록적인 질감을 추가해도 변하지 않는 호세 제임스식 소울의 매력
시간의 흐름은 연속적이다. 누구도 그 흐름을 불쑥 멈추거나 비약하게 할 수 없다. 과거는 우리의 현재를 정의한다. 결코 과거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음악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대부분의 뮤지션은 자신이 어릴 적 듣고 공부한 음악, 매일같이 듣고 또 들어 모든 것을 외울 정도로 좋아했던 선배 뮤지션의 음악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음악을 만들어 나간다. (수 많은 뮤지션들이 있음에도 그들의 음악이 몇몇 장르로 정리될 수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자신만의 음악을 만든 뒤에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새로운 음악을 선보인다고 해도 그는 이전 앨범을 완전히 부정하지 못한다.
이런 이유로 감상자들은 한 뮤지션의 과거를 바탕으로 미래의 음악을 예측하곤 한다. 아니 새로운 앨범이 발매되었을 때 듣기 전에 이전 앨범을 자료로 삼아 그 안에 담긴 음악을 예측하게 된다. 그리고 그 앨범을 듣고 예상과 같은 점에 편안함, 친근함을 느끼고 다른 점에서 신선함을 느낀다. 한 앨범에 과거의 흔적과 새로움, 친근함과 신선함이 적절한 비율로 섞였을 때 그 앨범은 성공할 확률이 크다. 너무나 지난 앨범과 같은 요인이 반복된다면 아무리 그것이 매력적이라 해도 결국엔 싫증이 나기 마련이다. 더구나 과거의 매력을 뛰어넘기란 얼마나 힘든가? 반대로 새로운 점을 너무 강조하다 보면 낯선 느낌에 감상자의 호응을 쉽게 이끌어 내지 못한다.
그렇다면 호세 제임스의 이번 앨범은 어떨까? 이를 위해서는 호세 제임스가 선보인 지난 앨범들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1978년 생으로 뉴 스쿨 음악원의 재즈와 현대 음악 단과 대학(The New School for Jazz and Contemporary Music)에서 수학한 그는 2008년 <The Dreamer>를 시작으로 이번 앨범 전까지 넉 장의 앨범을 녹음했다. 그 가운데 첫 앨범 <The Dreamer>에서 그는 그를 규정하는 스타일이 된 나른하다 싶을 정도로 힘을 뺀 창법을 바탕으로 재즈에 바탕으로 소울적 색채를 가미한 사운드를 들려주었다. 그리고 두 번째 앨범 <Blackmagic>에서는 곡에 따라 프로듀서를 달리 기용하고 이를 바탕으로 재즈 대신 소울을 기본으로 하고 여기에 일렉트로닉 사운드를 접목한 음악을 선보였다. 그렇다고 첫 앨범과 완전히 다른 음악을 들려준 것은 아니었다. 첫 앨범에 담겨 있었던 가능성을 확대한 음악이었다. 오히려 벨기에 출신의 피아노 연주자와 함께 한 세 번째 앨범 <For All We Know>가 더 색달랐다. 이 앨범에서 그는 제프 네브의 피아노 솔로 반주에 스탠더드 재즈곡들을 노래했다. 재즈 본연의 매력에 충실한 앨범이었다고 할까? 하지만 이것 또한 두 번째 앨범에서 소울과 일렉트로닉 사운드를 강조하면서 소홀해진 재즈적인 부분을 강조한 결과라 할 수 있다. 한편 이 석장의 앨범을 통해서 보여준 강렬한 매력을 바탕으로 지난 해 블루 노트 레이블에 입성해 선보인 <No Beginning No End>에서는 첫 번째나 세 번째 앨범처럼 사운드를 담백하게 유지하고 재즈보다는 소울적인 색채를 강조한 음악을 들려주었다.
이처럼 호세 제임스는 지금까지 재즈 혹은 소울, 아니면 재즈적 색채가 가미된 소울 계열의 음악을 들려주었다. 그것도 아주 매력적으로 말이다. 그 결과 재즈와 소울 음악 애호가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따라서 그의 새 앨범 발매 소식에 많은 애호가들은 재즈와 소울 음악이 어떤 비율로 섞여서 신비한 매력을 발산할까 궁금해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 글을 읽기 전 음악부터 들어본 감상자는 첫 곡‘Angel’이 시작되는 순간 분명 친근함이나 신선함을 느끼기 전에 당혹감을 느꼈을 것이다. 나긋, 나른했던 기존 호세 제임스식 사운드와는 다른 디스토션이 강하게 걸린 기타, 경우에 따라서는 지미 헨드릭스의 우주적인 느낌이 나는 기타가 인트로를 장악하더니 곡이 끝날 때까지 그 거친 질감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다. 이것은 ‘Anywhere U Go’에서 더욱 심화된다. 강렬한 기타 리프가 전체를 장악하고 드럼 또한 이에 맞게 공격적인 성향의 리듬을 강박적으로 쏟아낸다. ‘Every Little Thing’도 마찬가지. 이 곡에서 호세 제임스는 자신의 목소리에도 이펙터를 걸어 거친 질감을 더욱 강조했다. 이 외에 ‘Without U’.‘U R The 1’처럼 기타가 상대적으로 덜한 곡에서도 전체적인 사운드의 질감은 무척이나 록적이다.
그렇다. 호세 제임스의 이번 앨범은 그의 이전 앨범에 비해 록적인 색이 강하다. 그렇다면 왜 갑자기 록을 생각했을까? 단지 변화를 위해서? 꼭 그렇지만은 않다. 이번 앨범에 대해 그는 자신이‘사랑하는 모든 음악을 종합한 것’이라 말했다. 이와 함께 프랭크 오션, 제임스 블레이크, 주닙(스웨덴의 포크 록 계열의 밴드), 라디오헤드, 너바나, 매들립 등을 언급했다. 그러니까 평소 보여주었던 재즈와 소울 외에 록 또한 그가 사랑하는 음악이라는 것이다. 사실 1970년대 이후에 태어난 세대들은 자연스레 다양한 음악을 들으며 성장했다. 그 결과 현재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팝 음악-재즈를 포함한-의 다양한 세분화, 변종 등을 낳았다. 호세 제임스 또한 냇 킹 콜, 존 콜트레인, 빌리 할리데이 등에 매혹되어 재즈를 공부하기 전에 다른 또래의 젊은이들처럼 힙합과 소울, R&B, 그리고 록을 들으며 성장했다. 그래서 이번에 큰 마음을 먹고 건반 연주자 크리스 보우어스를 중심으로 한 밴드에 기타 연주자 브래드 앨런 윌리엄스를 불러 이전과는 다른 질감의 사운드를 시도한 것이다.
그가 재즈와 소울 음악 외에 록을 좋아했다는 것을 이해해도 이번 앨범의 변화는 무척이나 뜻 밖임은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결코 그는 과거의 자신을 완전히 부정하지는 않았다. 느린 템포 위로 읊조리듯 힘을 빼고 노래하는 타이틀 곡, 울렁거리는 오르간 사운드로 이루어진 짧은 연주곡 ‘Salaam’, 극적인 사운드의 움직임 속에 몽환적인 분위기를 유지하는‘xx’, 재즈를 중심으로 포크와 팝을 아우르는 여성 보컬 베카 스티븐스와 듀오로 노래한 ‘Dragon’, 그리고 이미 <Blackmagic>, <No Beginning No End>에서 트럼펫을 연주했던 타쿠야 구로다가 참여한 ‘Simply Beautiful’-한편 이 인연으로 호세 제임스는 올 해 발매된 트럼펫 연주자의 블루 노트 데뷔작 <Rising Son>을 제작하기도 했다.- 등은 우리가 잘 알고 있던 소울(혹은 재즈) 성향의 호세 제임스를 느끼게 해준다. 특히 ‘Simply Beautiful’은 소울 음악의 명 보컬 알 그린의 그림자를 느끼게 할 정도로 끈끈한 보컬과 사운드가 무척이나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그가 신선함만큼 친근함을 앨범 안에 담아 내는 것, 그래서 자신의 성공을 지속시키는 것을 잊지 않았음을 생각하게 해준다.
기존의 소울 혹은 재즈적 사운드 외에 록이라는 새로운 요소가 가미된 만큼 이번 앨범에 대한 기존 애호가들의 평가는 양분될 것으로 보인다. (당신은 어느 쪽인가?) 그리고 그 평가에 대한 답은 앨범에서 어떤 곡이 인기를 얻느냐에 달렸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