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아나 크롤이 새 앨범 <Wallflower>를 발매했다. 이번 앨범에서 그녀는 우리에게도 친숙한 팝의 명곡들을 그녀만의 달콤하고 부드러운 스타일로 노래했다. 그녀는 이전에도 빌리 조엘의 곡 등을 노래한 적은 있지만 늘 재즈적이었다. 그래서 그녀가 팝을 노래했다는 사실은 무척 의외로 다가온다. 그래서 그녀에게 직접 이번 앨범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했다. 하지만 여건상 그녀가 있는 미국으로 날아갈 수는 없었고 전화로 인터뷰를 해야 했다. 전화상이었고 주어진 시간이 그리 많지 않았지만 그녀는 매우 친절하게 답변을 해주었다.
청춘: 먼저 제작자에 관해 이야기를 해보죠. 당신과 함께 한 제작자를 보면 토미 리푸마가 제일 먼저 떠오릅니다. 오랜 시간 당신과 함께 했죠. 그런데 최근에는 앨범마다 제작자의 변화를 주고 있습니다. 그와 함께 음악도 변화가 있는 것 같은데요. 당신에게 제작자는 어떤 의미를 지닐까요? 그 역할이 궁금합니다.
DK: 제작자의 역할이 이렇다 하고 몇 마디로 이야기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어렵죠. 기본적인 답변만이 가능할 텐데요. 앨범의 기획부터 연주와 녹음에 이르는 모든 과정에서 동반자 역할을 한다고 말할 수 있겠네요,
청춘: 그렇다면 당신의 경우 앨범의 기본 방향을 잡은 후에 그에 어울리는 제작자를 찾는 가요? 아니면 제작자가 먼저 방향을 결정하는 편인가요?
DK: 제작자가 먼저고 그 다음이 앨범이죠.. 이번 앨범의 경우 데이빗 포스터가 제작을 담당했는데요. 그와 저는 20년 이상 알고 지낸 친구입니다. 같은 캐나다인인데다가 같은 지역에서 살았던 이웃이기도 하죠. 그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스탠더드 재즈 곡이 아니라 제가 어린 시절 들었던 팝을 노래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죠. 제가 60년대부터 80년대까지의 팝을 좋아하기에 자연스럽게 방향이 그렇게 정해졌네요.
청춘: 그렇군요. 그럼 실제 데이빗 포스터와의 작업은 어땠습니까? 새로운 변화를 시도하는 과정에서 혹시 의견이 맞지 않는 경우가 있지 않았나요?
DK: 데이빗 포스터는 이번 앨범의 제작자인 동시에 피아노 연주를 담당했습니다. 그는 매우 훌륭한 피아노 연주자입니다. 그는 재즈 연주도 잘합니다. 그리고 이번 앨범 같은 팝 성향의 연주는 물론 잘 합니다. 그래서 앨범 작업을 하면서 피아노에 대해 별로 고민할 일이 없었어요. 저는 그저 마음이 가는 대로 곡을 선택하고 노래에 집중하기만 하면 되었습니다. 그래서 정말 그가 없었다면 이번 앨범을 만들지 못했을 것이라 말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와 나는 둘 다 뮤지션인 만큼 대화도 잘 통합니다. 서로 상대가 무슨 말을 하는지 그 의미를 정확히 이해할 수 있죠. 그렇기에 큰 문제는 없었습니다.
청춘: 이번 앨범은 사실 지난 해 가을에 발매될 예정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한국 라이선스 음반을 위해 지난 가을에 글을 쓰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당신이 폐렴에 걸리면서 발매가 부득이하게 연기되었습니다. 앨범 발매를 연기할 정도면 병세가 상당히 심각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현재 현재 건강 상태는 어떤가요?
DK: 지금도 감기에 걸려서 고생하고 있을 정도로 컨디션이 100%라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래도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겠네요.
청춘: 당신의 건강 이상 소식을 듣고 당신의 공연 스케줄을 잠시 살펴보았습니다. 올 해만 해도 10월까지 꽉 차있더군요. 한국식으로 살인적 일정이라 말할 수 있을 정도였습니다. 그렇게 공연을 이어가다 보면 철인이 아닌 이상 건강에 이상이 오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되는데요. 이런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 특별히 건강을 관리하는 방법이 있나요?
DK: 특별한 것은 없습니다. 제게는 그저 음악을 하는 것이 건강관리라 할 수 있겠습니다. 저는 음악을 사랑하고 제가 하는 일을 사랑합니다. 그래서 노래하고 연주를 하면 할 수록 건강이 좋아집니다. 그래서 지난 해 폐렴에 걸렸지만 이것 또한 올해 활동을 열심히 하다 보면 빠르게 회복되리라 생각합니다.
청춘: 멋진 말씀입니다. 그런데 공연을 이어가다 보면 새로운 음악을 구상할 수 있는 시간을 따로 내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새로운 음악에 대한 구상은 언제 어떻게 합니까?
DK: 새로운 구상을 해야겠다고 따로 시간을 정해놓고 하는 건 아닙니다. 사실 아이디어는 대부분 예상하지 못했던 순간에 갑자기 떠오르기 마련이죠. 제 경우는 동료들과 대화를 하면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곤 합니다.
청춘: 지난 앨범 <Glad Rag Doll>이 아버지와 함께 들었던 어린 시절의 추억에 기인하고 있다면 이번 앨범은 그 이후 팝을 들었던 청소년기의 추억에 기안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최근 개인적인 아련한 추억에 천착하는 이유가 특별히 있을까요?
DK: 예. <Glad Rag Doll>은 매우 개인적인 앨범이었습니다. 아마 제 앨범 중 가장 개인적인 앨범이 아니었나 싶어요. 물론 모든 앨범이 개인적이긴 하죠. 그래도 그 앨범은 특히 그랬습니다. 제가 재즈를 듣기 전에 실제로 축음기를 통해 들었던 음악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제 음악 역사의 시작이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이번 앨범도 그런 면에서 개인적인 측면이 강합니다. 다른 누가 즐겨 들었던 음악이 아니라, 내가 고등학교 친구들과 같이 들었던 음악들을 담고 있죠. 그렇지 않아도 고등학교 친구들에게 이번 앨범을 들려주었어요. 그랬더니 노래 가사를 다 알더라고요. (웃음) 모든 친구들이 재즈를 즐겨 들었던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이 앨범에 담긴 노래들은 모두 들었죠. 이처럼 4~50대 감상자들은 이 노래들을 매우 잘 알고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번 앨범만 특별히 추억을 이야기한다고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제 모든 앨범들은 모두 과거의 기억에서 출발합니다. 그 가운데 이번 앨범은 제가 청소년기에 친구들과 함께 들었던 음악의 기억을 담고 있을 뿐이죠.
청춘: 이번 앨범에서 당신은 엘튼 존, 마마스 앤 파파스, 밥 딜런, 이글스, 10cc, 크라우디드 하우스 등 당신이 말했던 것처럼 60년대부터 80년대 사이에 인기를 얻었던 팝, 록의 히트 곡을 노래했습니다. 이러한 레퍼토리의 선택은 어떻게 하게 되었나요?
DK: 앞에서 언급했듯이, 내가 고등학생이었을 때 친구들과 라디오와 LP를 통해 들었던 음악들 중에서 골랐습니다. 모두 제 인생의 한 부분을 상징하는 노래들이죠.
청춘: 그렇군요. 이번 앨범의 수록 곡들을 보면 당신이 팝을 무척이나 폭 넓게 들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만큼 노래하고픈 곡들도 많았을 것 같은데요. 혹시 수록된 곡 외에 녹음했지만 앨범에 빠진 곡이 있을까요?
DK: 곡을 고르는 과정은 그리 어렵지 않았어요. 오히려 재미 있었죠. 전 청소년 시절 어떤 음악을 듣고 좋아했는지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데이빗 포스터와 같은 시대에 같은 지역에서 자랐다는 것이 곡을 고르는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녹음은 총 18곡을 했습니다. 앨범에는 이번 디럭스 버전의 경우 14곡이 실렸죠. 나머지 4곡은 비밀입니다.
청춘: 수록 곡 가운데 가장 애착이 가는 곡이 있다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원곡의 아티스트 중 개인적 친분을 지닌 사람이 있을까요?
DK: ‘Wallflower’에 가장 애착이 갑니다. 이 곡은 사실 그리 잘 알려진 곡은 아니죠. 이 곡은 아마 제가 태어나기 전이나, 아기였을 때 만들어졌을 거에요. 저는 나중에 부틀렉 시리즈에서 이 곡을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개인적인 친분을 가지고 있는 아티스트는 많습니다. 하지만 저는 친분 관계보다 제가 음악적으로 이 곡들과 어떤 관계를 형성했고, 이 곡들에 대해 어떤 감정을 가지고 있는지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이 앨범을 녹음했습니다.
청춘: 이번 앨범을 듣다 보면 당신이 팝 가수의 길을 걸었어도 큰 성공을 거둘 수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청소년 시절 팝을 좋아했다면 재즈는 언제 어떻게 친해지게 되었나요? 그리고 재즈 피아노 연주자이자 보컬로서의 어떻게 삶을 선택하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DK: 저는 그냥 재즈를 하기 위해 태어난 것 같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스윙이나 즉흥연주에 매력을 느꼈고, 빌리 홀리데이를 들으면서 자랐죠. 창조적인 성향이었죠. 하지만 싱어송라이터 스타일로 창조적인게 아니라, 재즈적으로 창조적인 스타일이었습니다. 제가 하는 모든 일의 뿌리는 재즈에요. 물론 제 남편처럼 원하는 음악을 마음대로 할 수는 있습니다. 그래도 저는 재즈와 즉흥연주에 재능을 타고났기 때문에 거기서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습니다. 그냥 제 일부이거든요.
청춘: 이번 앨범에서 길버트 오 설리번의 ‘Alone Again’은 마이클 부블레와, 랜디 뉴먼의 ‘Feels Like Home은 브라이언 아담스와 듀엣으로 노래했습니다. 원곡은 솔로 보컬 곡인데 어떻게 듀엣 녹음을 하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DK: 그냥 멋진 캐나다 남자들이라서? (웃음) 브라이언 아담스와 저는 목소리가 매우 잘 어울린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와 앞으로 더 많은 작업을 하고 싶어요. 또 브라이언은 제 앨범 커버 사진도 찍어줬죠. 마이클 부블레요? 마이클의 경우는 밴쿠버에서 이웃사촌이었습니다. 너무나 오래 잘 알고 지난 사이였기 때문에 이제야 함께 작업한 것이 이상할 정도죠. 아무튼 브라이언과 마이클 모두 제 음악적 동료입니다.
청춘: 최근 10여년 사이에 당신이 발표한 앨범들은 모두 주제나 사운드의 질감 등에 있어 명확한 변화를 보여주었습니다. 예를 들면 <The Girl In The Other Room>에서는 싱어송라이터로서의 모습이, <From This Moment On>에서는 빅 밴드 재즈가, <Quiet Nights>에서는 보사노바가, <Glad Rag Doll>에서는 1920~30년대 음악에 대한 향수가, 그리고 이번 앨범에서는 팝에 대한 추억이 각각의 앨범을 지배하고 있죠. 이렇게 앨범마다 명확한 방향을 잡고 그에 걸맞은 노래와 연주를 들려주는 것은 무척 좋은 것이라 생각합니다. 달콤한 여성 보컬 다이아나 크롤에서 아티스트 다이아나 크롤로 나아가는 것이 보인다고 할까요? 그런데 이것이 공교롭게도 엘비스 코스텔로와의 결혼 이후에 일어났다는 것이 흥미롭습니다. 엘비스 코스텔로가 당신에게 끼친 음악적 영향이 있을까요?
DK: 우리는 부부지만, 모든 걸 함께하지는 않습니다. 같이 하는 것이 있고, 따로 각자 하는 부분도 있죠. 그래서 음악의 모든 부분을 공유한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음악에 대한 가치관은 확실히 공유하고 있네요. 우리는 아티스트라면 자유롭게 하고 싶은 음악을 하고, 하고 싶은 말을 표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따르기 보다는 자유롭게 음악을 하는 것이 중요하죠. 저는 남편이 원하는 바에 따라 어떤 음악이든 자유롭게 하는 것에서 많은 자극을 받습니다. 그의 솔로 공연을 보면 정말 충격적이죠. 그는 저보다 훨씬 더 뛰어난 뮤지션인 것 같습니다. 또한 멋진 남편이자 아빠이기도 하죠. (웃음) 그와 늦은 밤까지 이야기를 나누면 매우 행복합니다.
청춘: 앨범마다 변화를 거듭하다 보면 그만큼 새 앨범을 만들기가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이제 막 새 앨범을 발표하기는 했지만 혹 다음 앨범으로 시도하고픈 주제나 스타일이 있을까요?
DK: 아직은 모르겠어요. 벌써 다음 프로젝트까지 생각해보지는 않았습니다. 분명히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르겠죠. 하지만 지금은 이번 앨범에 집중하고 싶네요.
청춘: 여전히 당신의 여신 같은 미모는 변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어느덧 당신도 20년 이상의 경력을 지닌 50대의 중견 연주자가 되었습니다. 당신이 활동을 시작했던 20여년 전과 지금의 재즈 환경을 비교한다면 어떤가요? 공연이나 음반 시장 등의 변화가 느껴지나요? 그리고 그것이 당신의 음악에 영향을 끼치는지 궁금합니다.
DK: 모든 것이 바뀌었죠. 그 때는 사람들이 앨범을 사던 시기였습니다. 지금은 사람들이 앨범을 별로 사지 않죠. 그렇다고 제가 마치 불만 많은 노인처럼 과거만을 아름답게 생각하고 현재에 대해서는 불만만을 느낀다는 것은 아닙니다. (웃음) 제가 재즈 계에서 인기를 얻기 시작했을 무렵에는 동료들이 많았습니다. 조슈아 레드맨이나 크리스찬 맥브라이드 등이 대표적이죠. 그 때는 젊은 연주자들이 어쿠스틱 재즈를 가장 많이 연주했던 때였던 것 같습니다. 재즈라고 불리지만 실제로는 재즈가 아닌 음악이 아니라, 진짜 재즈 음악을 하는 젊은 뮤지션들이 등장했고, 인기를 얻었죠. 물론 그들은 지금도 훌륭한 뮤지션들입니다.
청춘: 1993년도 앨범 <Stepping Out>이 있기는 하지만 당신의 세계적인 성공은 1996년에 발매된 <All for You: A Dedication to the Nat King Cole Trio>가 결정적이지 않았나 싶습니다. 마침 올 해로 이 앨범이 발매된 지 20년이 됩니다. 이번 앨범처럼 추억을 되살리는 방식으로 이 앨범을 주제로 새로운 앨범을 만들거나 공연을 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DK: 당신이 말을 안 했으면 20주년인지도 모르고 지나갔겠는데요? (웃음) 저는 과거의 앨범에 그다지 매달리고 싶지는 않습니다. 계속 앞으로 나아가고 싶을 뿐이죠. 그 때 함께 했던 동료들과는 지금도 함께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그게 기념이라면 기념일 수 있겠네요.
청춘: 바쁜 시간 내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끝으로 한국에서 공연을 한지도 무척 오랜 시간이 흘렀습니다. 다시 한 번 당신의 공연을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DK: 저도 한국에서 공연할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한국 관객들과 공연장에서 꼭 다시 만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