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Farewell To An Unknown Friend – 손성제 (LEAPLAY 2014)

트리오의 고독한 어울림이 만들어 낸 아름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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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성제는 국내 최고의 색소폰 연주자 중 한 명이다. 그는 늘 새로운 음악에 대한 영감으로 가득 차 있으며 차근차근 주변 연주자들과의 만남을 통해 실험하고 실현하고 있다. 하지만 그의 음악을 앨범으로 만나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갈수록 좁아지는 재즈 시장과 편중된 대중의 취향으로 인해 갈수록 커지는 그의 음악적 욕망과 앨범에 대한 욕심은 반비례의 길을 걷고 있다. 이번 앨범의 경우 가요 성향의 앨범 <비의 비가>로부터 3년만이며 재즈로 국한한다면 Near East Quartet의 이름으로 발표했단 비운의 명작 <Chaosmos> 이후 4년만에 선보이는 새 앨범이다. 이처럼 음악적 영감으로 충만한 연주자가 활동에 비해 앨범이 적은 것에 대해서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지만 그래서 또 그만큼 이번 앨범이 더 반갑다.

이번 앨범을 색소폰 연주자는 피아노 연주자 김은영, 드럼 연주자 송준영과 함께 녹음했다. 색소폰-피아노-드럼으로 이루어진 트리오, 그러니까 베이스가 빠진 트리오는 그리 일반적이지 않은 편성이다. 물론 베이스를 추가해 쿼텟 편성으로 연주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어깨에 힘을 빼고 연주할 수 있는, 서로 음악적으로 통하는 편한 사람들과 함께 하는 것을 우선으로 생각하면서 과감하게 낯선 트리오 편성을 그대로 유지한 듯하다.

그런데 그 소박한 시도는 아름다운 여백을 만들어 냈다. 이것은 첫 곡 ‘No One Know Her’에서부터 잘 드러난다. 비감으로 가득한 멜로디를 이어나가는 색소폰과 이에 정서적으로 반응하며 사이를 파고드는 피아노, 그 어울림에 잔잔한 파문으로 깊이감을 부여하는 드럼의 어우러짐은 모두 여백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이 여백은 각 악기들이 서로 경청하면서도 거리감을 유지하는 관계. 고독한 어울림이랄까? .

이 고독한 어울림은 찰리 파커를 주제로 한 슬픈 발라드 ‘Goodbye Charlie’ 를 비롯하여 ‘Oslo’, ‘Lover’ 등의 자작곡에서 더욱 빛난다. 특히 이들 곡은 모두 느린 템포를 바탕으로 하고 있어서 공간적 여백이 주는 긴장, 그 공간을 유영하는 세 악기의 섬세한 감정의 깊이를 잘 느끼게 해준다. 그래서 무조건 말랑말랑한 연주가 아님에도 감상자로 하여금 음 하나하나, 소리의 울림 하나하나를 차분하게 따라가 결국엔 그 비감의 정서에 가슴 울컥하게 만든다.

한편 앨범의 나머지 절반은 여백을 활용한 서정적 연주라는 점에서는 언급한 곡들과는 궤를 같이하면서도 조금은 다른 관점에서 감상을 하게 만든다. 그것은 연주된 곡들이 현인의 노래로 알려진 ‘꿈 속의 사랑(Dream)’과 ‘베사메 무초(Besame Mucho)’, 현미의 히트 곡 ‘밤 안개(It’s A Lonesome Old Town)’ 등의 외국 음악의 번안 곡과 박인환의 시에 이진섭이 곡을 쓴 ‘세월이 가면(Time)’, 얼마 전 세상을 떠난 정성조 작곡의 영화 <어제 내린 비>의 주제곡 등 지난 시대 우리의 부모님이나 할아버지, 할머니 세대가 즐겼던 유명 가요들이기 때문이다.

몇 해전부터 손성제는 지난 시대의 우리 가요에 내재된 다소 투박하면서도 순박한 감성, 속된 말로 ‘뽕끼’라고 하는 정서에 주목하고 적극적으로 이들 곡들을 연주해왔다. 그리고 그 연주는 괜히 세련미를 부여한다고 ‘뽕끼’를 탈색시키려 하지 않고 이를 존중하고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었다. 그래서 색소폰은 나이트 클럽 혹은 카바레 등의 밤 무대에 서던 악사를 연상시키는 끈적거리는 톤으로 멜로디를 거의 그대로 연주하고 피아노는 축약하기는 했지만 특유의 ‘뽕-짜자-뽕-짝’하는 리듬을 연주했다. ‘Dream’, ‘It’s A Lonesome Old Town’ 같은 곡이 대표적이다.

보통은 이리 연주하면 상투성을 극대화한 익살스러운 지난 시대의 흉내 정도로 이해하고 웃어넘기게 된다. 실제 공연에서 손성제는 이런 반응을 유도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앨범에서는 다르다. 원곡의 정서를 유지했음에도 그것이 기이하게도 지난 시대의 재현, 복고적 취향의 반영을 너머선 현재성을 획득한 것이다. 이것은 원곡의 멜로디에 충분히 동화 된 상태에서 확장해 나가는 솔로 연주 방식 때문이다. 급격하게 원곡의 모양을 바꾸려 하기보다 충분한 호흡으로 그 모양을 자신의 것으로 발전시켜 나가는 연주! 과연 누가 ‘Dream’을 들으며 지난 시대의 밤무대를 생각할까? 오히려 원곡 안에서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서정성에 놀라고 나아가 사랑하게 될 것이다. 원곡을 알지 못하는 세대는 그냥 낯설면서 익숙한 멜로디를 지닌 곡으로 받아들이지 않을까 싶다. 이미 재즈로 자주 연주된 ‘Besame Mucho’는 차치하고서라도 ‘It’s A Lonesome Old Town’같은 곡에서는 ‘뽕끼’라는 것이 자연스레 재즈와 어울릴 수 있음을 느끼게 될 것이다. 또한 ‘Rain’ 은 현재는 물론 미래에도 유효할 서정성을 새삼 확인하게 해준다.

한편 앨범의 마지막 곡으로 순간의 감흥에 충실한 세 연주자의 자유로운 어울림 뒤에 시간의 흐름 속에서 혼돈을 정리하듯 ‘세월이 가면’의 멜로디가 흐르는 ‘Time’은 공간적 여백에서 피어나는 서정성과 자유로운 연주가 주는 긴장을 종합하는 곡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이것은 지난 2010년 Near East Quartet의 <Chaosmos>에서 들려주었던 한국적인 유랑자적 정서의 연장으로도 이해할 수도 있겠다.

이 앨범을 듣기 전에 나는 색소폰-피아노-드럼의 평범하지 않는 편성이라는 사실에 무척이나 난해한 연주가 아닐까 생각했다. 그리고 지난 시대의 가요를 연주했다는 것에서는 진지하게 접근한다는 명목으로 원곡과는 다른 지점을 헤매게 되면 어쩌나 걱정했다. 하지만 이 모두 아니었다. 손성제는 나 같은 감상자의 기대를 너머 진지하면서도 어렵지 않은, 익숙하면서도 이를 바탕으로 신선함을 지닌 무척이나 매력적이고 아름다운 음악을 만들어 냈다. 그래서 나는 감히 올 해의 앨범 후보라 말하고 싶다.

이처럼 앨범이 만족스럽기에 나는 더욱 더 그가 앨범 활동을 활발하게 했으면 좋겠다. 그의 멋진 음악이 조금은 더 오래 기억될 수 있다면 좋겠다. 부디 많은 사람들에게 이 앨범이 헤어짐의 안녕(Farewell)이 아닌 만남의 안녕(Hello)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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