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은 어린 보컬 소울에서 자신의 음악을 찾다
2007년은 재즈 역사상 가장 위대한 보컬 중 한 명인 엘라 핏제랄드의 탄생 90주년이었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버브 레이블은 아주 특별한 앨범을 기획했다. 나탈리 콜, 다이아나 크롤, 다이안 리브스 같은 이 시대를 대표하는 유명 재즈 보컬부터 샤카 칸, 퀸 라티파, 리즈 라이트, 린다 론스타트, 글래디스 나이트 등의 R&B, 소울 보컬 등을 불러 명인에 대한 헌정의 마음을 담은 노래를 부르게 한 것이다. 그런데 쟁쟁한 보컬들 사이에 매우 낯선 여성 보컬의 이름이 보였다. 그녀는 앨범에 참여한 다른 누구보다도 엘라 핏제랄드를 떠올리는 노래를 했다. 화려한 스캣은 물론 음색까지 젊은 시절의 엘라 핏제랄드를 연상하게 했다. 엘라 핏제랄드에 대한 이 헌정 앨범을 들어본 감상자라면 누구나 이 낯선 보컬이 들려주는 엘라 핏제랄드의 환영에 놀라고 감탄했을 것이다.
경탄을 이끌어 낸 보컬은 바로 이 앨범의 주인공 니키 야노프스키였다. 1994년생으로 현재 우리 나이로 22세인 그녀는 다섯 살부터 노래의 맛을 알게 된 후 12세 무렵에 엘라 핏제랄드를 듣게 되면서 재즈 보컬의 세계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청소년기에 누군가를 우상으로 삼으면 그 우상을 맹목적으로 모방하듯 그녀 또한 엘라 핏제랄드의 창법은 물론 음색까지 모방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것이 너무나 완벽했다. 그 결과 13세의 나이로 엘라 핏제랄드 헌정 앨범에 참여할 수 있었다. 이것은 그녀의 삶에 전기를 가져다 주었다. 데뷔 앨범도 없는 신동이 같은 해 몬트리올 재즈 페스티벌 무대에 오르게 된 것. 이 공연은 엘라 핏제랄드를 그리워하는 많은 감상자들의 만족을 이끌어 냈고 그 결과 그녀는 이 공연을 정리한 앨범 <Ella……Of Thee I Swing>을 첫 앨범으로 발매하게 되었다. 이 앨범은 캐나다의 그래미 상이라 불리는 주노 상의 두 부분 후보에 오를 정도로 큰 인기를 얻었다. 나아가 그녀는 미국과 일본으로 공연을 이어나갔고 2010년 뱅쿠버 동계올림픽 개, 폐회식에서 노래하고 주제가인 ‘I Believe’를 노래하기에 이르렀다. 특히 ‘I Believe’는 캐나다의 Hot 100 차트에서 단번에 1위에 오르는 인기를 얻었다.
하지만 그녀는 이에 만족하지 않았다. 특히 엘라 핏제랄드의 그림자 안에 머무르면 자신은 결국 아류로만 기억될 것임을 깨달았다. 그 결과 2010년 첫 스튜디오 앨범 <Nikki>를 통해 그녀는 명인을 존중하면서도 그 그림자에서 벗어나고픈 의지를 보여주었다. 하지만 이것은 절반의 성공이었다. 전통적인 재즈를 중심으로 R&B, 포크, 블루스, 프렌치 팝 등을 아우르는 노래로 엘라 핏제랄드와 다른 그녀만의 음악을 선보이는 것에는 성공했지만 그것은 완성보다는 가능성에 더 가까웠다. 빌리 할리데이를 연상시키는 음색으로 화제를 모았던 마들렌느 페루가 고인의 그림자를 느끼게 하면서도 자신만의 색을 보여주는 데 성공했던 것과는 분명 다른 것이었다. 이러한 절반의 성공은 첫 앨범을 녹음할 당시 그녀가 여전히 10대, 정확히는 우리 나이로 17세의 청소년이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음악을 떠나 10대면 아직 확고한 자아가 성립되지 않은 때가 아니던가> 그래서 의욕만큼의 성과를 얻지 못한 것 같다.
그로부터 4년이 지난 2014년 지금 우리가 듣고 있는 두 번째 스튜디오 앨범 <Little Secret>이 발매되었다. 우리 나이로 21세에 녹음한 이 앨범에서 니카 야노프스키는 첫 앨범보다 한층 정돈된, 하나의 방향을 설정하고 이를 향해 매진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지난 두 장의 앨범을 들어본 감상자라면 이번 앨범은 다소 낯설게 느껴지지 않을까 싶다. 왜냐하면 재즈보다는 (네오) 소울에 가까운 사운드 때문이다. 이것은 첫 곡 ‘Something New’부터 여실히 드러난다. 브라스 섹션이 만들어 내는 흥겨운 리듬은 확실히 재즈보다는 소울에 가까운 것이다. 이것은 ‘Necessary Evil’, ‘Knock Knock’, “Kaboom Pow” “Bang” 등을 비롯한 수록곡 전체를 통해 반복된다.
사실 이전 앨범 <Nikki>에서도 R&B나 소울적인 요소가 있었다. 다만 그것이 일부분이었고 이번 앨범에서는 전체를 지배하는 핵심이라는 것이 다를 뿐이다. 따라서 이번 앨범을 두고 그녀가 갑작스레 음악적 방향을 바꾸었다고 말하긴 곤란하다. 어찌 보면 지난 앨범에서 그녀가 보여주었던 여러 가능성 가운데 하나를 제대로 보여주었다고 보는 것이 더 적확할 듯싶다.
소울 사운드의 선택에는 이번 앨범의 제작을 담당한 퀸시 존스의 영향을 무시할 수 없다. 알려졌다시피 그는 재즈의 거장이기도 하지만 소울, R&B 스타일의 앨범 제작에도 탁월한 결과를 내 온 인물이다. 마이클 잭슨의 앨범이나 자신의 앨범 <Back On The Block>이 그 좋은 예이다. 탁월한 감각의 이 노장 제작자는 니키 야노프스키가 유명 재즈 디바의 그늘에서 벗어나 자신의 색을 찾기 위해서는 외형적인 변화가 중요하다 생각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소울 사운드였다. 물론 이러한 변화의 최종 선택은 니키 야노프스키 본인이었다. 앨범의 창작곡 대부분의 곡 작업에 참여한 것이 이를 말한다.
20대 초반의 젊은 니키 야노프스키에세 서울 사운드가 잘 어울리기는 하지만 이것이 다음 앨범에 다시 연장될 것인지는 사실 나도 확신하지 못하겠다. 왜냐하면 그녀가 현대적 질감의 사운드 속에서도 복고적인 취향을 놓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앨범의 첫 싱글 곡인 ‘Something New’가 대표적이다. 제목과 달리 이 곡에서 그녀는 허비 행콕의 ‘Watermelon Man’과 퀸시 존스의 ‘Soul Bossa’의 테마를 살짝 차용했다. 그래서 새로움 속에 지난 시절에 대한 향수를 느끼게 한다. 나아가 ‘You Mean The World To Me’같은 곡에서는 재즈에 대한 그녀의 사랑을 확인하게 한다. 또한 자니 머서와 해리 워렌의 곡을 새로이 노래한 ‘Jeepers Creepers 2.0’에서는 아예 루이 암스트롱의 구수한 보컬 일부와 트럼펫 솔로를 샘플링 형식으로 차용했다. 그리고 니키 야노프스키 자신은 젊은 시절의 엘라 핏제랄드의 환영을 스캣을 통해 다시 드러냈다. 스캣은 타이틀 곡을 비롯한 여러 곡에서 감각적으로 반복된다. 아마도 니키 야노프스키에게서 더 오래 엘라 핏제랄드를 보고 싶어하거나 적어도 재즈 보컬로서의 모습을 보고 싶어하는 감상자들은 이들 곡을 더 많이 마음에 들어 할 것 같다. 나 또한 재즈를 중심으로 음악을 듣는 감상자 입장에서 복고적 취향이 반영된 곡을 더 선호한다. 니키 야노프스키 또한 앞을 보면서도 계속 지난 시절에 대한 애틋함을 유지할 것이라 생각한다. 그렇기에 다음 앨범은 이와는 조금 다를 확률이 높다.
지난 앨범 <Nikki>에 대한 라이너 노트에서 나는 앞으로 그녀의 활동을 꾸준히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썼었다. 이것은 지금도 유효하다. 엘라 핏제랄드가 활동했던 시기에는 10대에 자신의 음악적 방향을 찾아내어 매진하는 것이 가능했다. 하지만 현재는 주변의 영향을 여전히 많이 흡수해야 하는 수련기의 성격이 강하다. 또 엘라 핏제랄드도 사실은 20대 중반을 넘어가면서 음악적으로 개화했다. 따라서 아직 20대 초반인 니키 야노프스키에게 무엇인가 확실한 그녀만의 음악을 요구하는 것은 다소 성급한 일일 수 있다. 그보다는 스타일을 떠나 이 앨범이 그녀에게 잘 어울리는 음악, 스타일에 대한 기대에서 해방한다면 기본적으로 많은 감상자를 사로잡을 만한 설득력 있는 음악을 담고 있다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그리고 다시 그녀가 어떤 변화를 통해 성장한 모습을 보여줄 것인가 기대하고 지켜보는 것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