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드 밥 시대를 풍미했던 피아노 연주자 시다 월튼이 지난 8월 19일 노환으로 세상을 떠났다. 향년 79세. 그는 열정적인 힘과 부드러운 멜로디 감각을 겸비한 연주자였다. 하지만 꾸준히 자신의 리더 앨범 활동을 해왔음에도 국내에서 그의 지명도는 실력에 비해 덜한 것 같다. 여기에는 아무래도 그가 세션 활동에서 보다 두각을 나타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1934년 1월 17일 미국 텍사스의 달라스에서 태어난 그는 어머니에게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다. 하지만 악보를 읽는데 그다지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고 한다. 그럼에도 작곡에는 관심을 가졌다고 한다. 본격적인 연주 활동은 1958년 독일에서의 군생활을 마치고 뉴욕으로 돌아온 이후에 시작되었다. 그 때부터 그는 케니 도햄, 아트 파머, J.J. 존슨 등의 연주자들과 활동하며 자신의 실력은 물론 입지를 다져나갔다.
그런 중 아트 블래키가 그에게 관심을 보였다. 그 결과 1961년부터 64년까지 아트 블래키가 이끄는 재즈 메신저스의 일원으로 활동하게 되었다. 그룹에서 활동하면서 그는 작곡에 능력을 발휘해 재즈 메신저스를 대표하게 되는 ‘Mosaic’, ‘Ugetsu’, ‘The Promised Land’ 등의 곡을 작곡했다. 그러면서 재즈 메신저스가 바비 티몬즈가 있던 시절에 버금가는 인기를 유지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재즈 메신저스에서의 활동으로 그는 연주자들이 선호하는 피아노 연주자가 되었다. 그 결과 도날드 버드, 커티스 풀러, 행크 모블리, 스탠디 터렌타인, 리 모건, 애비 링컨, 재키 맥린, 에디 해리스, 덱스터 고든 등 하드 밥 시대를 풍미했던 주요 연주자들의 앨범에 참여할 수 있었다. 물론 그의 세션 연주는 훌륭했다. 게다가 그는 자신의 리더 활동보다는 세션 활동을 편하게 여겼다.
하지만 이런 그에게도 세션이 불편했던 때가 있었다. 바로 1959년 존 콜트레인의 명작 <Giant Steps>를 녹음할 때였다. 알려졌다시피 이 앨범은 하드 밥의 코드 체인지를 극한으로 몰고 갔던, 고난도의 연주를 요구했다. 이에 그는 매우 훌륭하게 반응했다. 색소폰 연주자는 그의 콤핑에 매료되었다. 하지만 솔로에서 문제가 생겼다. 제대로 그는 솔로를 할 수 없었다.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는 젊은 연주자에게는 거장의 요구에 부응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그래서 결국 앨범 녹음은 타미 플래내건에게 돌아갔다.
그래서일까? 그의 리더 활동은 1969년에서야 시작되었다. 하지만 그 무렵 재즈는 하드 밥 시대를 마치고 프리 재즈를 거쳐 퓨전 재즈의 시대로 들어가 있었다. 따라서 하드 밥에 기반한 그의 앨범은 기대한 만큼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래도 1975년 조지 콜맨, 샘 존스, 빌리 히긴즈와 함께 했던 <Eastern Rebellion>은 그를 대표하는 앨범으로 자리잡을 수 있었다. 그의 앨범 활동은 지난 해까지도 꾸준히 이어졌다. 그 앨범들에서 그는 하드 밥 시대의 미덕이 여전히 유효함을 보여주는 연주를 펼쳤다.
결국 그의 가장 큰 위대함은 많은 연주자들이 앞을 보고 질주하는 사시 묵묵히 재즈의 기본을 두텁게 하고 질주하는 연주자들을 지원한 데 있다. 지금까지 재즈에 영감을 주는 기본으로 자리잡고 있는 스탠더드 곡 같다고나 할까? 그러므로 그의 부고는 그리 큰 주목을 받지 못했던 노장의 사망을 너머 재즈사의 두께가 얇아짐을 의미한다. 이제부터 우리는 그가 남긴 연주를 기억하고 또 기억해야 한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