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다 월튼이 세상을 떠난 지 하루 뒤인 지난 8월 20일 마리안 맥파틀랜드가 세상을 떠났다. 향년 95세로 사인은 자연사였다. 평소 편안하고 여유로운 연주를 즐겼던 그녀답게 죽음도 편안하게 맞이했다. 사실 2011년 47년간 자심의 이름을 걸고 진행해오던 라디오 쇼를 그만두겠다는 발표를 했을 때 사람들은 이제 그녀도 삶의 마지막을 준비하는구나 라는 생각을 했었다. 따라서 이번 그녀의 부고는 안타까우면서도 최근 전해진 다른 연주자들의 부고에 비해 충격은 덜 하지 않나 싶다.
그녀는 1918년 3월 20일 영국 슬로에서 마가렛 마리안 터너의 이름으로 태어났다. 그녀는 세 살 때부터 피아노에 천부적인 재능을 발휘해 클래식 교육을 일찌감치 받았다. 하지만 10대 시절 런던의 길드홀 음악 학교에서 공부하던 중 재즈의 매력에 빠지게 되었다. 결국 그녀는 가족들의 끈질긴 만류에도 불구하고 1938년 학교를 졸업하기도 전에 보드빌 음악극단의 피아노 연주자로 순회공연을 펼치는 삶을 선택했다. 그리고 벨기에에서 공연을 펼치던 중 시카고 출신의 코넷 연주자 지미 맥파틀랜드를 만나 결혼했다.
이제 마리안 맥파틀랜드가 된 그녀는 1946년 남편을 따라 뉴욕의 맨하탄으로 건너와 역시 남편의 적극적인 후원 속에 엠버, 히코리 하우스 등을 중심으로 본격적인 재즈 피아노 연주자로서의 활동을 시작했다. 그와 함께 앨범 활동도 순조로이 진행되어 1951년 사보이 레이블에서 녹음한 <Jazz At Storyville>을 시작으로 2000년대까지 꾸준히 이어졌다.
재즈 연주자로서 그녀의 삶이 비교적 순탄했다고 할 수 있었던 것은 재즈 평론가 레너드 페더가 농담 삼아 언급했던 것처럼 그녀가 백인에 여성이며 미국도 아닌 영국 출신이었기에 가능했다. 당시의 재즈계의 풍경에서 그녀의 존재는 그만큼 특별했던 것이다. 1958년 에스콰이어지의 사진 기자였던 아트 케인이 당대를 풍미하고 있던 57명의 재즈 연주자를 모아 찍은 사진에 그녀가 포함된 것도 이러한 특이함이 작용되었을 수도 있다. (이 사진은 1994년 ‘할렘의 어느 위대한 날’이란 제목의 다큐멘터리의 소재가 되어 주목을 받기도 했다. 그리고 영화 <터미널>에서 소개되기도 했다.)
그렇다고 그녀의 피아노 연주가 좋지 않았다는 것은 아니다. 1964년부터 2011년까지 그녀가 진행한 라디오 프로그램 ‘마리안 맥파틀랜드 피아노 쇼’가 이를 입증한다. WBAI FM에서 시작되어 퍼시픽 라디오를 거쳐 1978년부터는 미국의 공영 라디오 방송 NPR을 통해 방송된 이 프로그램은 재즈와 관련된 인물을 초청해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재즈의 특성을 반영하여 그 자리에서 잼 세션을 펼치는 형식으로 구성되었다. 장수 프로그램답게 그동안 매리 루 윌리엄스, 빌 에반스, 오스카 피터슨, 칙 코리아, 저지 시어링, 시다 월튼, 마코토 오조네, 제리 멀리건, 베니 카터, 레이 찰스, 리 코니츠, 로즈마리 클루니, 데이브 더글라스 등 재즈사를 빛낸 대부분의 유명 연주자들이 출연하여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고 즉흥 잼 세션을 펼쳤다. 그 가운데 몇은 앨범으로 발매되기도 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동안 출연한 연주자들의 성향이 실로 다양한데도 잼 세션에서 그녀의 연주는 그들과 평온한 조화를 이루었다는 것이다. 즉, 언제 어디서나 편안하게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는 넉넉함이야 말로 그녀의 진정한 매력이자 실력이었던 것이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