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그래스 음악을 통해 표현된 사랑의 행복과 슬픔
그의 이름은 디디에. 교외의 농장-정비가 필요한-에 살면서 밤마다 블루그래스 음악을 연주한다. 벨기에에 살면서 가장 미국적인 음악의 하나인 블루그래스를 연주하는 것은 반조, 만돌린, 업라이트 베이스, 바이올린 등의 스트링 악기로만 연주되는 그 음악이 가장 순수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모든 것을 새로이 시작할 수 있는 꿈의 국가로 생각하는 미국에 대한 그의 애정도 무시할 수 없다.
그녀의 이름은 엘리스. 타투이스트로 자신의 몸 곳곳에 다양한 문신을 하고 있다. 그 문신들의 상당수는 그녀가 사귀었던 과거의 남자들의 이름이다. 남자가 바뀔 때마다 그녀는 이전 남자의 이름을 다른 문신으로 지우고 새로운 남자의 이름을 다른 곳에 새긴다.
문신에 대한 호기심에 엘리스의 타투 샵에 디디에가 찾아온 것을 계기로 두 사람은 서로-블루그래스 음악과 문신-에 대해 호감을 느낀다. 그리고 이내 디디에의 농장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그리고 함께 블루그래스 밴드 활동을 하며 행복한 삶을 이어간다.
그런 중에 딸 메이벨의 탄생은 그들의 행복을 배가시킨다. 완벽한 원 같은 둥근 삶이라 할까? 하지만 6살이 된 메이벨이 암에 걸려 힘든 치료 끝에 세상을 떠나면서 부부의 완벽한 삶은 조금씩 무너지기 시작한다. 특히 딸의 죽음을 두고 디디에의 무신론과 엘리스의 신에 대한 믿음의 충돌은 두 사람의 관계에 큰 장벽으로 작용하기 시작한다.
이상은 벨기에에서 만들어진 영화 <Broken Circle Breakdown>의 대강의 줄거리-결론은 생략한-이다. 스포일이 아닐까 싶기도 하지만 영화 홈페이지에 이 정도 설명은 나와 있기에 감히 적어보았다. 내용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영화는 남녀의 뜨거운 사랑 이야기이자 암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 보내고 남은 가족들의 남겨진 고통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래서 영화는 낭만적이고 열정적인 남녀의 사랑을 보여주는 것으로 시작해 사랑한 만큼 고통스러운 그들의 변화를 교차편집을 통해 매우 효과적으로 보여준다. 디디에를 연기한 요한 헬덴베르그와 엘리스를 연기한 피를 배턴스의 연기 또한 훌륭하다. 그 결과 2012년 가을에 벨기에에서 개봉한 영화는 커다란 성공을 거두어 2014년 아카데미상 최우수 외국어 영화상 후보에 올랐다.
이 영화의 성공에는 연기자들의 열연과 훌륭한 연출 외에 작, 편곡자 뵤른 에릭손이 담당한 블루그래스 음악의 힘도 컸다. 그는 직접 반조, 기타, 도브로 등의 악기를 연주하며 BCB 밴드를 이끈 그는 블루스래스의 고전들과 자작곡을 적재적소에 배치하며 미국적인 동시에 세계적으로 호응을 얻을 수 있는 음악을 만들어냈다.
그런데 영화에서 블루그래스 음악은 단지 디디에가 좋아하는 음악, 디디에와 엘리스가 그룹 활동을 하는 장면을 설명하는 음악으로서만 등장하지 않는다. 영화를 만든 펠릭스 반 그로닝겐 감독은 블루그래스 음악이 영화에 녹아들어 모든 사건들을 본질적으로 연결하는 역할을 하도록 했다고 한다. 서사 속에서 적절한 자리를 찾고 극적인 효과를 극대화 하고 서사를 설명할 수 있도록 했다고 한다. 영화 속 밴드의 보컬을 두 남녀 주인공 요한 헬덴베르그와 피를 배턴스가 직접 담당한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두 배우는 전문 보컬 이상으로 블루그래스 음악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연기를 노래로까지 연장하여 곡마다 극적인 맛을 불어넣었다. 그래서 블루그래스라는 장르에 대한 낯섦을 완전히 상쇄한다.
그 결과 블루그래스 음악은 보통의 영화 음악처럼 자연스럽게 영화의 서사에 녹아들어 앞으로 일어날 사건을 암시하기도 하고 현재의 상황을 설명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격정적인 분위기의 ‘The Boy Who Couldn’t Hoe Corn’은 디디에가 엘리스에게 블루그래스 음악의 매력을 전달하고 나아가 엘리스를 밴드에 보컬로 합류시켜 함께 무대에 서는 과정을 그리면서 두 사람의 깊어지는 사랑과 행복을 함축적으로 표현한다. 한편 국내에 가장 널리 알려진 곡이 아닐까 싶은‘Wayfaring Stranger’는 우수로 가득한 곡은 딸 메이벨의 병과 두 주인공의 슬픈 운명을 암시한다. 그래서 이어지는 장면의 슬픔을 증폭시킨다. 또한 앨범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곡이라 할 수 있는 ‘If I Needed You’는 그 낭만적인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두 주인공이 서로를 힘들어할 때 등장해 사랑의 이면을 돌아보게 만든다.
이처럼 영화에 자연스레 스며들었기에 유럽을 무대로 한 영화에 블루그래스 음악이 사운드트랙으로 사용되었다는 사실은 전혀 이상하게 다가오지 않는다. 오히려 철저하게 미국적인 음악이라 할 수 있는 블루그래스 음악에 대한 관심을 새로이 환기 시킨다. 블루그래스 음악이 영화를 설명하면 영화가 블루그래스 음악의 매력을 설명한다고 할까?
한편 영화와 완벽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고 해서 사운드트랙이 꼭 영화를 먼저 봐야 받아들이기 쉬울 것이라 생각할 필요는 없다. 각 곡들은 분명 영화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지만 그 자체로 독자적인 매력을 지녔다. 블루그래스의 흥겨움을 잘 반영한 ‘Rueben’s Train’, 미국 백인의 축제적 즐거움을 담고 있는 ‘Country In My Genes’, ‘Over The Gloryland’같은 곡들은 기타와 반조가 분주하게 리듬을 연주하고 울렁거리는 슬라이드 기타와 흥겨운 바이올린이 그 위를 질주하는 사운드로 영화와 상관 없이 블루그래스의 매력을 느끼게 해준다. 또한‘Sister Rosetta Goes Before Us’와 ‘Further On Up The Road’같은 곡은 각각 청아한 목소리의 피를 배턴스와 중후한 목소리의 요한 헬덴베르그가 지닌 음악적 매력을 확인하게 한다.
그래서일까? 지금 우리가 듣고 있는 이 앨범은 벨기에에서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사운드트랙 앨범으로 자리잡았다. 그리고 영화에 등장했던 밴드는 브로큰 서클 브레이크다운 밴드(BCB 밴드)라는 이름으로 2014년 상반기 스케줄까지 이미 꽉 찰 정도로 성공리에 공연을 이어가고 있다. 우리 한국의 감상자들도 이 앨범을 듣고 나면 이들의 공연을 보고 싶어할 것이다. 영화를 보고 나서도 같은 마음이 들 것임은 물론이고.
블루그래스 음악은 확실히 한국 내에서는 그리 인기 있는 음악은 아니다. 하지만 이 앨범만큼은 영화와 맞물려 기대 이상의 호응을 얻으리라 생각한다. 나아가 영화보다 사운드트랙이 더 오래 사람들의 기억에 남지 않을까 생각한다. 몇 해 전 음악적으로 아주 특별하다고 할 수 는 없지만 솔직하고 담백한 감정표현으로 인기를 얻었던 영화 <Once>의 사운드트랙처럼 말이다. 진실한 음악은 그 형식과 상관 없이 결국은 마음에 잔잔한 울림을 남기지 않던가?