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zz Guitar Classics – 탁경주 (Johnny Company 2014)

재즈 기타의 명인들에 대한 헌정을 담은 편안한 미소 같은 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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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즈의 매력은 무엇일까? 참으로 단순한 질문이지만 여기에는 다양한 대답-서로 상반될 수도 있는 대답들이 가능하다. 그래도 대답의 상위에 재즈가 지닌 복고적인 성격이 자리잡지 않을까 싶다. 나 또한 복고적인 맛에 매료되어 재즈를 좋아하게 되었다. 스윙과 비밥을 처음 들었을 때 나는 오래된 영화에서 종종 발견되는 상투적 이미지를 떠올렸다. 파티장 혹은 클럽에서 남자 주인공이 곱씹어 생각하면 손발이 오그라드는 비현실적인 말로 첫 만남에서부터 여자 주인공의 마음을 사로잡는 장면, 담배 연기가 자욱한 어두운 클럽에서 뇌쇄적인 옷차림의 여성이 노래를 부르며 테이블 사이를 우아하게 걸으며 남성 관객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장면 같은 것 말이다. 침으로 진부한 이미지인데 나는 그것에서 낭만을 느꼈다. 그래서 재즈를 한 시간 가량 듣고 나면 클럽이나 파티장에서 술 한잔을 마신 것 같은 취기를 느끼곤 했다.

그로부터 25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 나는 재즈의 매력을 묻는 질문에 복고적인 맛이 아닌 그 반대인 신선한 맛 때문이라 말한다. (이 또한 가능한 대답 중 상위에 있을 것이다.) 재즈가 과거를 그리기보다 새로움을 향해 앞으로 나아가는 음악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사실 스윙이나 비밥도 1930,40년대 당시에는 이전 세대의 음악과 안녕을 말하고 솟아오른 최첨단의 음악이었다. 그러다가 또 다른 새로운 사조로 인해 새로운 것에서 익숙한 것의 자리로 옮겨졌던 것이다.

그렇다고 과거의 내 생각이 틀렸고 지금이 맞는다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상반된 답이 한 사람에게서 나올 수 있는 것은 그만큼 재즈가 다양한 면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요, 감상자의 취향이 다양하다는 것을 의미할 뿐이다. 이러한 취향은 연주자에게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다. 어떤 연주자는 매 앨범마다 지난 앨범과 다른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선다. 재즈가 100년이 조금 넘는 시간 동안 복잡 다양한 역사를 가질 수 있었던 것도 새로움을 향한 연주자들의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반대로 복고적인 취향에 지난 재즈에서 새로운 영감을 얻는 연주자도 있다. 이들의 음악은 새로움을 추구하는 극한의 재즈만 듣다가 방향을 상실한 느낌을 받을 때 들으면 따스함으로 감상자를 감싼다.

지금 우리가 듣고 있는 앨범의 주인공 탁경주는 지난 재즈에 대한 향수를 지닌 연주자에 해당한다.  이번 두 번째 앨범에서 그는 앨범 타이틀이 의미하듯 지난 시대의 명인들에 대한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표현했다. 마치 여러 훌륭한 연주자들이 재즈 기타의 근간을 확립했던 1940년대부터 1960년대 사이에 자신을 위치시키고 싶어하는 것 같다.

수록 곡만 봐도 알 수 있다. 웨스 몽고메리(Four On Six), 탈 팔로우(Meteor), 그랜트 그린(Idle Moments), 케니 버렐(Lyresto), 조 패스(For Django), 바니 케셀(Salute To Charlie Christian) 등 재즈 기타는 물론 재즈사를 빛낸 연주자들이 직접 썼거나 다른 작곡가의 곡이라도 자신의 서명처럼 자리잡은 대표곡들을 다시 연주했다. 그러면서 여기에 (조 패스와 바니 케셀이 그러했던 것처럼) 바니 케셀을 생각하며 쓴 자작곡 ‘One For Kessel’을 넣었다.

탁경주, 고재규(베이스), 이창훈(드럼)로 구성된 트리오의 연주가 위치한 공간감도 매우 복고적이다. 이 트리오는 과거 바니 케셀, 레이 브라운, 쉘리 만으로 구성된 트리오 The Poll Winners(세 연주자가 각각 1956년 잡지‘다운비트’, ‘메트로놈’, ‘플레이보이’ 에서 실시한 독자 투표에서 자신의 악기부분 최고 연주자로 선정된 것에서 착안한 이름이다.)를 모범으로 했다고 한다. 이를 보다 적극적으로 드러내기 위해 트리오는 일체의 효과 없이 앨범을 녹음했다. 소리를 잡기 위한 마이크만 배치하고 그 이상의 장비는 전혀 사용하지 않았다. 탁경주의 기타 또한 일렉트릭 기타 본연의 담백한 톤으로만 연주했다.

그 결과 트리오의 연주는 작은 방 안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차분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듯한 정겹고 따스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내가 이야기 하나 해줄게 들어봐.하면서 나지막한 목소리로 조용히 이야기를 시작하는 오랜 친구의 모습이랄까? ‘Until We Say Goodbye’같은 곡이 특히 그렇다. 이 발라드 곡에서 그의 기타는 깊은 우수를 담은 멜로디에서 슬픔을 걷어내고 달콤함과 나른함을 넣어 연주한다. 그래서 창 밖에서 일어나는 복잡한 일들을 잊고 지금 내가 있는 이곳을 편안하고 포근한 공간으로 바꾸어버린다. 혼자 있지만 속 깊은 친구와 함께 있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한다. 혼자서 심야 라디오를 들을 때 받곤 하는 위로를 생각해도 좋을 것 같다.

탁경주가 지난 시대의 명인들에 대한 헌정의 마음을 담은 앨범을 만들게 된 것은 그저 과거의 재즈가 지금보다 더 좋았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은 아니었다. 그랬다면 그는 웨스 몽고메리, 탈 팔로우, 바니 케셀, 케니 버렐, 조 패스, 그랜트 그린처럼 연주했을 것이다. 기타 톤까지 곡마다 적절히 조절해가면서 말이다. 그랬다면 나는 이 앨범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을 것이다. 차라리 앨범에서 언급된 기타 연주자들의 앨범을 들으면 그만 아닌가? 하지만 앨범에 담긴 그의 연주는 그렇지 않다. 거장에 대한 애정이 느껴지면서도 톤이나 주법은 꼭 누구라고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종합적인 동시에 시간을 통해 단련된 탁경주를 느끼게 한다. 연주 방식은 복고적이긴 하지만 그 내용은 그만의 새로움으로 채워졌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Four On Six’를 들을 때 옥타브주법을 펼치던 웨스 몽고메리가 아니라 그의 경쾌함을 이어받아 날렵하게 움직이는 탁경주를 보게 된다. ‘Idle Moments’를 들을 때는 느릿느릿 대충대충 연주하는 듯한 이미지로 나른함을 표현했던 그랜트 그린이 아니라 그의 여유를 조금 팽팽하게 당긴 탁경주를 듣게 된다. ‘Salute To Charlie Christian’은 어떠한가? 이 곡에는 케니 버렐의 블루지한 맛에 정갈함을 부여한 탁경주가 보인다.

결국 이 앨범에서 탁경주가 원했던 것은 과거로의 시간 여행이 아니라 그 과거를 현재로 불러오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를 통해 2014년 자신의 현재를 보여주려 했다고 나는 생각한다. 누구나 그렇듯이 그는 명인들의 연주를 들으며 그들처럼 연주하려고 노력했을 것이다. 그러나 결국 그는 그 안에서 자신을 발견했다. 그것은 빠른 템포에서도 흔들림 없이 평정심을 유지하며 자신의 이야기를 해나가는 차분한 연주자로서의 모습이었다.

실제 탁경주의 성격이 그런 것 같다. 나는 탁경주를 딱 한 번 만났다. 이 앨범 때문이었다. 그 자리에서 그는 자신은 크게 유명해지지 않아도 된다고, 그냥 기타 연주를 꾸준히 이어갈 수 있기만 하면 좋겠다고 자신의 기타 톤처럼 조용히 웃으며 말했다. 따라서 앨범의 마지막 곡으로 ‘What Are You Doing The Rest Of Your Life?’를 연주한 것, 그것도 베이스와 드럼 없이 멜로디, 베이스, 코드를 홀로 연주한 것은 그다운 선택이었다. 프랑스의 작곡가 미셀 르그랑이 1969년 영화 <해피 엔딩>을 위해 쓴 이 곡을 연주하며 그는 우리에게 삶의 방향에 대해 질문하는 한편 앞으로 그가 살아갈 음악적 삶을 이야기한다. 자신이 좋아하는 연주를 하며 살고 싶고 또 그럴 것이라고. 너무나 조용하고 차분한 연주지만 그것은 일종의 선언과도 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앞으로 그가 아주 충격적이고 혁신적인 무엇을 보여주리라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그가 그저 그런 연주자로 재즈 애호가들의 관심 밖에 위치하리라 생각하지도 않는다. 평소에는 그리 관심을 끌지 않다가도 따스한 무엇이 필요할 때, 마음의 안정이 필요할 때, 재즈의 가장 기본적인 맛이 그리울 때 제일 먼저 찾는 연주자가 되리라 생각한다. 그러면 어지러운 마음을 추스르고 다시 새로운 출발의 힘을 주는 음악을 그는 늘 들려주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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