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e Daniel’s The Butler OST (Verve 2013)

흑인 음악으로 장식된 백악관 집사의 삶

ost

  1. 영화

국내에는 <대통령의 집사>로 개봉된 리 다니엘스 감독의 <더 버틀러>는 1952년부터 1986년까지 백악관에서 대통령의 집사(버틀러)로 일했던 유진 앨런의 삶을 바탕으로 제작된 영화이다. 유진 앨런은 34년간 8명의 대통령을 위해 일했다. 그러나 리 다니엘스 감독은 유진 앨런의 삶을 그대로 옮기지도 않았고 인간 승리의 과정처럼 거창하게 다루지 않았다. 유진 앨런이 실제 겪은 몇몇의 에피소드가 담기긴 했지만 영화 속의 이야기 대부분은 만들어진 허구이다. 그래서 주인공의 이름 또한 유진 앨런이 아닌 세실 게인즈로 바뀌었다. 또한 감독은 허구의 이야기들을 흑인 인권 운동과 관련된 역사적 사실과 맞물려 한 흑인의 삶이 아니라 부조리한 억압에서 서서히 자유를 획득해 나간 흑인들의 모습을 조명하는데 더 집중했다.

1926년 미국 남부. 꼬마 세실은 목화밭에서 일하던 중 어머니가 백인 주인 아들에게 강간 당하고 이에 항의하던 아버지가 총에 맞아 즉사하는 상황을 목격한다. 이를 불쌍히 여긴 여주인은 꼬마를 집안의 검둥이 하인으로 삼아 집안일과 서빙을 시킨다. 이것이 집사로서 그의 인생을 결정짓게 된다. 주인집에서 도망친 세실은 빵을 훔치다가 알게 된 흑인 주인의 도움으로 레스토랑을 거쳐 호텔에서 일을 하게 된다. 그리고 다시 ‘백인들의 마음을 읽고 그들을 만족시키는’ 그의 시중을 지켜본 한 백악관의 인사담당자에 의해 백악관에 집사로 들어가게 된다.

집사로서의 삶은 그다지 어려운 것이 없었다. 대신 큰 아들 루이스 게인즈가 그의 속을 끓인다.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큰 아들은 흑인과 백인의 출입장소, 좌석 등을 분리하는 미국 사회의 인종차별에 저항하는 프리덤 라이더 운동을 시작으로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측근이 되어 흑인 인권 운동을 한다. 나아가서는 급진 좌파 성격의 블랙 팬더 당원이 되어 감옥을 들락거리게 된다. 이런 큰 아들의 눈에는 백인들을 위해 일하는 아버지의 일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반면 이 정도로 사는 것도 좋은 것이라 생각하는 세실 또한 대학에서 공부는 하지 않고 흑인 인권 운동을 하는 아버지를 이해할 수 없다. 그래서 결국 부자는 연을 끊는다.

하지만 미국의 역사는 점점 흑인들의 인원을 개선하고 향상하는 방향으로 흐른다. 이러한 미국 현대사를 영화는 세실이 시중을 들었던 해리 트루먼, 아이젠하워, 케네디, 존슨, 닉슨, 포드, 카터, 레이던 등의 대통령들의 흑인에 대한 태도 혹은 정책과 아들 루이스가 참여한 흑인 인권운동-워터게이트 사건, 마틴 루터 킹, 존 F. 케네디의 암살 등 실제 역사적으로 있었던- 장면을 통해 보여준다.

미국의 현대사를 가로지르는 이 영화는 세실을 연기한 포레스트 휘태커와 아내 글로리아를 연기한 오프라 윈프리-그녀의 연기는 무척 자연스럽다-, 루이스를 연기한 데이빗 오옐로워의 열연 외에 깨알 같은 조연 혹은 카메오들의 얼굴을 발견하는 재미가 영화의 무거움을 상쇄한다. 예를 들면 세실의 어머니로 머라이어 캐리가 나오며 세실의 백악관 동료 제임스로 레니 크래비츠가 나온다. (이 두 사람은 리 다니엘스 감독의 이전 영화 <프레셔스>에 출연하기도 했었다.) 그리고 세실에게 집사로서의 일들을 처음 가르치는 농장 여주인으로 바네사 레드그레이브가 나온다. 대통령으로 출연한 배우들도 쟁쟁하다. 아이젠하워 대통령을 로빈 윌리엄즈가, 케네디 대통령을 제임스 마스덴이 그 아내 재클린을 민카 켈리가, 닉슨 대통령을 존 쿠삭이, 레이건 대통령을 앨런 릭먼이, 그리고 그 아내 낸시를 제인 폰다가 연기하여 신선한 재미를 선사한다.

  1. 음악

이 영화의 음악은 포르투갈 출신의 그룹 마드레듀쉬(Madredeus)를 이끌었던 호드리고 레아웅이 담당했다. 포르투갈의 파두, 클래식, 탕고, 현대 음악 등을 자유로이 넘나드는 그는 이번 영화 음악에서는 여느 영화 음악처럼 피아노와 오케스트라를 사용하여 장면의 분위기를 살리는 데 주력했다.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그 분위기를 과장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차별성을 보인다. 이러한 소박함은 흑인 인권운동 관련 장면이 줄 수 있는 감정적 과잉을 순화시키고 세실의 회상을 기본으로 진행되는 영화답게 잔잔한 서정적 분위기를 유지하게 만든다. 그래서 다양한 사건들이 이어지지만 영화는 시간의 흐름처럼 부드럽게 나아간다.

그런데 호드리고 레아웅의 서정적인 음악도 인상적이지만 관객들에게는 곳곳에 삽입된 가스펠, R&B, 소울 곡들이 더 귀에 잘 들어오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일까? 이 사운드트랙 앨범은 호드리고 레아웅의 곡은 아들 루이스가 떠나는 장면에 나왔던 ‘Louis Leaves’와 타이틀 음악 ‘The Butler’만 싣고 삽입된 팝 히트 곡들을 중점적으로 실었다. (호드리고 레아웅의 음악 전곡은 MP3 형태로 판매 중이다.)

영화에 삽입된 삽입곡들은 두 시간에 요약된 수십 년의 시간을 설명하는 역할을 한다. 먼저 세실 게인즈가 1957년 워싱턴에서 일할 때 배경음악으로 흐르는 더 메디테이션 싱어즈가 노래한 가스펠 풍의 곡‘I’m Determined To Run This Race’는 1954년에 나와 인기를 얻었던 곡이다. 흥겨운 분위기의 이 곡은 커다란 희망을 품고 호텔의 집사로 일하는 세실의 삶을 그대로 대변한다. 이어지는 페이에 아담스의 ‘Hurt Me To My Heart’는 1954년 빌보드 R&B 차트 1위에 올랐던 곡으로 세실의 아내 글로리아를 설명한다. 글로리아는 남편처럼 호텔에서 일을 하다가 결혼 후 전업 주부로 육아에만 전념한다. 그래서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은데 그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이웃을 부르거나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춤을 추곤 한다. 이 때 페이에 아담스의 그루브는 그녀를 춤추게 한다. 한편 필라델피아 출신의 R&B 그룹 디 오제이스의 ‘Family Reunion’은 은퇴 후 평화로이 노년을 보내는 세실 부부의 삶을 설명하는 멋진 배경 음악으로 등장한다.

한편 1963년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암살로 가정사에 소홀했던 세실이 아내와의 관계를 회복할 때 흘러나오는 재즈 보컬 다이아나 워싱턴의 노래‘I’ll Close My Eyes’는 낭만적인 분위기가 장면에 어울리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바로 1963년에 발표된 곡이었기에 선곡된 것 같다. (이 곡은 엔딩 크레딧에 다시 나와 세실이 삶을 긍정적으로 회상했음을 설명한다.) 제임스 브라운의 대표곡 가운데 하나인 1964년도 히트 곡 ‘Out Of Sight’도 세실 부부와 이웃의 파티 장면에 흐르지만 실은 시민권법-공공장소에서의 인종차별 유색인의 투표권 보장 등을 골자로 한-의 제정이 있었던 해를 설명하기 위해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펑크 밴드 피플스 초이스의 1974년도 히트 곡‘Party Is A Groovy Thing’도 마찬가지다. 둘만의 흥겨운 시간을 가지려 했던 세실 부부가 갑작스레 베트남전에 참전했던 둘째 아들 찰리 게인즈의 전사 소식을 듣는 장면과 맞물려 극적인 면을 더욱 강조했던 이 곡은 또한 1974년 베트남 전쟁에서 미군이 철수했던 시기를 설명한다.

이처럼 영화에 삽입된 팝 히트 곡들은 영화 속 시간의 흐름과 그 시대를 설명한다. 그런데 단 한 곡, 세실이 1957년 아이젠하워 대통령에게 차를 가져다 줄 때 흐르는 딘 마틴의 경쾌한 빅 밴드 재즈 곡‘Ain’t That A Kick In The Head’는 착각이 있었던 듯싶다. 이 곡은 1960년 영화 <오션스 일레븐>을 위해 만들어진 곡이기 때문이다.

영화에 사용된 팝 보컬 곡들은 때로 영화 속 현실의 시간 설명에서 더 나아가 세실의 회상이 다큐멘터리처럼 무겁고 심각한 분위기로 흐르지 않도록 하는 역할도 한다. 리 다니엘스 감독은 지난 뉴스나 다큐멘터리 화면까지 사용하면서 이 허구의 이야기를-사실을 바탕으로 했다지만-흑인 인권 운동에 관련된 역사적 사실과 연결시키기 위해 공을 들였다. 그리고 연출된 흑인 인권 운동 장면도 당시의 차별적 상황에 대한 관객의 공감을 얻기 위해서였는지 몇몇 장면은 매우 사실적으로 그렸다. 그래서 분위기가 다소 무거워질 수 있었다. 바로 여기에 감각적인 음악이 등장해 이를 완화한다.

아들 루이스가 대학에 입학 한 후 처음으로 흑인 인권운동을 실행하는 장면에 사용된 소울 보컬 쇼티 롱의 1966년도 인기 곡‘Function At The Junction’이 그렇다. 영화에서 루이스는 흑인 친구들과 흑인과 백인의 좌석을 구분해 놓은 식당에 가서 백인 좌석에 앉아 음식을 주문한다. 이에 식당 주인은 주문을 거부하고 루이스 일행은 말 없이 자리를 지킨다. 그러자 여러 백인들이 이들의 얼굴에 소스 등의 식 재료를 마구 붓고 구타한다. 이 장면에서 관객들은 아마도 분노를 느낄 것이다. 그 때 쇼티 롱의 경쾌한 음악이 흐르며 그 분노를 완화시키는 것이다. (한편 이 장면에는 백인을 위해 봉사하는 세실의 백악관 일이 교차 편집되어 부자의 엇갈린 관계를 보여주기도 한다.)

루이스 일행이 버스를 타고 이동할 때 백인 우월주의자들인 KKK단의 습격을 받는 장면-역시 역사적 사실에 의거한 장면에 흐르는 패티 드류의 1967년도 인기곡‘Tell Him’도 마찬가지다. 버스가 불태워지고 루이스 일행이 구타를 당하는 장면에 천연덕스럽게 흐르는 이 사랑스러운 노래는 장면의 무거움을 완화한다.

호드리고 레아웅 외에도 영화를 위해 특별히 새로 만들어진 곡도 귀를 즐겁게 한다. 그 가운데 글래디스 나잇이 절절한 목소리가 인상적인‘You And I Ain’t Nothin’ No More’가 있다. 레니 크래비츠가 작곡한 이 곡은 아들 찰리의 전사로 인한 부부의 상실감을 표현하는데 사용되었다. 모처럼만에 만나는 노장 R&B 보컬의 새 노래라는 점에서, 앨범에서 가장 현대적인 분위기를 띤다는 점에서 영화와 별개로 많은 호응을 얻으리라 생각된다.

그러나 정작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곡은 판타지아가 노래한 ‘In The Middle Of Night’이 아닐까 싶다. 2004년 아메리칸 아이돌 시즌 3에서 우승 후 최고의 R&B 보컬이자 뮤지컬 배우로 활동 중인 그녀의 노래는 세실이 인종차별에 분노한 흑인들의 심야 폭동 현장을 가로지를 때 흐르는 데 흑인의 분노와 이를 목격하는 세실의 비극적 슬픔을 매우 효과적으로 설명한다. 더욱이 사운드의 질감이 2013년이 아닌 1960년대에 만들어진 듯해 더욱 극적이다. 그래서 나는 이 곡이 2013년을 빛낸 영화 주제곡 가운데 하나로 자리잡으리라 생각한다.

영화와 관련하여 앨범을 소개했기에-당연한 일 아닌가?- 혹시 영화를 보지 않으면 이 앨범을 제대로 감상하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하는 감상자가 있을 지도 모르겠다. 물론 영화를 보고 앨범을 감상한다면 이 앨범의 각 곡들이 다른 의미로 다가올 것이다. 하지만 이미 잘 알려진 팝 히트 곡들이 주를 이루듯이 이 앨범은 있는 그대로 감상해도 감상의 즐거움을 선사한다. 미국 흑인 팝의 역사를 소박하게나마 맛볼 수도 있다. 여기서 출발해 반대로 흑인 음악과 관련된 당대의 사회상을 파악하는 것으로 나갈 수도 있을 것이다. 즉, 앨범을 먼저 감상하고 영화를 보는 것도 괜찮으리라는 것이다. 어쨌건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지금 우리가 듣고 있는 이 앨범이 잘 구성된 흑인 음악 모음집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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