엽서에서 보게 되는 자연의 평온한 풍경이 연상되는 연주들이다. 이러한 이유로 각종 음반 판매 사이트 등에서는 이 앨범을 뉴 에이지로 분류하고 있다. 그런데 사실 연주자의 음악에 이러저러한 장르의 정의가 얼마나 큰 소용이 있으랴마는 여기에는 다소 논란의 여지가 있다고 생각된다. 그냥 편하게 뉴 에이지로 보아도 되겠지만 그러기에는 이 앨범에 담긴 재즈적 진정성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앨범에 담긴 연주들은 사색적이며 아름답다. 그러나 결코 소녀 취향의 멜로디가 우선하는 연주는 아니다. 코드 진행에서 만들어지는 분위기에서 멜로디가 솟아난다고 할까? 이 앨범의 모든 곡들은 어디까지나 구조적 긴장을 지닌 코드에서 출발하고 있다. 그리고 이 멜로디의 진행 역시 정해진 틀을 따라 이동하는 것이 아니라 자유로운 비약으로 정서의 지평을 확장시킨 뒤 이를 다시 차분하게 정리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를 위해 앨범의 타이틀 곡을 들어보길 바란다.
한편 그 자유로운 비약이 난해하게 들리지 않는 것은 이 앨범의 연주가 모두 느린 템포를 전제로 하고 또 연주자 내면의 순수한 정서적 울림을 충실히 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앨범에 담긴 곡들은 이리저리 고쳐가며 작곡을 한 것이 아니라 평소에 자기 마음을 따라 자유로이 즉흥 연주를 하면서 발견한 아름다운 멜로디를 정리한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사실 연주자 개인이 뛰어난 멜로디적 감각을 지녔다면 즉흥 연주를 하는 식으로 작곡을 하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것이 아니다. 이미 그것을 우리는 키스 자렛의 솔로 연주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앨범에서는 13 곡의 표제음악과 마지막을 장식하고 있는 두 곡의 즉흥 연주곡 <Improv. I>, <Improv. II> 간의 음악적 동일성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이번 앨범은 그동안 드러나지 않았던 한충완의 내면을 만날 수 있다는 것과 모든 곡들이 음악적 진지함과 감상의 용이성이 적절하게 공존한다는 것에서 많은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앨범이 되리라 생각된다. 그리고 나아가 기왕이면 다음 앨범에서는 이번 앨범보다 더 자유에 충실하고 호흡이 긴 연주를 들려주었으면 하는 욕심을 가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