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rm Like Love – 김주환 (Johnny Company 2014)

연애를 거는 듯한 사랑처럼 따스한 노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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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은 재즈를 어렵다고 말한다. 실은 보다 긴 시간을 두고 조금은 더 집중해서 듣는다면 금방 그 매력을 느낄 수 있는 것이 재즈인데 말이다. 아무튼 재즈를 어렵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 만큼 재즈인들 또한 그들을 어떻게 재즈의 세계로 안내해 그 희열을 느끼게 해줄까 고민을 하곤 한다. 그런데 상당수의 재즈인들은 고민 끝에 스타일에서 그 답을 찾아 보곤 한다. 그래서 스무드 재즈, 퓨전 재즈 계열의 앨범들, 팝이나 록 쪽을 수용한 앨범들을 추천하곤 한다.

하지만 나는 이에 회의적이다. 퓨전 재즈, 스무드 재즈도 답이 될 수 있지만 재즈 밖의 사람들이 바라는 것은 재즈 하면 가장 일반적으로 연상되는 재즈, 어쿠스틱 악기가 주를 이루고 연주자나 보컬 모두 가벼이 스윙하는 전통적인 색채가 강한 재즈다. 그들에게는 그래야 재즈를 듣는 것으로 생각될 것이다.

그래서 나는 보컬 앨범을 제일 먼저 추천하곤 한다. 아무래도 연주 앨범보다는 그 흐름을 따르기 쉽기 때문이다. 물론 그 안에서도 아무 보컬 앨범을 추천할 수 없다. 편하게 들을 수 있으면서도 그 안에 재즈적인 맛을 유지해야 할 것이다. 즉, 대중성을 추구한다는 미명(美名)에 연주와 노래의 즐거움을 포기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도 불멸로 남아 있는 엘라 핏제랄드, 루이 암스트롱 등의 노래를 들어보라. 분명 누구나 좋아할 수 있는 대중적 매력을 지녔지만 그렇다고 재즈적인 맛이 덜하지도 않다. 자연스럽게 재즈의 진가를 맛보게 해준다. 오히려 의도적으로 대중을 의식했던 노래들은 그다지 큰 호응을 얻지 못하곤 했었다.

한국 재즈 보컬 가운데에서 편안하게 들으면서 재즈를 맛볼 수 있게 해주는 인물로 나는 지금 우리가 듣고 있는 김주환을 제일 먼저 추천하고 싶다. 국내에서는 아주 드문 남성 재즈 보컬인 그는 재즈 밖에 있는 사람에게는‘참 낭만적인걸. 이것이 재즈구나’라며 재즈를 쉽게 받아들일 수 있게 하고 재즈 안에 있는 사람에게는‘흠 그렇지, 재즈 보컬은 이래야지. 진부하지도 않은걸?’이라는 호평을 얻어낼 수 있는 노래를 한다. 이것은 지난 2012년에 발매된 첫 앨범 <My Favorite Things>부터 확인할 수 있었다. 즉, 재즈계에 등장할 때 이미 그는 노래에서만큼은 완성태였던 것이다. 이어 지난 2013년에 발매된 두 번째 앨범 <The Best Gift>에서는 보다 탄탄해진 사운드를 배경으로 톤과 강약, (스윙감을 바탕으로 한) 속도의 미묘한 조절을 통해 남성성의 다양한 모습을 드러냈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이 천부적 재능은 물론 부단한 연습, 꾸준한 선배들의 노래 감상, 후학양성 과정에서의 자기 성찰 등의 후천적인 노력을 통해 이루어진 것임을 알렸다.

지금 우리가 듣고 있는 앨범 역시 지난 앨범과 궤를 같이한 사운드를 담고 있다. 지난 앨범과 마찬가지로 그는 무반주로 노래한다고 해도 허전함 없이 감상자를 감동시킬 수 있는 탁월한 노래 실력을 바탕으로 스탠더드 재즈 곡들을 맛나게 노래했다. 그런데 이번 앨범은 지난 앨범에서 보여주었던 김주환이라는 보컬의 다양한 능력 가운데 한 가지를 집중적으로 보여주는데 주력하려 했다는 인상이 강하다. 그의 부드러운 면이 부각되는 중고역대의 보컬이 돋보이는 노래들이 이를 말한다. 첫 곡 ‘Softly As In A Morning Sunrise’를 들어보라. 건조하고 담담한 기타 인트로에 이어 등장하는 그의 보컬은 중후한 남성의 모습을 보여주지만 그렇다고 힘을 주어 과시하는 듯한 자세를 보이지 않는다. 힘을 빼고 속삭이듯 노래한다. ‘You’d Be So Nice To Come Home To’도 그렇다. 이 곡에서도 그는 조곤조곤 이야기하듯 노래하는 첫 코러스나 경쾌하게 리듬을 타는 두 번째 코러스 모두에서 부드러움과 섬세함을 유지한다.

이야기하는 듯한 느낌, 부드러움을 강조한다고 해서 생동감이 부족하지도 않다. 흐느끼는 듯한 가성과 심지 곧게 솟아오르는 진성을 자유로이 사용하여 슬픔마저 달콤하게 표현한‘Angel Eyes’같은 노래가 대표적이다. 힘을 절제한 노래지만 그 안에 담긴 서사적인 진폭은 결코 밋밋하지 않다. 이 곡에 이어지는 곡으로 EP <Sophisticated>에서 한 차례 노래하기도 했던 ‘Everything Happen To Me’는 여성적이다 싶은 그의 부드러움이 가장 돋보인다.

보통 남성 재즈 보컬 하면 프랑크 시나트라, 토니 베넷으로 대표되는 크루너 보컬, 그러니까 중저역대를 강조해 남성적 중후함-중절모를 쓴 신사 같은-을 살린 보컬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 따라서 중고역대를 활용한 부드러운 김주환의 노래는 남성 보컬의 전형과는 차이가 있다. 물론 그도 크루너적인 면모를 지니고 있다. 앨범 타이틀 곡 후보로 끝까지 고민했던 ‘Body and Soul’이나 이 곡을 제치고 타이틀 곡이 된 ‘Get Out Of Town’ 그리고 ‘Devil May Care’ 같은 곡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이번 앨범에서 그는 확실히 달콤하게 부드럽게 노래하기로 마음 먹었다.

그렇다면 왜 그는 이번 앨범에서 부드러움을 강조하려 한 것일까? 단순히 대중적인 목적에서?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사랑처럼 따스한’이라는 앨범 타이틀을 생각해 봐야 할 것 같다. 즉, 그는 중고역대를 중심으로 부드럽게 노래하는 것을 통해 그 따스함을 전달하려 했던 것이다. 사실 이것은 역설적인 시도라 할 수 있다. 목소리의 온도를 계산한다면 중저음의 노래가 훨씬 더 포근할 테니 말이다.

그럼에도 그의 노래가 따스함을 지닐 수 있었던 것은 목소리의 질감이 아닌 친밀감을 통해 온도를 조절했기 때문이었다. 두툼한 롱 코트를 입은 중후한 신사의 품은 분명 따스할 것이다. 하지만 가벼이 말을 걸고 선뜻 그 품 안으로 들어가기란 쉽지 않다. 반대로 자신을 과장하지 않고 일상의 말투로 조용히 옆에서 이야기하는 사람은 저절로 손을 잡고 싶어진다. 이번 앨범에서 김주환의 노래가 바로 그렇다. 그의 부드러운 노래는 편안하게 우리에게 말을 건다. 가벼운 인사부터 가슴 속 진심이 담긴 삶과 사랑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래서 마치 노래로 연애를 거는 것 같은 느낌을 주기도 한다. 거부하기 어려운 달콤한 연애, 마음으로 바라고 또 바래왔던 따뜻한 연애를……

다양한 표현력 가운데 부드러움을 통해 따스함을 표현하는데 집중했다지만 그렇다고 해서 앨범이 단조롭게 들리지는 않는다. 사운드의 질감을 일정하게 유지하면서도 그 안에서 가능한 다채로운 변화를 추구했기 때문이다. 편성만 해도 피아노 트리오를 기본으로 여기에 기타와 트럼펫을 필요에 따라 적절히 활용하거나 피아노나 기타 솔로 반주로 노래하는 등 곡에 따라 변화를 거듭한다. 나아가 ‘It’s Cold Out Side’에서는 여성 보컬 장정미와 사랑스러운 듀오를 이루어 노래하기도 했다. 한편‘Devil May Care’처럼 경쾌하게 스윙하는 곡, ‘Everything Happen To Me’처럼 느린 발라드, ‘I Fall In Love Too Easily’ 같은 미디엄 템포의 보사노바 곡을 노래하고 이들을 적절히 배치하여 전체 흐름에 요철(凹凸)을 주어 앨범 자체가 마치 스윙하는 것처럼 만든 것도 앨범 감상을 지루하게 하지 않는다.

김주환의 첫 앨범은 매력적 남성 보컬의 출현을 알리는 의미가 강했다. 두 번째 앨범은 그의 역량을 종합적으로 보여주려는 욕망을 반영한 것이었다. 그 이후 이번 세 번째 앨범에서는 다양한 자신의 능력 가운데 한 가지를 선택하여 보다 섬세하게 이를 드러내려 했다. 이것은 이제 김주환이 자신의 음악을 긴 호흡으로 바라보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러니까 조급하게 자신을 보여주고 인정받으려 하는 것이 아니라 차근차근 자신의 속도로 마음 속 이야기를 풀어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실제 나는 그가 이렇게 여유로이 자신의 노래를 이어간다면 지금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그의 노래에 열광하는 날이 오리라 생각한다.

이 글을 나는 2014년의 대설(大雪)에 시작했다. 눈이 펑펑 내린 날이었다. 창 밖으로 내리는 눈을 느끼며 이 앨범을 반복해서 듣고 또 들었다. 내리는 눈이 세상을 이불처럼 감싸며 잠시나마 겨울의 온도를 높이는 것처럼 김주환의 노래가 마음의 온도를 높인다. 갑자기 하루가 낭만적으로 느껴진다. 보일러로 채울 수 없는 삶의 훈훈함! 그것이 김주환이 말하는 ‘사랑 같은 따스함’이었던 것 같다. 자! 그러면 이제 당신도 앨범을 편안하게 들어보기 바란다. 나의 추천사는 여기까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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