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렬하고 화사한 사운드로 좋은 인생을 꿈꾸게 하는 노래들
현재 한국 대중 음악의 중심은 우리 가요, K-Pop에 집중되어 있다. 이런저런 비판의 여지가 있기는 해도 전반적으로 우리 K-Pop의 음악적 질이 높아졌기 때문이리라. 어찌 보면 과거 팝 음악을 무조건 우리 음악보다 좋은 것을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던 것을 생각하면 K-Pop의 득세는 바람직한 일이다. 하지만 팝 음악을 듣는 것 자체가 대단한 음악 마니아의 행동처럼 비추어질 정도로 전세가 완전히 뒤집힌 것은 다소 아쉽다. 그렇다고 내가 팝 음악 예찬론자인 것은 아니다. 그저 음악적 다양성, 취향의 다양성이 저해되는 것 같아서 아쉽다는 것이다. 실제 영미 팝의 인기가 예전만 못하다 보니 그 외 월드뮤직이라 불리던 비 영어권의 팝 음악에 대한 관심도는 극히 미미한 수준으로 떨어진 것 같다. 그네들의 음악이 퇴보한 것도 아님에도 말이다. 그 결과 국내에서도 충분이 인기를 얻을 수 있는 뛰어난 뮤지션들의 음악이 제대로 조명을 받지 못하는 일이 빈번하다. K-Pop이 세계 곳곳에서 인기를 얻었던 것은 그만큼 여러 국가들이 다양성을 바탕으로 K-Pop에 관심을 가졌기 때문이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 뒤로 K-Pop에 내재된 매력이 힘을 발휘했던 것이고.
우리가 모르는 세계적 스타 후아네스
지금 우리가 듣고 있는 콜롬비아 출신의 싱어송라이터 후아네스의 음악도 조금만 더 조명을 받았다면 국내에서 인기를 얻을 수 있었다고 본다. 10여년 전 국내에 처음 소개된 이후 2012년도 앨범 <Tr3s Presents Juanes MTV Unplugged>까지 여러 장의 앨범이 국내에 소개되었지만 기대한 만큼의 성과는 얻지 못한 것 같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당신 같은 감상자의 귀까지 전해질 기회가 부족했을 뿐 그의 음악은 늘 개성을 바탕으로 대중성과 이국적 신선함이 어우러진 매력을 발산해왔다.
지금까지 발표된 총 6장의 앨범을 발표하면서 그래미 상 라틴 팝 혹은 록 부분의 후보에 다섯 차례 올라 두 번 수상했다는 것이 이를 말한다. 라틴 그래미 상에서의 수상실적은 더욱 화려하다. 지금까지 그 해의 앨범, 그 해의 노래 등 다양한 부분에 26차례 후보에 올라 20차례 수상했다. 명실상부한 세계적 스타인 셈이다.
콜롬비아의 스타에서 세계적인 스타로
본명이 후안 에스테반 아리스티사발 바스케스(Esteban Aristizábal Vásquez)인 그는-후아네스는 그의 이름을 축약한 것이다- 1972년 세상에 나와 7세부터 기타를 연주했다. 이를 바탕으로 1988년 메탈리카를 모델로 한 헤비메탈 그룹 에기모시스(Ekhymosis)를 결성해 10년간 7장의 앨범을 발표하며 안정적인 활동을 했다.
그러다가 그룹을 떠나 기타를 들고 무작정 미국 LA에와 데모 음반으로 여러 음반사와 접촉을 시도하던 중 우리에게는 <브로큰백 마운틴> 등의 영화 음악과 바호폰도 탕고 클럽의 리더로 친숙한 아르헨티나 출신의 작곡가겸 제작자 구스타보 산타오랄라의 눈에 띄어 솔로 활동을 시작할 수 있었다. 2000년에 발매된 첫 앨범 <Fíjate Bien 잘 보세요>은 콜롬비아에서 10주간 앨범차트 1위에 머물 정도로 큰 성공을 거두었다. 하지만 다른 스페인어 권은 물론 기타 지역, 특히 미국에서 관심을 받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세 개의 라틴 그래미상을 수상한 것은 그로서도 의외였다.
그의 진정한 성공은 다시 한번 구스타보 산타오랄라와 손을 잡고 녹음한 2002년도 앨범 <Un Día Normal 평범한 하루>를 통해 이루어졌다. 발매 첫 날 콜롬비아에서 단번에 골드 레코드를 기록한 이 앨범은 스페인어 권 국가에서만 멀티 플래티넘 앨범이 되었다. 미국에서의 성공은 이 보다 더 대단했다. 빌보드 라틴 음악 차트에 2년간 머물면서 92주 동안 10위 아래로 내려가지 않는 대단한 기록을 만들어 낸 것이다. 당연히 히트 곡 또한 많았다. 그 가운데‘A Dios le Pido 신께 드리는 기도’는 빌보드 라틴 음악 차트에서 47주 연속 1위를 하고 다른 12개 국가에서도 1위를 하는 등 앨범의 성공을 이끌었다. 이것은 다섯 개의 라틴 그래미상을 수상과 세계 곳곳을 도는 공연으로 이어졌다. 그 결과 뉴욕 타임즈는 그를‘보노나 스팅에 견줄만한 인물로 감상자를 기분 좋게 만드는 법을 절대 잊지 않는 이상적 싱어송라이터’라 평하기도 했다.
성공은 2004년에 발매된 <Mi Sangre 나의 피>에서도 이어졌다. 싱글‘Nada Valgo Sin Tu Amor 그대의 사랑 없이 난 아무 것도 아니다’를 중심으로 여러 곡을 히트 시킨 이 앨범은 그에게 스페인어 권 국가와 미국 외에 프랑스, 독일, 스위스, 이탈리아 등 유럽의 비-스페인어 권 국가에서의 인기를 가져다 주었다. 한편 커다란 성공을 통해 얻은 부(富)를 사회에 환원하겠다는 마음으로 2005년 대인살상용 지뢰의 희생자-특히 콜롬비아에 많은-들을 돕기 위한 Mi Sangre 재단을 설립했다. 그 결과 타임즈 매거진은 그를 세계의 100대 영향력 있는 인물의 하나로 그를 선정했으며 프랑스에서는 그에게 문화예술 훈장을 수여하기도 했다.
가족과 약 1년간 휴식의 시간을 보낸 후 2007년에 선보인 앨범 <La Vida…Es un Ratico 삶은…순간이다>도 성공적이었다. 77개국에서 인기를 얻는 가운데 14개 국가에서 히트 차트 정상에 오른 싱글 ‘Me Enamora 사랑에 빠지다’을 중심으로 세계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한편 2009년에는 쿠바에서 평화 콘서트를 기획해 비난과 생명의 위협 속에서도 커다란 성공을 이끌어 내기도 했다.
작은 시련과 극복
후아네스의 다섯 번째 앨범 <P.A.R.C.E 친.구>는 2010년 월드컵 개막 공연 무대에 오르기도 했던 2010년에 발매되었다. 이 앨범은 싱글 ‘Yerbatero 식물 채집가’와 ‘Y No Regresas 그리고 돌아오지마’가 인기를 얻었지만 앞선 앨범들에 비해 실패에 가까운 성과를 거두었다. 여기에는 그와 성공을 함께 해왔던 매니저 페르낭 마르티네스와 결별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서로 헤어지게 된 이유는 이 글을 쓰고 있는 나 또한 정확히 알지는 못한다. 이 사건으로 그는 실의에 빠졌다. 그래서 앨범 발매와 함께 예정되어 있었던 월드 투어를 취소하기에 이르렀다. 나아가 은퇴까지 심각하게 고려했다. 그만큼 페르낭 마르티네스의 존재감이 컸음을 의미하는 것이겠지만 그래도 2009년 위협 속에서도 굳건히 쿠바에서의 평화 콘서트를 진행했던 굳건한 그의 모습을 생각하면 이것은 표변(豹變)에 가까웠다.
하지만 그에게는 가족이 있었다. 아내의 만류로 은퇴에 대한 마음을 접고 충분한 휴식을 가진 후 그는 2012년 1월 미국 플로리다의 마이애미 비치에 위치한 뉴 월드 심포니 센터에서 언플러그드 공연으로 다시 활동을 재개했다. 그의 히트 곡들을 새로운 편곡으로 노래하는 것으로 꾸며진 이 공연은 앨범 <Juanes: MTV Unplugged>로 발매되었다. 앨범은 발매되자마자 빌보드 라틴 앨범 차트 1위를 기록하며 여전히 그가 라틴 팝/록의 대표 싱어송라이터임을 입증했다. 또한 앨범 수록곡 가운데 신곡 ‘La Señal 신호’, 그리고 그의 대표곡 가운데 하나인 ‘Me Enamora’가 싱글로 발매되어 인기를 얻기도 했다. 그 결과 그래미상과 라틴 그래미상도 다시 그에게 돌아왔다.
3년만에 발매된 스튜디오 앨범 <Loco De Amor>
<Juanes: MTV Unplugged>의 성공 이후 후아네스는 곧바로 U2, 롤링 스톤즈, 킬러, 데이브 매튜 밴드, 카운팅 크로우, 피터 가브리엘 등의 앨범 제작자로 유명한 스티브 릴리화이트와 손을 잡고 여섯 번째 스튜디오 앨범 제작에 들어갔다. 이를 위해 그는 앨범의 전곡을 혼자 혹은 그의 백업 싱어인 라쿠엘 소피아, 콜롬비아 록그룹 마무트의 리더이기도 한 싱어송라이터 호세 파블로 아르벨라에스와 공동으로 작곡했다.
그렇게 발매된 <Loco De Amor 사랑에 미친> 앨범은 그에게 성공을 가져다 준 이전 앨범들의 성공 방식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기타를 중심에 둔 록에 라틴적인 색채가 가미된 팝 록 사운드를 들려준다. 하지만 악기들의 배치를 보다 촘촘하게 하여 이전보다 한 층 두터운 질감의 사운드를 추구했다는 것이 차이로 드러난다. 그래서 한결 밝고 화려한 정서가 강하다. 앨범 발매 전 미리 싱글로 공개되었던 ‘La Luz 빛’만 해도 록의 강렬함에 라틴 뮤직 특유의 축제적인 열정이 결합되어 ‘빛’이라는 제목이 지닌 이미지를 가사와 상관 없이 느끼게 해준다.
이러한 밝음의 강조는 평소 그의 음악에 내재되어 있었던 긍정과 사랑의 정서를 더욱 잘 느끼게 해준다. 그리고 이것은 힘이 넘치는 후에나스의 창법이 돋보이는 앨범의 첫 곡 ‘Mil Pedazos 천 개의 조각’, 스패니시 기타와 타악기의 어우러짐이 라틴 록의 진수를 느끼게 해주는 ‘La Verdad 진실’, 탄력적인 베이스 리듬을 바탕으로 브릿팝적인 감성마저 느껴지는‘Delirio 섬망’, 어쿠스틱 기타가 저절로 햇살이 빛나는 들판과 꽃을 상상하게 만드는 ‘Una Flor’등 각각의 특별한 개성을 지닌 곡들에서도 그대로 지속된다. 앨범의 전반부를 장식한 이들 곡들은‘사랑에 미친’이라는 앨범 타이틀의 의미를 직접적으로 설명하는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아무리 매력적이라 해도 같은 패턴이 앨범 전체를 지배했다면 감상이 지루해질 수 있는 법. 이를 피하기 위해 후아네스는 후반부에 미디엄 템포의 곡을 배치해 앨범 전체에 극적인 요철을 부여했다. ‘Laberinto 미로’, ‘Persiguiendo El Sol 태양을 쫓아’, ‘Corazon Invisible 보이지 않는 마음’, ‘Me Enamore De Ti 그대를 사랑하게 되다’, ‘Radio Elvis’같은 곡이 그러한데 이들 곡들은 앨범 전반부에 배치된 곡들에 비해 한층 부드럽기는 하지만 화사한 맛은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슬픔을 거부하는 사운드, 햇살이 뜨거운 오후 두 시의 사운드랄까? 실제 앨범을 다 듣고 나면 내일에 대한 동경은 있지만 좌절은 없는, 밝고 긍정적인 삶에 대한 열정적인 연설을 들은 듯한 인상을 받게 된다.
이전보다 한층 강화된 화려한 긍정은 다시 한번 후아네스에게 성공을 가져다 주리라 확신한다. 그리고 이 성공은 국내에서도 이루어지지 않을까? 문제는 이 좋은 음악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노출되느냐일 것이다. 아니 반대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좋은 음악을 들을 수 있는 기회를 가지느냐에 달렸을 것이다. 다행히 이 앨범을 선택한 당신은 그 기회를 잡았다. 그렇다면 주변에도 후아네스를 추천해 보기 바란다. 밝은 음악을 함께 듣는 것만으로도 삶은 보다 아름다운 것이 될 터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